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krainian Railroad Ladies(우크라이나 철도의 여성들)>은 포토그래퍼 사샤 마슬로프(Sasha Maslov)가 우크라이나의 철도 건널목에서 교통관제관과 안전 요원으로 일하는 여성들의 초상을 담은 연작 모음이다. 철길을 따라 지어진 작은 업무용 가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철도, 자동차, 자전거, 보행자 등 철도 건널목으로 들어오는 모든 존재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을 한다. 단순한 업무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들은 철저한 훈련과 교육을 거쳐 맡은 임무에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임한다.

샤샤 마슬로프는 1년 6개월여의 시간 동안 우크라이나 각지의 철도역을 방문해 소박하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지닌 철길 주변 가옥에서 그들의 초상을 찍으며, 대부분이 자동화한 21세기 철도 시스템에서 여전히 이런 직업이 존재하는 이유를 탐구했다.

“우크라이나는 정치적으로 혼돈 상태에 빠져 있다. 동부 지방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이웃 국가에 영토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끊임없는 부패와 깊이를 알 수 없는 경기 불황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차 차창 밖으로 눈길을 줘야 가끔씩 볼 수 있는, 노란색 깃발(기관사에게 철길 전방에 문제가 없음을 알려주는 신호)를 들고 서 있는 여성들은 사람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외면받기 쉬운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시대와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노란색 깃발을 든 이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의 일상에서 조용하고 꾸준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마치 폭풍우 속 등대처럼 누가 알아주거나 찾아주지 않아도 같은 자리에서 누군가의 안전을 위해 빛을 내고 있다. 이들은 변하지 않는 것의 상징이자, 과거를 긍정하며 현재에 고집스럽게 우뚝 서 있는 존재들이다. 수없이 지나치는 열차와 계속해서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에 서 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가 무언가? 어린 시절 우크라이나에서 지내면서 종종 기차 여행을 했었다. 어린 내게 모든 여행은 모험의 서곡 같은 느낌이라서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창밖으로 보이는 것들의 정체를 알기 위해 애썼던 기억이 있다. 특히 철길 주변 가옥 같은 작은 건물과 거기서 사는 사람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위치, 건물 구조, 깃발을 들고 있는 의문의 사람까지 모든 것이 호기심을 자아냈다. 그리고 사진가가 된 지금, 그때의 나를 매혹한 존재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이 프로젝트를 시작 했다.

왜 다양한 인물 중 철도 건널목에서 일하는 교통관제관과 안전 요원에 주목한 건가?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존재라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주목하는 사람이 없어 오히려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요즘처럼 혼란스러운 사건이 많이 생기는 시기에 복잡하고 머리 아픈 현실에서 벗어나 한적한 철길 주변에서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을 만나 환기하는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초상 사진 촬영을 요청했을 때, 그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대부분 사진 촬영에 거부감이 없긴 했지만, 자신에게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것을 민망해하기도 했다. 거절한 사람도 있지만, 이곳을 찾아와줬다는데 고마워하며 환대해줬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세운 원칙이 있다면? 이런 시리즈에서 중요한 것은 최대한 구체적인 부분까지 담아내면서 환경을 묘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찍고자 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철길 건널목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한 장면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또 포즈나 표정은 아주 기본적인 것만 지시했다. 촬영하고자 하는 환경과 사람에게 가능한 한 개입하지 않으려고 했다.

다양한 사진 작업 가운데 초상을 택한 이유가 있나? 포트레이트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기록해두는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때의 시간과 장소와 인물을 명확한 한 장의 사진으로 포착하기에 이보다 좋은 방식은 없다고 생각한다.

촬영하면서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었나? 한번은 약속한 촬영 시간에 맞춰 철길 건널목에 도착했는데, 찍기로 한 사람이 아직 화장을 안 해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하더라. 때마침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지인에게 집에 가서 딸의 화장 도구를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가 한참 뒤에 본인의 화장 도구를 들고 왔다. 딸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에 끼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는 거다.

촬영하면서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도 궁금하다. 긴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지만, 몇몇 재미있는 순간은 있었다. 한 분은 제복 바지가 없어서 청바지를 입고 근무하고 있었는데, 청바지 차림으로는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하는 거다. 청바지를 입고 찍은 자신의 사진 때문에 이 직업이 만만하게 보이는 걸 원치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어떤 분은 이 프로젝트가 더 많이 알려져 월급이 오르면 좋겠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얘기도 했다.

사진을 보면서 그들이 머무는 공간의 색과 인테리어에도 눈길이 갔다. 그들은 실제로 철길 주변 가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각자의 취향대로 집을 꾸미거나 개인 물품을 가져다 놓고,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정원을 가꾸기도 한다. 자신이 일하는 곳을 자신의 색으로 꾸미고 친근한 환경으로 조성하는 거다. 그 때문인지 각각의 가옥은 철도역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광경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 ‘21세기에 이 직업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탐구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그 탐구의 결과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반화의 오류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규칙을 잘 지키지 않는다. 기회만 있으면 규칙을 어기려 들고, 누가 보지 않을 때는 특히 더 그렇다. 그래서 차단기도 자동으로 내려오고, 경보음과 교통신호도 자동으로 조정되는 철도 시스템 안에서도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이들이 존재하는 거다. 기차가 지나갈 때 사람이 건널목을 지키고 서 있으면 차단기를 돌아서 지나가려고 하는 운전자, 기차 앞으로 잽싸게 지나가려는 보행자나 자전거 탑승자의 비율이 매우 낮아진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철도공사에서 불필요한 건널목 초소 몇 곳을 폐쇄하는 실험을 해보기도 했는데, 폐쇄 이후 사고가 급증해서 다시 초소를 열고 교통관제관으로 하여금 자리를 지키게 했다고 한다.

1년 6개월 동안 이어진 이 프로젝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들었다.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마무리될 것 같은가? 완벽한 끝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철도 건널목에서 교통관제관과 안전 요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프로젝트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쌓아갈 것 같다. 지금은 우크라이나에 갈 수 없지만, 언젠가 다시 철길 주변의 작은 집을 찾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끝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 정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