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데리코 펠리니가 20세기에 선보인 이탈리아 영화 <라 돌체 비타>. ‘달콤한 인생’이라는 의미와 달리 영화 내용은 전혀 달콤하지 않지만, 라 돌체 비타라는 말은 이탈리아 패션의 황금기로 정의되는 1950~60년대에 성행한 라이프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패션계의 전설로 남는다. 여인의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가슴 선을 부각하는 란제리 드레스부터 우아한 블랙 이브닝드레스, 엉덩이 라인을 부풀린 풀 스커트, 크로커다일 가죽 펌프스, 번쩍이는 페이턴트 가죽 팬츠, 속이 훤히 보이는 드라마틱한 패턴의 시스루 블라우스 등 이탈리아 여인의 관능적인 이미지는 이 시대에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직후인 1950년대는 전 세계가 경제적으로 가장 번영한 시기였다. 부유한 사람들은 자연스레 소비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패션, 영화 등 각종 산업이 눈에 띄게 발전했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 리조트 룩과 스포츠웨어를 찾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물론이다. 이뿐 아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오드리 헵번, 지나 롤로브리지다 등 시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들이 당시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이들이 영화에서 입고 등장한 룩이 전 세계의 트렌드를 좌우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이탤리언 뷰티’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당시 이탈리아 여인들의 로맨틱하고 글래머러스한 스타일은 널리 사랑받았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입은 풀 스커트가 열풍을 몰고 온 건 물론이고,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클레오파트라>에서 착용한 불가리 주얼리는 2011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경매 역사상 최고 가치를 지닌 주얼리로 기록될 정도였다. 1950년대에 이어 이탈리아 스타일이 다시금 꽃피운 시기는 1990년대다. 이때 이탈리아 패션의 이미지를 확립하는 데 일조한 브랜드가 바로 베르사체와 돌체 앤 가바나다. “오직 섹시한 것만이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는다(In fashion, only sexy won’t go out of fashion).”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이 유명한 말처럼 베르사체의 역대 컬렉션은 이탈리아 여성들의 생동감 넘치는 관능미를 대변한다.

 

화려한 원색과 복잡한 패턴이 한데 뒤섞여 있고 여인의 풍만한 보디라인을 극대화하는 보디 콘셔스 실루엣은 과장되게 치장하길 좋아하는 이탈리아 여인들의 ‘벨라피구라(bella figura, 아름다운 모습)’를 구현하기에 충분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어느 누구보다 스타일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들의 스타일엔 나이나 사회적 지위 같은 굴레가 씌워지지 않죠.” 돌체 앤 가바나의 디자이너 스테파노 가바나의 말처럼 이탈리아 사람들의 패션은 자신을 과감하게 표현하는 도구이며 그 방식 또한 자유롭기 그지없다.

 

2020 F/W 시즌,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팬데믹에 빠진 이 시점에 난데없이 여유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대변하는 이탈리아식 글래머러스 룩이 트렌드 키워드로 등극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동시에 의미심장하다. 한 매체가 ‘극단적으로 섹시(ultra-sexy)’하다고 표현할 만큼 올가을엔 관능적이라는 표현에 걸맞은 과감한 요소가 대거 등장했으니까. 속살이 훤히 비칠 듯한 시스루 드레스며 란제리 룩, 보디수트, 군살 한 점 허용하지 않을 만큼 타이트한 보디 콘셔스 원피스, 브라톱, 라텍스 팬츠 등이 그것.

펜디, 뮈글러, 돌체 앤 가바나, 생 로랑 등 내로라하는 하이엔드 레이블에서 이 과감한 스타일에 자신만의 DNA를 이식해 한 단계 진화한 룩을 쏟아냈다. 다만, 섹시한 룩을 깡마른 금발 모델에게 입힌 기존 방식을 지양하고 연령대와 몸매에 상관없이 다양한 여성에게 입힌 점은 유의미하다 하겠다. “어려운 시기의 패션은 언제나 충격적이고 과감하다.” 엘사 스키아파렐리가 남긴 이 말이 적중한 것일까? 여러모로 힘든 이 시점에 잠시나마 이탈리아의 자유로운 ‘라 돌체 비타’ 정신을 떠올리며 용기를 얻어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