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끌레르 코리아 - 류혜영에 대한 기대

마리끌레르 코리아 - 류혜영에 대한 기대

화이트 오버 핏 셔츠 코스(COS), 앞이 트인 아이보리 스커트 톰보이(Tomboy), 스트랩 스틸레토 힐 할리샵(Hollyshop), 반지 모두 넘버링(Numbering).

마리끌레르 코리아 - 류혜영에 대한 기대

그레이 니트 터틀넥 풀오버 앤더슨벨(Andersson Bell), 데님 팬츠 씨위(Siwy), 스틸레토 힐 모노바비(Monobabie), 반지 모두 넘버링(Numbering).

마리끌레르 코리아 - 류혜영에 대한 기대

그레이 니트 터틀넥 풀오버 앤더슨벨(Andersson Bell), 반지 모두 넘버링(Numbering).

독립영화 <잉투기>에서 류혜영이라는 배우를 처음 봤다. 그녀가 연기한 인물 ‘영자’의 괴짜 같은 모습은 꽤 충격적이었다. 분홍색 가발을 쓰고 치킨을 우적우적 뜯어 먹던 장면, 육두문자를 대차게 내뱉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녀는 이후 설경구, 박해일이 함께한 영화 <나의 독재자>, 허당기 넘치는 국가정보원 요원으로 등장했던 드라마 <스파이>를 통해 똘기(!)를 조금 덜어낸 연기를 선보였다. 그런데도 사실 여전히 류혜영이라는 배우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분명 <잉투기>에서 인상은 막강했지만, 다른 몇몇 작품에서는 조금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간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 그녀가 곧 방영되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캐스팅됐다. 응답하라 시리즈 특유의 쫀득한 스토리를 통해 드러날 그녀의 모습이 벌써부터 머릿속에 그려진다.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로 가득한 이 드라마에 괴짜 소녀 영자를 보며 느꼈던 거칠지만 생생한 날것의 느낌이 어떻게 녹아들었을지도 궁금하다. 아무래도 지난 시즌에 푹 빠졌던 것처럼 <응답하라 1988>도 꼬박꼬박 챙겨 보게 될 것 같다.

매 시즌 엄청난 사랑을 받는 드라마죠. <응답하라 1988>에 합류하게 된 소감이 어떤가요? 감독님께서 영화 <잉투기> 속 제 모습을 보시고는 “저 못생기고 이상한 애 누구야?” 하시면서 역할을 맡기자고 하셨대요.(웃음) 막상 캐스팅 미팅에 갔을 땐 긴장해서 연기를 제대로 못했는데 캐스팅이 확정됐다는 연락이 와서 엄청나게 기뻤죠. 우리 드라마가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너무 기대돼요.

한편으로는 부담도 될 것 같아요. 아주 많은 사람들이 크게 기대하는 드라마니까요. 캐릭터의 이미지에 오랫동안 갇혀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해요. 그래도 다행인 게 제가 연기하는 인물이 굉장히 입체적인 캐릭터예요. 성격도 수시로 변하고, 또 풍부한 감정 표현도 그렇고요.

1988년에 살고 있는 캐릭터를 이해하는 과정이 까다롭지는 않았나요? 캐스팅되고 나서 촬영을 시작하기까지 준비 기간이 길었어요. 그래서 맡은 캐릭터와 깊이 친해질 시간이 있었죠. 매일 보는 가까운 친구가 된 느낌이에요. 실제 제 모습과 연결해보려 노력했어요. 닮은 점을 하나씩 찾아가면서요. 아무래도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땐 1991년생인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했죠. 그런데 시나리오를 모두 읽어보니 시대를 넘어서는 따뜻한 정서의 가족 이야기더라고요. 물론 1988년대를 자세히 상상하면서 연기에 몰입하는 것도 잊어선 안 되죠. <응답하라 1988>은 27년 전의 시대라는 근사한 옷을 입은 드라마니까요.

같이 촬영하는 배우들하고도 가족처럼 지내고 있겠네요. 푸근한 선배 배우들도 있고, 또 친구같이 지낼 또래 배우들도 많잖아요. 진짜 재미있어요. 특히 함께 출연하는 배우 고경표와는 대학 때부터 절친한 사이예요. 다른 배우들하고도 많이 친해져서 편해요. “촬영보다 회식을 더 많이 한다, 이제 일 좀 하자”라며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자주 모여요.(웃음)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했어요. 매일 학교, 학원, 독서실을 전전하는 패턴에서 벗어나고 싶었거든요. 미래를 위해 공부에만 매달리는 것보다는 그 나이에 맞게 매 순간을 신나게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예고에서 연기를 공부하면서 단편영화를 찍으려 다녔고, 첫 장편영화 <잉투기>를 만나면서 조금씩 작품의 폭을 넓혔죠. 고등학생 때부터 유난히 현장에 머무는 시간 자체를 좋아했어요. 연기자로든 촬영 스태프로든 꼭 현장에서 지낼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현장이 아무리 좋아도 가끔은 지칠 때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촬영하는 건 힘들지 않아요. 다만 배우로서 산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어떤 작품을 하는지, 어떤 배역을 맡았는지 그리고 대중의 반응이 어떤지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배우가 된 건 인간 류혜영의 행복을 위해 직업으로 선택한 것뿐인데 가끔은 그 두 가지 류혜영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헷갈릴 때가 있어요. 작품과 연기에 집중해야 하는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저 자신의 행복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혼란스러울 땐 어떻게 극복하나요? 음악을 들어요. 요즘에는 특히 클래식 음악에 빠져 있죠. CD를 잔뜩 구해다가 틀어놓고 계속 들어요. 클래식이 정말 신기한 게, 들을 때마다 기분에 따라 다르게 들려요. 이제 공연도 찾아다니려고요.

스스로의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클래식을 찾아 듣는 배우라니, 매력적이네요. 스스로 자신이 어떤 배우라고 생각해요? 하얀 도화지 같은 연기자가 좋은 배우라는 말이 있지만 저는 도화지가 아니라 물감 팔레트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게 붓을 쥐여주면 어떤 색깔이든 새롭게 표현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비록 한두 가지 물감만 채워져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색의 물감을 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