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혹은 동네나 근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었던 지난 몇 달 사이, 소셜 미디어에는 다양한 반려 작물이 등장했다. 심자마자 자라기 시작하는 파부터 꾸준히 싱싱한 잎을 키워내는 상추, 귀여운 딸기나 어쩐지 키우기 쉽지 않을 것 같은 아보카도까지, 다양한 작물을 직접 키우는 사람들은 애칭을 지어주거나 성장 과정을 실시간으로 자랑하며 새로운 문화를 형성했다. 이렇게 도심에서 소소하게 농사를 짓는 ‘어번 파밍’을 꽤 오래전부터 즐기며 이제는 직접 키워 먹는 재미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여성 4명을 만났다.

박선홍   도심 텃밭에서 농작물을 키우고 직접 키운 작물로 요리도 하는 도시 농부. 농사 관련 노하우를 담은 <요리하는 도시농부>, 비건 베이킹 북 <채소로 맛있게 구웠습니다>를 발간했으며, 지금은 채소 요리 레시피를 담은 책을 쓰고 있다.

처음 농사를 짓던 때가 기억나나요?

그럼요. 원래 요리랑 식물 키우는 걸 좋아했는데, 문득 이 두 가지를 접목 해 채소를 직접 키워서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때마침 한 백화점이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공용 텃밭을 분양한다는 소식을 듣고 언니랑 같이 참가했어요. 매주 적게는 한 번, 많으면 두세 번 그곳을 찾아 다양한 먹거리를 키웠죠. 긴 장마 탓에 2주 만에 찾은 텃밭에서 잡초가 내 어깨높이만큼 자란 광경을 보며 울고 싶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사실 잡초는 농사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어 자르거나 밟아주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는데, 당시에는 그 사실을 몰라 무조건 다 뽑았거든요. 그 이후 집에서 조금 더 가까운 곳에 텃밭을 얻어 지금까지 소소하게 작물을 키우고 있어요.

요즘은 무엇을 키우시나요?

처음에는 단기간에 수확할 수 있는 상추 등 잎채소를 키웠어요. 이후 당근, 부추, 래디시, 비트, 콜라비 등 채소부터 애플민트, 페퍼민트 같은 허브까지 다양한 작물을 키웠고요. 최근에는 아스파라거스를 수확했는데, 씨앗을 뿌린 뒤 수확하기까지 3년 넘게 걸렸답니다. 제 텃밭에서 가장 오래 키운 채소라 애정이 더 가요. 도시 농사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일까요? 직접 키운 건강한 채소를 먹을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는 분이 많은 것 같은데, 전 그보다 힐링이 된다는 사실이 더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할 무렵 정신적으로 좀 지친 상태였는데, 채소를 키우며 자연과 가까이하다 보니 어느 순간 스트레스가 풀리고 웃음이 많아지더라고요. 성공만을 좇던 삶에서 벗어나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됐어요. 도시 농업에 도전하는 여러분도 채소나 허브를 완벽하게 키우겠다는 생각보다는 작은 씨앗이 자라 수확이 가능한 작물이 되는 과정을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겠다는 생각으로 정성을 쏟다 보면 수확의 기쁨과 자연이 주는 힐링을 함께 누릴 수 있을 거예요.

 

최이경   아파트 안에서 식자재를 키우던 노하우를 기반으로 실내에서 채소를 비롯한 식물을 쉽게 키울 수 있는 키트를 만들었고, 이를 판매하는 키친 가든 몰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부터 실내에서 농작물을 키우셨나요?

아니요. 아파트에 살면서 자연을 느끼고 내 손으로 농사를 지어 가족들과 유기농 식자재로 건강에 이로운 음식을 만들어 먹고 싶어 주말농장이나 아파트 공용 텃밭 등 다양한 곳에서 농사를 지어봤어요. 근데 수도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거나 주변 환경이 지저분한 경우 등 다양한 문제가 생겨 결국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실내에서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어요. 실내에서 농사를 짓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여러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빛이 가장 큰 관건인데, 제아무리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라 할지라도 노지와 비교해보면 광량이 40~70%밖에 되지 않아 농작물을 키우기가 쉽지 않거든요. 식물 재배등 같은 인공 광이 꼭 필요하죠. 반대로 얘기해보면, 빛의 양이 충족된다면 베란다는 물론 식탁 등 실내 어느 곳에서도 충분히 식물을 키울 수 있어요. 공간이 부족한 한계를 극복하거나 흙에서 생기는 벌레 등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물로 농작물을 키우는 수경재배가 안전해요.

그런 노하우를 담아 사업을 시작하신 거군요.

직접 농사를 지으며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다보니, 체계적인 실내 재배 시스템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어요. 세계 여러 나라에 이미 다양한 제품이 나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설령 관련 제품이 있다 하더라도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요. 그래서 직접 가정용 수경재 배기와 LED 식물 재배 텐트를 디자인하고, 네덜란드에서 양질의 인공 토양을 수입해 키트를 만들었어요. 이걸로 2017년 환경부 주최 혁신형 에코 디자인 사업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고요. 이렇게 조금만 조사해보면 실내에서도 충분히 농사를 지으며 기쁨을 얻고 힐링할 방법이 있으니,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지 말고 꼭 농작물을 키워보세요.

 

박신연숙   개인 텃밭과 아파트 공동 텃밭을 가꾸는 중. 가까운 지역에 사는 정원사들과 함께 경의선 숲길 마을 정원사회를 만들고 공동체 정원을 가꾸는 시민정원사 과정도 운영하고 있다.

처음 농사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원래 사회운동이나 여성운동에 관심이 많아요. 이 일환으로 지렁이를 이용해 도시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만드는 활동을 하게 됐는데, 여기서 나온 비료로 동네 공터에 꽃을 키우다 보니 농사를 지을 수도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치더라고요. 당시는 도시 농부라는 용어 자체가 어색할 정도로 도심 속 텃밭을 찾아보기 힘든 때였거든요. 바로 도시 농부 학교에 참여해 집 옥상과 베란다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죠. 이렇게 조금씩 농작물을 키우다 보니 도심 속 버려진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이 농사를 지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겨 정책적으로 공터를 주민들이 텃밭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하기도 했어요.

도시 농사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일까요?

몰입과 치유요. 작은 씨앗이 땅을 뚫고 나와 새싹을 틔우고, 그 싹이 커가는 모습은 더없이 감동적이거든요. 저 역시 이런 자연의 에너지와 기운으로 삶의 피로를 치유했고요. 실제로 도시 농부로 사는 많은 사람을 만나며 어쩌면 우리는 모두 경작 본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요. 누구나 농작물이 커가는 과정을 보면 행복해하거든요. 더불어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나 스스로 먹거리를 재배한다는 긍지, 주변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 경험을 쌓고 지구나 생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도 긍정적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시 농부로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내가 키운 작물로 밥상을 차려 먹는 건 분명 큰 행복이에요. 하지만 더 큰 행복은 근처에 사는 동네 사람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수확물을 나누는 데 있습니다. 함께 농사를 지은 동네 분들과 각자 텃밭에서 재배한 배추나 무, 쪽파 등을 갖고 모여 겉절이를 담그고, 돼지고기 수육을 만들어 옥상 파티를 한 일이 기억에 남아요. 지난해부터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 본격적으로 마을정원사 모임을 만들고 8백 평 규모의 공유 정원을 가꾸며 작으나마 공동체 텃밭을 운영하게 된 것도 기쁜 일이고요.

 

박희란   베란다 농사의 노하우를 담은 블로그가 큰 인기를 끌며 책 <베란다 채소밭>을 펴냈다. 식물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지금은 플라워 숍을 운영하고 있다.

베란다 농사의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집에서 벗어나 일부러 주말농장이나 공동 텃밭을 찾아가 농사를 짓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생활 공간에서 농사를 지을 방법을 찾다가 집 안의 땅이라 할 수 있는 베란다를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아이 먹거리 한 가지만 키워보자는 생각으로 화분 하나에 심은 채소가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 다른 채소도 하나둘 키우다보니 어느새 베란다가 채소밭이 되었어요. 이렇듯 내가 생활하는 공간 내에 밭이 있으니 농사를 짓겠다고 큰 결심을 하거나 시간과 공을 특별히 더 들이지 않고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베란다 농사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소꿉장난 같은 재미있는 농사라고 할까요?

반대로, 베란다 농사의 어려운 점은요?

편하긴 하지만 모든 것이 부족한 게 사실이에요. 햇볕, 바람, 공기, 공간 등 제약이 많죠. 그래서 노지에서 자라는 채소의 크기나 수확량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어요. 왜 우리 집에만 오면 식물이 다 죽지? 난 키우기 쉽다는 채소도 못 키우는 사람인가? 내 손은 마이너스의 손인가? 이런 자책감이 들 수 있죠. 하지만 베란다 농사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고 욕심을 버리면 어느새 농사를 놀이처럼 즐기게 될 거예요. 화초를 가꾸듯 집 안 농사를 평생의 취미로 삼고, 즐거운 취미 생활을 하며 건강한 먹거리까지 덤으로 얻는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책을 본 소감 중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무엇인가요?

제가 베란다 농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관련 정보가 거의 없었어요. 엄마가 유일한 조언자였죠. 이런 제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운영한 블로그가 인기를 끌었고, 거기서 시작된 책이니만큼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이 피드백을 해주세요. 화분 대신 재활용품과 생활용품을 이용해 채소를 재배하는 방법을 소개해서 좀 더 친근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한 고등학생이 제 책을 보고 가드닝이나 채소 재배, 식물과 관련한 일을 꿈꾸게 되었다는 말이나 우울증을 앓던 분이 베란다에서 채소를 키우며 치유했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