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터벅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펭귄 몇 마리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저 인간 뭐냐. 왜 여기 있냐” 하고 저들끼리 속삭이는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다른 동물을 보겠다고 서른 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먼 남극까지 와서 순전히 보기만 하고 돌아가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할 것이다.’

극지연구소 선임 연구원 이원영 박사가 남극에서 보고 느낀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펭귄은 펭귄의 길을 간다>에서 가장 관심이 없는 건 책의 주인공, 펭귄일 거다. 그는 벌써 6년째 겨울마다 남극으로 가 이들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알아낸 건 빙산의 일각에도 못 미치며 여전히 펭귄들에겐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일 뿐이라 말했다. 그리고 이 책에는 놀랄 만한 과학적 연구 결과가 아닌 동물에 대한 깊은 애정을 지닌 관찰자의 시선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토록 사랑스럽지만 생경한 동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내고 싶은 욕구,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저희가 펭귄을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지구의 위험을 대표하는 지표종이자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생물 중 하나이기 때문이에요.

시작의 글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막막할 땐 펭귄을 떠올린다.’ 펭귄은 저한테 가르치려 한 적이 없지만 저도 모르게 배우는 건 있어요. 그중 하나가 유연함, 일상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에요. 날마다 계속 왔다 갔다 치열하게 움직이다가도 가끔 해변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바다를 바라보기도 해요. 둥지에서 열심히 새끼를 키우다가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요. 그런 걸 보면서 펭귄도 나름대로 자기만의 흐름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리듬을 잘 타는 동물 같다고 할까요. 그래서 저도 저만의 리듬을 잘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본받아야겠다기보다 약간의 위안을 받을 때가 있어요.

정작 본문에는 펭귄에게서 얻는 삶의 지혜 같은 내용은 없습니다. 그보다 담백하게 사실을 기록한 일기에 가까운데요, 책을 준비하면서 꼭 거론하고 싶은 내용이 있었나요? 그와 반대로 넣으면 안 되겠다고 경계한 내용이 있어요. 동물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전달될 때 조심스러운 게 동물의 세계가 이러니까 인간이 거기서 배움을 얻으려는 것, 그리고 직관적으로 동물의 삶과 인간의 삶을 동일시하는 자세예요. 그래서 교훈을 주려고 하기보다 관찰자로서 바라본 펭귄의 삶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 안에 어떤 감상이 있다면 가급적 과학자로서보다 펭귄을 좋아하는 한 사람의 시선을 넣자는 게 목적이었고요.

펭귄에게서 어떤 매력을 발견한 건가요? 굳이 좋아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에 이렇게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관찰하는 걸 좋아했는데 다행히 그런 직업을 얻게 됐어요. 일종의 덕업일치를 이루게 된 것 같습니다. 펭귄에게는 생경한 매력이 있어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잖아요. 독특한 환경에서 오랫동안 적응해온, 다른 세상에 사는 동물을 보는 생경함과 그로 인한 호기심이 있죠. 처음에는 ‘저런 녀석들이 다 있네, 재미있다, 신기하다’는 생각으로 접근했어요. 그런데 가까이에서 보다 보니 그들의 삶에서 느껴지는 매력도 발견하게 됐어요. 아름답기만 할 것 같은 이들이 살기 위해 치열해지는 모습을 보면서요. 먹이를 구하러 갔다 오는데 며칠씩 걸리면서도 계속 같은 일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얘네들도 열심히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가장 애착이 가는 사진이 있을까요? 굉장히 가파른 경사면을 내려가는 사진이 있어요. 사실 그 장면을 실제로 보면서 마음이 힘들었어요. 끙끙거리면서 잘 못 올라가는 애는 안아서 올려주고 싶고, 굴러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진 것 같은 애는 치료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관찰자 이상의 행동을 할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도와주지 않아도 어떻게든 오르더라고요. 그걸 보고 어떤 절실함을 느꼈어요.

최근 남극에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앞으로 100년 이내에 황제펭귄의 86%가 사라지고,
최악의 시나리오는 멸종할 거라고 합니다.
이건 단순히 펭귄 한 종류가 없어지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에요.

6년째 남극을 오가며 연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펭귄에게 얼마만큼 다가갔다고 생각하나요? 식상한 말이지만 빙산의 일각도 안 될 정도예요. 보통 빙산의 일각이라고 하면 수면 아래에 비해 1/10 크기라고 보면 되는데, 저는 그것보다 모르는 것 같아요. 아직 펭귄이 얼마나 오래 사는지, 한 번 짝지으면 얼마나 같이 사는지, 어떤 경우에 헤어지는지 등 아는 게 별로 없어요. 알아가야 할 것이 훨씬 많습니다.

책을 읽어보면 펭귄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만큼은 확신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건 피부로 느낄 수 있어요. 저희가 보통 한 해에 100마리 정도를 포획했다가 놔주는 작업을 해요. 어디까지 갔는지 알기 위해GPS를 부착하고, 얼마나 깊이 잠들었는지 알려면 수신기록계를 달아야 하거든요. 그걸 펭귄 입장에서 보면 외계 행성에서 온 듯한 커다란 포유동물이 다가와서 자기를 붙잡고 뭔가를 했는데, 며칠 뒤에 다시 나타나서 또 잡고. 엄청 스트레스일 것 같아요. 게다가 새끼를 키우는 기간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할 때마다 무척 미안해요. 덕후라고는 했지만 가장 많이 괴롭히는, 악성 팬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웃음) 그렇지만 지금 하는 행동이 나중에 이들을 보호하는 데 기여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제 자신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실제로 국가적인 약속을 만들 때 반영되는 걸 보면서 헛된 일도 아니고, 단순히 개인적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보람을 느낍니다.

펭수라는 캐릭터로 인해 펭귄이 의도치 않게 요즘 가장 핫한 동물이 되었습니다. 연구하는 입장에서 사람들이 펭귄을 너무 귀엽게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나요? 염려되죠. 펭귄을 하나의 캐릭터로 소비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펭귄을 대할 때 북극곰이 코카콜라 먹는 이미지처럼 얼음 위에 가만히 있으면서 사람들이 쓰다듬어도 될 것 같은 귀여움의 상징으로 여기는 건 걱정됩니다. 최근 에코 투어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번식지 가까이에 가서 사진을 찍고 구경하는 관광이 늘고 있는데,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 때문에 번식성공도가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로 펭귄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거든요. 펭귄을 인간의 손길을 기다리는 길들여진 강아지나 고양이가 아니라 남극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잘 적응한 야생동물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최근에 아델리펭귄의 진짜 모습이라고 해서 엄청 잔인하고, 무섭고, 일진이고, 심지어 강간까지 하는 동물인 것처럼 표현하는데 사실 위협에 대응하고, 짝을 지었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건 대부분의 야생동물이 보여주는 행동이거든요. ‘펭귄은 이래야 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사람이 보고 싶은 대로만 해석하기 때문에 여러 편견과 오해가 쌓인 것 같아요. 귀여워하는 마음은 좋지만, 펭귄이 그들만의 삶을 살도록 두는 것이 가장 좋은 태도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발견한 과학적 사실이 있을까요? 지난 1월에 연구한 건 ‘어떻게 잠을 자는가’였어요. 얘네들이 먼 바다로 나갔다 올 때 일주일에서 길게는 보름간 계속 헤엄을 치면서 돌아오거든요. 그래서 과연 그 기간 동안 잠을 안 자고 어떻게 버틸까 궁금하더라고요. 아무리 헤엄을 잘 치는 동물이라도 잠을 자면 물에 빠질 거고, 또 잠드는 사이 포식자가 덮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잠은 자야 하잖아요. 아직 확실한 연구 결과는 아니지만 돌고래랑 비슷한 것 같아요. 우뇌와 좌뇌를 번갈아 자는 거예요. 그래서 움직이면서도 잠을 잘 수 있는 거죠.

펭귄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대의적인목표와 개인적인 목표는 다를 것 같아요. 대의적인 목표라고 하면 남극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온난화에 대응해 펭귄을 보호하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서식처와 행동을 잘 파악해 보호구역을 설정하는 데 근거 자료를 제공해요. 또 올해 펭귄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았으니까 주 먹이인 크릴의 어획량을 줄이자는 국가적 약속에 힘을 보태기도 해요. 개인적인 목표는 좀 달라요. 그저 펭귄을 조금 더 알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거든요. 그럴 때마다 영화 <닥터두리틀>처럼 동물들과 소통하는 상상을 많이 해요. 물론 그건 불가능하긴 하죠. 하지만 그럼에도 저희 같은 동물행동학자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최대한 이들의 행동을 이해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과연 이들은 어떻게 진화했고, 어떤 적응의 이점이 있고, 그래서 어떻게 행동을 하는 건지 하나하나 비밀을 알아가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대의적인 목표는 실제로 모든 사람이 각성해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지구온난화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 건 펭귄이지만, 이는 곧 다른 동물과 인간의 삶으로 이어질 테니까요. 최근 남극에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앞으로 100년 이내에 황제펭귄의 86%가 사라지고, 최악의 시나리오는 멸종할 거라고 합니다. 이건 단순히 펭귄 한 종류가 없어지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에요. 산업혁명 이후 지구의 평균온도가 1℃ 정도 증가했는데, 지금과 같은 추세가 계속되면 2100년에는 4~5℃ 정도 증가한다는 전망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펭귄뿐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생명이 지구에서 사라질 거예요. 저희가 펭귄을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지구의 위험을 대표하는 지표종이자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생물 중 하나이기 때문이에요. 온도가 올라가는 걸로만 설명하면 ‘에어컨 켜면 되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걸 황제펭귄이 멸종하는 문제라고 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좀 더 움직일 수 있거든요. 그래서 펭귄 연구 결과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해요. 그리고 펭귄이 못 사는 환경이 되면 지구의 다른 지역은 훨씬 더 심하게 황폐해지거나 변해 있을 거예요. 예를 들면 지금 투발루 같은 섬나라들의 영토는 사라지고 있거든요. 산호초로 된 섬은 조금만 수면이 상승해도 완전히 물에 잠겨요. 그래서 여러 연구 결과를 내세워 지구의 온도 상승률을 몇 도 이하로 낮춰보자고 하고, 국가 간의 협의가 이뤄지길 바라고 있죠. 하지만 아직도 이런 얘기에 귀를 막고 듣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지구온난화에 따른 지구환경의 변화를 직접 목도하는 입장에서 느끼는 절실함은 훨씬 강할 것 같습니다. 기후변화 우울증이라고 부를 정도로 참담함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실제로 남극에서 펭귄을 비롯한 동물들이 어떻게 변화를 겪고 있는지 보고 있거든요. 해가 갈수록턱끈펭귄의 개체수가 줄어들고, 매년 세종과학기지 근처에 있는 빙하의 경계선이 20~30m씩 뒤로 물러나고 있어요. 6년 전에 비해 150m 이상 후퇴했죠. 남극에 도착할 때마다 ‘아 여기 또 변했구나’라는 게 보이는 거죠. 누군가는 겨우 한 해에 얼마나 변했다고 그러냐 할 수 있지만 극지는 달라요.

극지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한국 내 삶의 변화도 클 것 같아요. 많이 변했어요. 예전에는 지구온난화에 대해 이해하고 아는 것처럼 말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점점 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질적 고민을 하게 됐어요. 그레타 툰베리 같은 어린 학생이 말할 때 어떤 사람들은 맹랑하다 하고 어떤 사람들은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후자에 가까워요. 왜냐하면 눈에 보이니까요. 그 친구가 어른이 되었을 때 북극의 여름 해빙을 못 볼 수도 있거든요. 정말 10년도 안 남았어요. 너무 안타깝고 미안하고 일견 무기력한 마음도 들어요. 어쨌든 이건 무조건 행동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일단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중요한 행동 중 하나가 고기 소비를 줄이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 완전 채식은 못하고 있지만 채식주의자를 지향하고 있어요. 또 물건을 살 때 온라인 쇼핑을 잘 안 해요. 택배로 간편하게 시킬 수 있지만 돈이나 편리함의 문제가 아니라 이 물건이 오기까지의 이력을 살펴보려고 해요. 내 손에 오기까지 발생한 온실가스가 얼마일지에 대한 마일리지를 계산하는 거죠. 같은 채식을 하더라도 이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을 배출시키며 배송된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먹는 것과 집 근처에서 키운 토마토 샌드위치를 먹는 건 다르다는 걸 인식하고 행동하려 해요.

다음 겨울에도 남극행이 예정되어 있나요? 네. 10월 마지막 주에 출발 예정이고, 아마 내년 1월까진 남극에 있을 것 같아요.

이번 남극행에서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요? 펭귄도 연구하지만 이번에는 펭귄과 같이 사는 물범에 대한 연구도 계획하고 있어요. 국내에서는 거의 처음 시도하는 연구라 큰 기대와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또 저희가 2006년부터 매년 펭귄의 번식 지표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있는데, 이 정도면 꽤 장기간 데이터를 축적한 거라 이를 통해 최근 기후변화에 대한 펭귄의 반응
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카메라도 들고 가실 거죠? 들고 가야죠. 하하. 이번에는 더 예쁘게 잘 찍어주고 싶어서 휴대폰도 바꿨어요. 요즘 매일 찍는 기술을 익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