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하고 거친 느낌의 노출 콘크리트 실내 한가운데 녹색 화원을 꾸며놓은 카페나 깨끗한 하얀벽 앞에 곧게 뻗은 선인장을 놓아둔 거실.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종종 본 이미지일터.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간결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테리어 트렌드에서 새롭게 각광받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푸릇푸릇한 생명의 기운을 뿜어내는 식물들이다. 식물이 주는 에너지가 좋아 플랜트 숍을 차리고, 푸르른 식물의 싱그러운 기운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파하는 사람들에게 플랜테리어에 대해 물었다. 이들은 공간과 식물을 충분히 이해하고 식물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플랜테리어라고 말한다.

허유경 5년째 더플랜트룸 (@_theplantroom_)을 운영하고 있는 플랜트 디자이너. 예쁜 식물을 돋보이게 만들 화기도 함께 디자인하고 있다.

어떻게 플랜트 숍을 운영하게 되었나요? 예전에 패션 브랜드의 VMD로 일했어요. 그때부터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 해외 사례를 많이 찾아봤죠. 그러던 중 플랜테리어 사진을 보게 됐어요.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꽃에 열광하는 분위기였는데, 저는 초록 식물로 채운 공간이 눈에 띄더라고요. 이국적인 식물과 독특한 화기도 매력적이고요.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화훼 단지를 찾아가 식물을 보고 직접 키우며 집을 꾸미기 시작했어요. 혼자 보기 아까워 SNS에 올린 사진을 보고 관심을 갖는 분이 늘면서 제가 키우던 식물을 분양하기 시작했고,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싶어 더플랜트룸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플랜트 작업을 하며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식물 자체도 물론 좋아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 식물이 더 예뻐 보일지를 고민해요. 그래서 접시나 컵 등 식물을 담을 수 있는 것이라면 다 관심을 갖고, 마음에 드는 화분이 있으면 해외에서 직접 사들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노랑 화분을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제작했는데, 반응이 꽤 좋았어요. 그래서 앞으로 행잉 화분처럼 좀 더 다양한 스타일의 화분을 제작해보려고 해요. 이런 노력 덕분인지, 고객들도 분명 같은 식물인데 더플랜트룸의 것은 어딘가 다르다고 하세요. 여기서 사면 더 예뻐 보인다고.

봄에 어울리는 플랜트는 무엇인가요? 필레아 페페로미오이데스(Pilea Peperomioides)라는 식물이요. 작고 동글동글한 잎이 귀엽고, 날이 따뜻해지면 새잎이 나고 꽃도 피어 키우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오늘 가져온 다육식물 청기린도 좋아요. 연필선인장이라고도 불리는데, 연필처럼 길쭉하게 생겨서 해를 향해 구불구불 커가는 모습이 매력적이거든요. 플랜테리어를 하기에는 올리브나무도 좋지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제가 얼마 전 출산했는데, 이젠 아이가 좋아하는 반려 식물을 키우고 싶어요.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분이 많을 것 같아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식물 수업이나 화분 만들기 클래스 등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려고 해요.

 

이지연 지하철 선정릉역 앞에서 플랜트 숍 그라운드 (@plantspace_ground)를 운영하는 중. 인테리어 잡지 편집장 출신으로 공간에 최적화된 식물을 제안한다.

플랜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오랫동안 매거진의 피처 에디터로 일했어요. 직업 특성상 야근과 출장이 잦고 취재를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다보니 생활 리듬이 무너지더라고요. 지치지 않고 꾸준히 일하기 위해서는 일상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요리를 하거나 식물을 키우는 등 일상의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사실 식물을 돌보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질 수
도 있지만, 전 오히려 식물들이 저를 돌본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인테리어 잡지 편집장이 된 이후예요. 인테리어의 화룡점정이 미술품과 식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예술과 생명이 공간에 숨결을 불어넣어주니까요. 자연스럽게 식물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고, 관련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죠. 퇴사 후 콘텐츠 제작 일과 플랜트 숍을 함께 할 수 있는 작업실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이곳이 마음에 들어 그라운드를 오픈했어요.

본인에게 특별한 플랜트가 있나요? 지금 그라운드에서 잘 살고 있는 담팔수요. 저도 처음 보는 나무였는데, 동그랗게 돌려 나는 잎과 수형이 마음에 들어 구입한 뒤 관련 자료를 찾아봤죠. 그런데 알고 보니 제주 일부 지역에서 자생하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더라고요. ‘내가 천연기념물을 판매하는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는 건가’하는 불안한 마음에 제주시와 국립수목원 등 여기저기 문의해보니 모든 담팔수가 천연기념물인 것은 아니고, 이 나무처럼 이력이 확인되지 않는 건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병충해 때문에 제주 지역 담팔수가 고사하는 경우가 늘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는 말을 듣고 판매를 포기했어요. 이후 제가 쭉 키우고 있죠.

플랜테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가구나 조명 등과 조화를 이루는 감각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공간을 충분히 이해해야 해요. 의외로 식물을 키우는 환경이라는 측면에서 공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꽤 많거든요. 환하긴 하지만 북향이라 채광이 충분하지 않은 집이 있는가 하면, 남향집이라도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구석에 식물을 두는 경우처럼요. 그러니 식물을 들이기 전, 전문가와 공간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보길 권합니다.

앞으로 계획은요? 전 일상의 힘을 믿어요. 다들 고단한 시대잖아요. 무너지지 않으려면 힘들고 지칠 때마다 돌아갈 수 있는 탄탄한 일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디지털이나 거창한 이벤트로는 구현할 수 없는 소소한 것, 손에 만져지는 체험적 콘텐츠 말이에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 식물 전반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는 소규모 가드닝 클래스를 시작했어요. 앞으로도 다양한 사람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일을 기획할 생각입니다. 물론 콘텐츠 제작일도 꾸준히 계속할 거고요.

 

이혜리 독특하고 괴상한 식물을 사랑하고 이들에 집착한다.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그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싶어 8년 전 그 이름도 독특한 플랜트 오드(@plant_odd)를 오픈했다.

플랜트 오드라니, 이름부터 독특하네요. ‘덕후’라고 하죠? 어릴 때부터 뭐 하나에 꽂히면 정신없이 빠져드는 성향이 있었어요. 레고, 피규어, 건담 플라모델 등 뭐 하나가 마음에 들면 며칠 밤을 새우면서 ‘덕질’을 즐겼죠. 어느 날, 해외여행 중 한 숍에 걸린 특별한 오브제를 본 뒤 그 대상이 바뀌었어요. 사슴뿔처럼 생긴 것이 너무 예뻤는데, 알고 보니 박쥐란이라는 살아 있는 식물이더라고
요! 이후 독특한 식물에 빠져 정신없이 자료를 찾기 시작했어요. 해외에서 생활하는 지인을 총동원해 식물을 공수하고, 이 식물들에 맞는 화분을 골라주며 나만의 컬렉션을 완성해갔죠. 그러다 문득 ‘이렇게 예쁜 식물들을 나만 좋아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식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플랜트 오드를 오픈했습니다.

오늘 함께 가져온 식물도 독특한데 이름이 뭔가요? 최근 식물 애호가 사이에서 가장 핫한 것이 괴근식물이에요. 줄기나 뿌리가 통통한 식물로, 같은 종이라도 개체마다 생김새와 크기, 색깔이 다 다르죠. 수백 년, 수천 년을 사는 아이들도 있으니 그야말로 평생을 함께할 반려 식물로 좋아요. 오늘 가져온 아이도 괴근식물 중 하나인 파키포디움 그락실리우스(Pachypodium Gracilius)예
요. 외계 생명체처럼 뚱뚱한 몸통과 둥글고 작은 잎이 매력적이죠. 마다가스카르의 척박한 암반 지형에서 자생하는데, 성장이 아주 느려요. 이렇게 작아도 여든 살이랍니다. 뭐든 빨리 결과를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제 급한 성격과 너무나 다른데도, 오랜 세월 천천히 성장하며 만들어낸 결과물 같은 외모에 마음을 빼앗겼어요.

플랜트 오드는 인테리어도 특이한데요? 처음 오는 분은 플랜트 숍 자체를 어색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분명 화원이나 꽃집인 것 같은데, 꽃 한 송이 없으니까요. 거기다 식물이 다 특이하게 생겼으니 더 호기심을 갖고 식물원이냐, 카페냐, 그것도 아니면 뭐 하는 곳이냐 하며 궁금해하죠. 사실 그 점을 노렸어요. 특별한 식물을 보고 흥미와 호기심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요. 그 때문인지 이곳을 다녀가면 며칠 뒤 다시 찾아오는 분이 꽤 많아요. 여기서 본 식물이 눈앞에 자꾸 아른거린다고 하시면서요. 취향이 확고한 마니아들은 지방은 물론 해외에서도 꾸준히 찾아오시죠. 그리고 대부분 이곳에서 한두 시간씩 보내며 좋아하는 식물 이야기를 실컷 나눈답니다.

꿈은 무언가요? 플랜트 오드에서 식물만 다루는 것은 아니에요. 독특한 식물을 담을 수 있는 용기가 없어 직접 디자인하기도 하고, 예쁜 것을 좋아하는 제 취향을 담아 전문적이고 세련된 가드닝용품을 수입해 팔기도 하죠. 얼마 전부터 이런 다양한 것을 모아 식물 브랜딩 작업을 시작했어요. 앞으로는 트렁코(TRUNK_O)라는 브랜드를 통해 식물과 화분, 화훼용품, 책 등 플랜트 관련 제품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기회가 되면 식물뿐 아니라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 협업 프로젝트도 진행해보고 싶어요.

 

이구름 플랜트 숍 슬로우파마씨 (@slow_pharmacy)를 운영하는 중. 예쁜 식물을 소개하는 한편, 많은 브랜드와 협업하며 다양한 그린 플랜테리어를 선보이고 있다.

약국 콘셉트의 숍이 인상적이에요. 현대인에게는 식물이 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만들었어요. 사실 전 꽃집에서 자라 주변에 늘 꽃이 많았는데도 별 관심이 없었어요. 왜 꽃을 돈 주고 사는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도 늘 엄마를 따라 농장이나 꽃 시장에 갔던 걸 보면 꽃을 좋아하지 않아도 식물은 좋아했던 것 같아요. 학교를 졸업한 후 광고 분야에서 일하다가 퇴사하고 좀 한가해지니 비로소 식물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더군요. 휴대폰이나 컴퓨터 모니터 대신 푸른 식물을 보는 것이 좋고, 익숙한 공간에 식물을 하나 두는 것만으로 분위기가 달라지는 게 신기했어요. 그때 ‘식물과 함께하는 시간이 사람한테 큰 약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주변 사람들과 이런 여유를 나누고 싶어 식물을 선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걸 브랜딩해 문을 연 곳이 슬로우파마씨인데, 제 의도가 잘 전달된 것 같아요. 실제로 일상에 지친 직장인이나 이 동네 분들이 특별한 목적 없이 이곳에 들러 편하게 둘러보며 힐링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점심시간마다 찾아오는 분들도 계시고요.

비커와 삼각플라스크에 넣은 플랜트는 어떻게 만들었나요? 제가 어릴 때부터 과학실과 병원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어른이 되어 돈이 생기면 과학실에 있는 기구들을 꼭 사야지 생각했고, 나이를 먹으면서 실제로 하나둘씩 사서 모아두게 됐죠. 어느 날부터 제 주변에 있는 식물을 갖고 있던 실험실 도구에 넣어 지인들에게 선물했는데, 지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더라고요.
그게 본격적인 플랜트 작업의 시작이었죠.

브랜드 작업도 많이 하시더라고요. 화장품 매장의 인테리어 작업에 참여하거나 이벤트의 포토월을 제작하고 가구 브랜드와 팝업스토어를 여는 등 여러 브랜드와 협업했어요. 이런 프로젝트를 하며 제가 절대 잊지 않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우리가 사회에 쓰레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누군가는 행복해야 한다’는 거예요. 실제로 이벤트 하나를 진행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식물을 동원하는데, 우리는 이 식물들을 절대 죽이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비용을 이미 지불한 경우라도 이벤트가 끝나면 원래 있던 농장으로 돌려보내거나, 식물을 키워주실 분을 찾아 보내죠. 실
제로 한 기업 행사 이후에는 스태프들이 식물을 전부 데려갔어요. 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기획하는 우리든, 진행에 참여하는 스태프든, 이벤트장을 방문하는 손님이든 누군가는 꼭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작업해요.

올해 계획은요? 돈을 버는 데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예정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는 거죠. 아마 전시가 많아질 것 같아요. 어린이를 위한 체험형 전시를 이미 기획했고, 사무실에서 식물을 키우는 분들을 위한 전시도 열 예정입니다. 원룸을 빌려서 그 안을 온통 식물로 채우는 것으로 시작해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해온 ‘초록에 미친 사람들’ 시리즈도 이어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