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취향

나이가 들면 외모도 변하고, 입맛도 변하고, 친구 관계도 변하고, 섹스 취향도 변한다. ‘섹스는 밤에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지닌 채 나름의 방식으로 착실하게 성생활을 이어온 나 역시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취향이 변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아침에 하는 섹스의 맛을 알려준 사람은 얼마 전 헤어진 전 남자친구다. 연애 한 달 차에 떠난 여행에서 당연히 뜨거운 밤을 예상했던 내가 무색하게 ‘잘자’라는 말과 함께 정말 잠들어버린 그를 보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건 그날 밤뿐이었다. 아침이 되자 내 잠을 깨우려는 귀여운 뽀뽀인 줄 알았던 그의 스킨십은 키스와 애무로 이어졌고, 그날 나는 난생처음 해가 뜬 시간에 절정의 기분을 만끽했다. 나는 밤에만 섹스를 한다고 말하며 거절하기엔 그때까지 남자와 보낸 숱한 밤을 부정해도 될 만큼 아름다운 첫 모닝 섹스였다. 그동안 밤이라 더 야릇하고 짜릿한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잠에서 막 깨어난 순간보다 더 자극적인 상황은 없었다. 그날 이후부터 매번은 아니지만 여행을 갈 때면 우리는 늘 모닝 섹스를 즐겼다. 그리고 얼마 전 그는 내게 아침 출근길에 이별 문자를 보내왔다. K(35세, 회사원)

아침이 제일 좋아

아침에 하면 입 냄새가 신경 쓰일 것 같아서, 아침엔 바쁘니까, 너무 밝아서, 왠지 부끄러워서. 이런 이유로 모닝 섹스를 기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 단언할 수 있다. 알고보면 섹스라는 행위를 하며 몸의 감각에 집중하기에 아침보다 더 좋은 시간은 없다. 최소한 내 경험에 따르면 그렇다. 흔한 말로 속궁합이 좋은 지금의 애인을 만나면서 아침, 점심, 저녁, 밤, 새벽까지 시간을 가리지 않고 관계를 가져본 끝에 내린 결론이다. 사실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를 하는 데다 각자 좋아하고 싫어하는 행위에 대해 충분히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언제라도 좋지만, 우리 둘이 입을 모아 가장 좋았다고 꼽는 섹스의 공통점은 아침이다. 아침엔 하루를 보낸 피로감도 없고, 쌓여 있는 감정도 없고, 음식이나 술로 가득 찬 포만감이 다른 감각을 해칠 염려도 없다. 그래서 오로지 행위에 집중할 수 있고 감각은 가장 기민하게 살아 있다. 우리의 모닝 섹스는 한마디로 효율적이다. 영화나 술로 분위기를 잡느라 애매하게 시간을 쓰지 않고 할지 말지 눈치를 보지도 않는다. 솔직하게 서로가 좋아하는 애무를 주고 받는다. 이렇게 우리는 모닝 섹스를 즐긴 이후로 같이 대화를 하거나 취미 생활을 하거나 여행을 가는 것처럼 섹스 역시 즐거운 데이트 중 하나로 여겼고, 이로 인해 우리의 연애는 더 솔직하고 풍성해졌다. J(29세, 메이크업 아티스트)

로망 실현의 희생양

그와 한 짧은 연애를 끝내면서 헤어지는 진짜 이유는 결국 말하지 못했다. 우리는 안 맞는 것 같다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지만,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영화를 좋아해서 그런지 그는 로망이 많아도 너무 많은 사람이었다. 사귀자는 말을 하자마자 그는 어떻게 다 외운 건지 모르겠다 싶을 만큼 많은 데이트에 대한 로망을 쏟아냈다. 이 중 하나가 모닝 섹스였다. 어떤 영화에 나온 장면이라나. 하지만 영화에서는 전날 저녁부터 ‘내일 아침에 너와 관계를 가질 거야’라고 말을 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는 예고편을 보여주듯 며칠 전부터 모닝 섹스에 대해 품은 로망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 로망을 위해 굳이 평소에 입지도 않는 섹시한 잠옷을 사고, 섹스 시간을 벌기 위해 알람 시간을 1시간이나 당겼다. 이 덕분에 둘 다 푹 자지도 못하고, 피곤만 쌓인 채 억지로 로망을 실현하려 기를 썼다. 솔직히 말하면 모닝 섹스가 시큰둥했던 이유가 ‘아침이라서’는 아니지만, 그 이후로 누굴 만나도 아침에 섹스를 하진 않는다. 헤어질 때 과한 로망은 누군가에게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는 말은 해줄 걸 그랬나 싶다. Y(32세, 공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