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등반을 하기 위해 주말이면 강원도로 떠났던 캐나다인 남편 레스 팀머맨즈(이하 레스)와 한국인 아내 김수진 씨는 정원이 있는 시골집에 살고 싶은 로망을 8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실현했다. 현실적인 문제는 잠시 밀어두고 꿈에 그리던 집을 찾았고, 일단 평창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도시의 한 고등 학교에서 일하던 아내는 강원도로 전근 신청을 했지만 예상과 달리 평창에서 먼 동해로 발령이 나 뜻하지 않게 주말 부부로 살게 됐다. 도시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평창에 정착한 남편은 시골 마을에서 사는 삶에 스며들며 홈 브루잉을 시작했다. 그리고 동해의 학교에서 2년간 근무를 마친 아내가 평창으로 돌아왔다. 그 무렵 캐나다에 사는 남편의 어머니 집근처에 수제 맥주 제조와 양조장 관리에 관해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부부는 캐나다로 떠났다. 남편은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평창으로 돌아와 지난해 1월 ‘화이트 크로우 브루잉’을 오픈했다. 화이트 크로우라는 이름은 평창의 옛 이름인 백오현(흰까마귀의 고장)에서 따왔다.

맥주 맛의 시작은 아이디어다. “꿈의 맥주가 무엇인지 늘생각해요. 특별한 맥주를 만들고 싶거든요. 맛을 상상한 다음 어떤 성분이 필요한지, 무엇을 섞어야 할지 고민하며 레시피를 만들어가죠. 곧 출시할 예정인 ‘새소리’는 얼그레이를 블렌딩했어요. 맛 좋은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의 비율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떤 재료든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아야 해요.”(레스) 화이트 크로우는 자연에서 만든 맥주를 지향하며 지하 220m에서 길어 올린 천연 암반수를 바탕으로 질 좋 은 몰트와 홉을 더한다. 지난해 8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2019 아시아 맥주 챔피언십에서 화이트 크로우의 ‘고라니 브라운’이 브라운 에일 부문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현재 이곳에서 만드는 맥주는 10여 종으로 평창 골드, 앨티튜드 앰버, 고라니 브라운, 화이트 크로우 IPA, 하이홉, 영벅, 블랙벅, 밝은 밤, 새소리 등이다. 각각의 이름에는 저마다 의미가 담겨 있고 이는 대부분 평창의 자연과 관련있다. 이 중 불그스름한 색을 띠는 ‘앨티튜드 앰버’는 평창의 가을 하늘을 의미한다. 해발고도란 의미의 앨티튜드라는 이름은 평창의 높은 고도에서 착안한 것이다. ‘평창 골드’라는 이름에는 평창 동계 올림픽의 금메달과 햇빛을 담고자 했다. ‘하이홉’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홉’이 많이 들어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희망’차다는 것. ‘밝은밤’은 평창의 별이 쏟아지는 밤이 모티프가 되었다. 모든 맥주는 포스터를 따로 제작해 각자가 가진 스토리를 그림으로 담아냈다. 앞으로 자신들이 키우는 강아지 이름을 딴 맥주도 만들 예정이다. “집에 개가 세 마리 있어요. 모두 유기견이었죠. 눈이 하나 뿐인 시추 웅을 위한 ‘원 IPA’, 다니던 학교 옆에서 발견한 엄마 유기견 그레이시를 위한 ‘그레이시 스타우트’, 그레이시의 새끼 메리 브라운을 위한 ‘메리 브라운 에일’을 만들 예정이에요. ‘레스큐 독(Rescue a Dog)’ 라인이 되는 거죠.”(최수진) 얼마 전 완성한 새소리에 이어 사우어 맥주도 만들 계획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매년 6월에는 달리기 행사를, 가을에는 사이클 대회를 열었는데, 올해는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하기 위해 잠시 보류 중. “맥주 만드는 일의 가장 큰 즐거움은 좋은 사람들과 좋은 맥주를 나눠 마실 수 있다는 거예요. 평창에 와서 브루어리를 운영하며 새로운 인연을 많이 만났어요. 오늘 밤에도 잠시 ‘애비로드 펜션’에 들러 신선한 생맥주를 나눠 마시려고요.(웃음) 하루 일과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도 브루어리에서 일과를 마치고 맥주를 마실 때예요.”(레스) 맥주를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맥아에 뜨거운 물을 부어 당이 빠지게 하는 당화 과정을 거친뒤 한 번 끓인다. 여기에 홉을 넣어 끓여 효모와 이스트를 넣고 발효시키는데 발효 후 맛에 따라 홉이나 다른 재료를 첨가해 맛을 만들어간다. 그다음은 숙성. 맥주가 완성되기까지 라거는 석 달, 에일은 한 달 정도 걸린다. 이 시간 동안 청소에 많은 공을 들인다. 브루어리를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이 맥주 맛의 기본이기 때문. 브루어리에 있는 탭하우스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에 3일만 문을 연다. 탭하우스에서는 네 가지 맥주를 맛볼 수 있는 맥주 샘플러와 캐나다식 감자튀김인 푸틴과 페퍼로니 피자 등 맥주와 어울리는 음식도 맛볼 수 있다. 탭하우스가 문을 열지 않아도 브루어리에 가면 병맥주를 구입할 수 있다.

SUMMER PICK
새소리

“영종도에 위치한 슬로스 브루잉과 콜라보레이션한 맥주.
도수가 4.7도로 낮은 편이며 얼그레이 티를 첨가해
홍차 특유의 향과 시트러스 향기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룬다.
오후에 차 한 잔을 마시듯 여름날 오후에 마시면 청량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화이트 크 로우 브루잉 대표
레스 팀머멘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