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 비아르가 이번 컬렉션의 주제로 삼은 것은 가브리엘 샤넬이 어린 시절을 보낸 오바진 수녀원(Abbey of Aubazine)이다. “오바진 수녀원을 방문했을 때 가장 마음에 든 건 수녀원 정원을 가꿔놓지 않았다는 점이었어요. 해가 쨍쨍 내리쬐는 그곳에서 여름날과 꽃향기가 실린 바람에 대해 생각하게 됐죠.” 버지니 비아르의 이 감상은 그대로 그랑 팔레에 옮겨졌다. 비누 냄새를 풍기며 햇볕에 말라가는 침대 시트, 야생화가 피어난 고즈넉한 정원은 가브리엘 샤넬의 영감으로 가득 찬 1890년대 오바진 수녀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휘황찬란하고 거대한 드레스가 등장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쇼가 시작되자 양말과 화이트 타이츠, 넓은 칼라 등 기숙 생활을 하던 소녀들의 복장을 연상시키는 룩, 약간은 엄숙해 보이는 간결한 실루엣의 룩이 런웨이에 펼쳐졌다. 그렇다고 쿠튀르 의상답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수녀원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그래픽 모티프로, 복도 바닥에 있던 해와 달과 별로 이루어진 문장은 주얼 버튼으로 재탄생했고, 트위드 위에 다양한 방법으로 수를 놓는 등 다채롭게 변주한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다. 쇼가 무르익자 등장한 드레스들도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한 볼거리였다. 가볍고 투명한 튈 페티코트 위에 작은 꽃이 내려앉은 모양으로 섬세하게 수놓은 드레스와 오간자와 시폰을 활용해 깃털처럼 가벼워 보이도록 완성한 드레스들은 더없이 쿠튀르다웠다. 은은하고 평화로웠던 샤넬의 이번 시즌 쿠튀르 컬렉션에서는 화려하고 파격적인 것 이상의, 시간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