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A

이학경

유튜버

시대의 기록

코로나19가 발발한 중국 우한의 상황부터 전세 기를 타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격리 시설에 머물다 다시 중국으로 가서 재격리 당하기까지, 유튜버 이학경(<코알라네 세탁소>)은 이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그리고 최근 올린 영상에 ‘프로격리러’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신조어 중 하나다.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곳으로 알려진 중국 우한에 거주했다. 당시 감염의 위험성을 예상했나? 당시 우한의 한 의류 관련 회사에 다녔다. 지난해 12월부터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독감이 유행하 는 것 같다는 말이 들리긴 했지만 지나가는 일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때까지만 해도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1월 중순부터 분위기가 급격히 달라졌다. 코로나19에 감염돼 죽은 사람을 넣어둔 자루가 병원에 가득한 영상이 돌았고, 머지않아 뉴스에서 우한을 봉쇄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새해 휴가가 1월 24일부터여서 25일에 한국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휴가가 23일부터로 당겨졌고 그날부터 통제를 시작해 한국으로 갈 수 없게 됐다.

다행히 한국 정부에서 보낸 전세기를 타고 우리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우한 교민들의 아산 격리소 입소는 주요 뉴스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감사한 부분이다. 우한 총영사관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회사 차량이 집에서 집결지까지 데려다주고, 이후 총영사관에서 준비해둔 차량을 타고 공항으로 이동하고, 전세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해 아산 격리소로 가기까지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검사하고 격리소로 옮겨지기까지 모든 과정을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해주었고, 무엇보다 모두가 따뜻한 격려의 말을 건네거나 배려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날의 기억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아산에서 격리하는 기간 동안 영상을 찍어 ‘자가격리 브이로그’를 올린 게 큰 화제였다. ‘살다 살다 격리 브이로그를 보고 있다니’, ‘누군가 할 줄 알았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궁금해할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내가 유튜브에 올리는 영상들은 대단한 뜻이 있다기보다는 나에 대한 기록이라고 생각해 올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자가격리 브이로그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살면서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할까 싶어 기록해놓고 싶은 마음에 만든 거다. 코로나19 관련 영상을 만들면서 개인적으로 지킨 원칙이 있다면, 절대 자극적이고 민감한 부분은 담지 말자는 것이었다. 모두가 별것 아닌 영상 하나에도 공포에 떨거나 과장된 소문이 양산될 수 있는 상황이니까. 그래서 격리 시설에 관한 정보 전달이나 격리 생활을 담은 영상이 대부분이다. 사태에 관한 정확한 내용은 뉴스에서 접하고, 내 영상에선 ‘격리 시설에서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느낄 정도의 내용만 전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부모님 에게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자가 격리를 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말한다면? 영상에서 언박싱을 했던 구호 키트 그리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받은 간식들. 식사 말고도 매일 과일, 과자, 빵 등 간식이 나와서 격리 중인데도 뭔가 먹고 싶다는 생각을 거의 안 했다. 그만큼 세심한 보살핌을 받으며 지냈다. 살찌기 싫어서 격하게 운동을 할 정도로 잘먹고 잘 지냈다.

얼마 전 일 때문에 중국 선양으로 가던 비행기에 확진자가 타고 있는 바람에 두 번째 격리 생활을 하는 중이다. 의도치 않게 한국과 중국 격리 생활을 모두 경험 하는 중인데, 두 나라 격리 시설의 차이를 말해줄 수 있나? 확실히 한국은 격리 생활이 더 짧게 느껴질 정도로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마사지 볼이나 드로잉 북을 주기도 하고, 명상 시간도 있었다. 또 중간중간 라디오 형식 으로 서로 소통도 하면서 꽤 알찬 시간을 보냈다. 반면 중국 격리 시설은 그냥 호텔 방에서 2주 동안 머무는 느낌이다. 두 번째라 그런가, 이것도 나름 호캉스라고 생각 하며 즐기려 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 있다면? 사태의 심각성이 가장 크게 다가온 때는 우한에서 전세기를 타고 한국에 입국하기 전 며칠간이었다. 식재료가 떨어져 마트에 갔는데 물품이나 식량은 이미 동난 상태였고, 극도로 예민해진 사람들끼리 서로 밀치고 소리를 지르며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기존보다 몇 배나 많은 돈을 지불하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래도 마스크나 식량, 생필품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때 처음 돈이 쓸모없는 순간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고,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의 불안을 해소해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정책과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직접적으로 큰 도움을 받은 사람으로서 총영사관을 포함해 격리 시설 담당자, 의료진, 응원의 메시 지를 보내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분들의 노고를 잘 알기 때문에 확진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이 상황에서도 우리는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 무사히 잘 이겨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