선거법 개정으로 선거 연령이 만 18세 이상으로 낮아졌다. OECD 가입 국가 중 가장 마지막으로 투표권을 쟁취한 이들은 4월 16일, 생애 첫 번째 투표를 앞두고 있다. 우리는 지난한 시간 속에서 치열한 논쟁 끝에 투표권을 갖게 된 14명의 만 18세 유권자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직업도, 선택한 삶의 방향도, 취향도 각기 다른 이들은 자신과 친구들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선거에 대해서 아주 솔직한 생각을 들려줬다. 여기에는 나이와 성별, 금전적 환경에 따른 편견이 없는 세상,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사회를 바라는 열망이 담겨 있다. 이 글을 읽으며 잠시라도 이들의 바람대로 우리 사회가 꿈을 꾸길 바란다.

권재범(축구 선수)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축구를 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이 아니라 프로 구단인 강원 FC에 입단했다. 포지션은 골키퍼. 리버풀FC의 알리송 베커처럼 수비와 빌드업이 모두 가능한 골키퍼로 성장하고 싶다. 일단 올해는 한 경기라도 뛰어보는 것이 목표다.

내가 자라온 사회적 환경은 남들보다 좋은 조건이었다. 부모님이 지원해주어 축구부가 있는 학교를 다녔고, 좋은 선생님과 즐겁게 같이 뛸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합숙 생활을 하는 것과 축구 외적인 경험을 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가장 신경 쓰는 사회적 이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많은 사람과 접촉해야 하고, 단체 생활을 하다보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제일 많이 보는 건 축구 관련 기사. 가장 많이 본 건 강원 FC에 내가 입단했다는 기사.(웃음) 내가 속한 K-리그 소식을 많이 찾아 본다. 확실히 축구에 대한 열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또래 사이에서 가장 핫한 것은 힙합과 유튜브, 넷플릭스. 특히 힙합은 주변에 운동하는 친구들밖에 없는데도 유행하는 걸 보면 확실히 지금 가장 핫한 음악인 것 같다. 그리고 요즘 우리 또래 중 유튜브랑 넷플릭스 안 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나는 개인적으로 넷플릭스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를 좋아한다.
지금 만 18세는 자유와 다양성을 꿈꾼다. 예전에는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 의사가 되는 것이 많은 사람이 원하는 일이었다면 지금은 꿈이 훨씬 다양해진 것 같다. 축구 분야에서도 선호하는 포지션이 다양해졌고, 꼭 선수가 아니더라도 에이전트나 트레이너처럼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재능을 펼치려는 친구가 늘고 있다. 또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분위기가 있다. 강압적인 것을 싫어하고, 자기 의견을 밝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은 나의 노력. 다른 직업이라면 모르겠지만 나는 제반 시설이 이미 갖춰진 프로 팀에 들어왔기 때문에 좋은 환경에서 꿈을 키울 수 있다. 그러니 나만 잘하면 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세상은 모두가 행복한 세상. 여건이 안 돼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 없이 모두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세상.
만 18세부터 유권자에 포함하는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들끓었던 찬반 여론은 찬성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만 18세면 세금을 내고 국방의 의무를 지며 면허도 딸 수 있다. 투표권만 없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 나라에서 같이 살아가는 사람인 이상 나라의 미래를 선택하는 투표권은 꼭 필요한 의무이자 권리다.
만약 내가 총선에 나간다면 일단 축구와 관련한 제반 시설을 확충하겠다. 그리고 청소년이 꿈을 실현하도록 나라에서 도울 수 있는 정책과 시설을 찾아보겠다.

안소현(피겨스케이팅 선수)
집 앞에 아이스링크가 있는 덕분에 어린 나이에 우연찮게 피겨스케이팅을 접했다. 스케이트를 좋아하고, 소질도 어느 정도 있어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은 경험을 쌓아 지도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내가 자라온 사회적 환경은 비교적 괜찮았고, 비교적 좋지 않았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이른 나이에 꿈을 발견하고 이를 위해 노력한 덕분에 국가대표까지 됐다. 그렇지만 늘 걱정과 불안을 안고 살았다. 그리고 스케이트를 맘껏 타기에 한국의 빙상 환경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열악하다. 빙상장이 적은 탓에 늘 새벽이나 밤늦게 훈련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신경 쓰는 사회적 이슈는 집값. 부모님에게서 독립할 시기라고 생각하는데, 수도권의 집값을 보면 내 나이에 살 집을 구하는 건 불가능하다. 성인이 되었다고 해도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우리 기성 세대가 이렇게 답이 안 나오는 시대를 물려주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노답’이라는 말이 유행하나 싶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불평등의 시대. 본인의 노력보다는 이미 누리고 있는 환경에 따라서 미래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이런 불합리가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해지고 고착화된다는 점이다.
내가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은 풍성한 빙상 인프라. 그리고 당장의 성과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선수들을 교육하는 환경. 내 꿈은 세계적인 빙상 지도자가 되는 거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빙상 환경에서는 선수도 지도자도 더 큰 꿈을 펼치기 힘들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만 18세부터 유권자에 포함하는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들끓었던 찬반 여론은 결국 당사자인 만 18세 유권자의 투표율로 옳고 그름이 판가름 날 거다. 각자 어떤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에게 투표할지 고민하고, 그래서 실제로 투표율이 높게 나오면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존중받는 동시에 우리를 위한 더 많은 정책이 실현될 거다.
선거에서 표를 잃을 만한 공약이나 행동은 당장 표를 얻기 위한 무모한 공약. 세대나 지역 간 갈등을 부추기는 공약.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이익을 침해하는 공약.
바람직한 유권자란 투표소에 나가는 사람. 아무리 공약을 판단하고 정치인을 평가해도 투표하지 않으면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좋은 공약, 모두에게 이로운 공약을 고를 줄 아는 안목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실제 투표하는 사람이 바람직한 유권자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총선에 나간다면 운동선수 출신으로서 체육계 시스템을 공정하게 정비하고, 전반적으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겠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종목별 선수 선발 규칙을 재정비하고, 사회적으로도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입시, 투명한 금융 시스템을 제안할 거다.

박희주(문예창작과 학생)
글, 사진, 그림, 음악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관심이 높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여행 에세이 <낯설게 보기>를 전시했다. ‘물들지 않고, 날것으로’를 좌우명으로 삼고 스스로를 탐구하는 중이다.

내가 자라온 사회적 환경은 많은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성공을 배우기 전에 회의감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고 배웠고, 그래서 꿈이나 성공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항상 고민했다.
만 18세가 살기에 한국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지만 동시에 불가능을 전제로 두게 하는 나라. 그래서 ‘헬조선’이니 ‘탈조선’이니 하는 말을 학생들이 쉽게 입에 담는 것 같다. 아무래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것이 사실이다.
가장 신경 쓰이는 사회적 이슈는 부동산 정책. 최근에 방송에서 부동산 규제를 피하고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1인 법인을 설립하는 다주택자에 관한 내용을 봤다. 사실 크게 와닿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우울해졌다.
내가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은 포용력. 사회가 발전할수록 많은 가치가 등장하고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사람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 사회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옳다는 말이 아니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거다. 그 가치가 어떻게 나왔고 그 배경에 어떠한 사건들이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만 18세의 삶을 방해하는 것은 자기 확신의 결여. 이런 상태가 가장 증폭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자아 탐색에 관한 다양한 검사를 진행하지만 아무리 많은 결과지를 갖는다고 해도 이것이 곧 자기 확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자기 확신의 결여는 자기애의 결핍으로 이어져 대인 관계뿐 아니라 학업과 진로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자기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이를 바탕으로 진로로 정할 수 있는데, 실상은 반대로 일단 대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 발생하는 혼란과 떨어진 자존감이 우리 삶을 방해하고 위협한다.
선거에서 표를 잃을 만한 공약은 자신감만 있고 현실성 없는 말. 물론 급진적인 개선을 원하지만, 이런 공약일수록 제자리걸음이나 퇴행을 가져오기 십상이다. 모두에게 좋은 꿈을 가지게 하는 동시에 책임 있는 공약이 필요하다.
바람직한 유권자란 줏대를 지키고 그 줏대에 걸맞게 투표하는 사람. 조금이라도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무거운 표를 던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