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릴레이션십이란?

일대일 연인 관계 혹은 성관계를 벗어나 제삼자와 데이트
혹은 성관계를 할 수 있는 열린 관계를 뜻한다.
두 사람이 각자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상의해 결정하기 때문에 바람과는 다른 개념.
오픈 릴레이션십은 광범위하며, 허용 범주에 따라 관계의 규칙이 정해진다.

권태기는 처음이라서

드라마에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별명이 ‘김순정’이었던 내게 권태기가 찾아올 줄은. 그래도 7년이나 함께한 그와 헤어진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내 모든 일상에 너무나 깊숙이 침투해 있었으므로. 대화로 이 위기를 타파하고 싶어 그에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아무래도 권태기가 온 것 같다고. 그러자 그가 각자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는 건 어떻겠느냐는 섬뜩한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그게 바람피우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화내며 되물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유학생 시절, 친구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관계라며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다시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고 애정이 뜨거워지는 계기를 만들어보자고. 이것도 권태기 극복을 위한 노력의 하나라고. 어차피 서로 알고 있으니 이건 바람이 아니라고. 그래서 그 결과가 어땠느냐고? 나는 결국 새로 만나던 남사친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야 말았다. 그 역시 마찬가지. 결국 우리에게는 이별의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K(33세, 회사원)

 

바람이거나 아니거나

짝사랑하던 그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니 어찌나 더 간절하던지. 술에 잔뜩 취해서 그에게 고백한 날, 그는 내게 자신은 어디로든 열려 있으며 꽉 막힌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당시 그는 지방에서 일하던 여자친구와 장거리 연애 중이었기 때문에 결국 여자친구보다 나를 만나는 시간이 더 많았고, 우린 성관계까지 맺었다. 마음이 이미 커질 대로 커졌고 그를 믿었기에 여자친구와 이별하라고 요구했더니 나와 만나는 걸 여자친구도 이미 알고 있다는 게 아닌가.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황당했지만 여전히 그를 사랑했기에 그 후로도 관계를 지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의 휴대폰에서 그와 그의 어머니가 나눈 대화 내용을 보게 됐다. 돌아오는 주말에 여자친구를 어머니에게 소개한다는 것. 물론 내가 아닌 그녀였다. 그 뒤로 당연히 우린 헤어졌다. 아니, 나만 헤어졌다. 그들의 관계에 이용당한 것 같아 아직까지도 종종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 L(30세, 회사원)

 

스리섬 판타지

그에게는 성적 판타지가 있다. 세 사람이 관계를 나누는 행위.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지만, 나 몰래 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 판타지는 가질 수 있지.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이라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진짜로 스리섬을 제안하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그에게는 말로만 듣던 ‘섹파’가 있었다. 그의 말인즉슨 자신은 거짓말이 하기 싫고 거짓말은 바람피우는 놈들이나 하는 거라고. 자신은 날 사랑하니까 사실대로 이야기한다며 관계 외에는 절대 사적으로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보수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생각하라고. 열린 마음은 개뿔, 그날 열린 뚜껑이 아직도 닫히지 않는다. 스리섬은 당연히 거절했고 당장 관계를 끊으라 소리쳤다. 하지만 여전히 그를 믿지는 못하겠다. 최악인 건 그런 그를 아직도 놓지 못하는 나다. 맞다, 아무래도 내가 제일 문제인 것 같다. J(36세, 마케터)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학창 시절 부모님의 이혼 이후 관계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과도한 구속이나 집착은 결국 관계를 깨뜨린다는 걸 일찍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직 딱 한 사람과 관계를 맺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렇다고 쉽게 사랑에 빠지거나 쉽게 식는 스타일도 아니고, 가볍게 성관계만 나누지도 않는다. 만날 때만큼은 진심을 다한다. 단지 그 사람이 딱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일 뿐. 그 안에는 남자와 여자 모두 포함된다. 질투나 구속 없이 만날 때만큼은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동기가 날 보고 왜 이렇게 어장 관리를 하느냐고 묻는 게 아닌가! 적잖이 당황했다. 남들 눈에는 내가 바람기 많은 사람으로 보이는 걸까? 나는 그저 사랑이 많은 것일 뿐인데. P(27세, 대학원생)

 

계약 연애

우리의 연애는 언뜻 보면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없지만 두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서로 국적이 다르다는 것과 한 가지 계약 사항이 있다는 것.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시기에 서로 구속하지 않고 마치 싱글처럼 지낸다. 시간에 따라 그때그때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 데이트를 즐긴다. 구속과 통제는 폭력적이며 결국 따르는 건 이별일 뿐이라는 사실을 지나온 연애에서 뼈저리게 배웠다. 친구로 지내기에는 괜찮은 사람인데 연인이 되는 순간 ‘우주 최강 쓰레기’로 돌변하는 이들을 숱하게 봤고, 그런 경험은 이제 충분하다. 그도 내 생각에 동의하길래 그날 바로 연애 규칙을 만들었다. 진솔한 대화를 통해 진정으로 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누고 관계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설정함으로써 감정을 조율하는 힘을 갖는 것이다. 누군가는 우리가 가벼워 보인다고 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관계로 충분히 행복과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 감정이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앞으로도 오픈 릴레이션십을 계속 유지할 작정이다. H(35세, 디자이너)

 

친구라서 괜찮아

연애라면 지긋지긋하다. 울고 싸우고 집착하고 되돌리고, 그걸 지금까지 계속 해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넘치는 성욕은 컨트롤이 되질 않는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모르는 사람과 잠자리를 갖는 건 싫다. 위험하기도 하고. 그러다 이런 고민을 해결해줄 구원자가 나타났으니, 바로 12년 지기 남사친이다. 우리는 합의하에 서로의 욕구를 충족한다. 믿을 만한 친구니까 마음도 편하고, 오히려 예전 남자친구에게는 말할 수 없었던 은밀한 요구까지 편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걸 합의할 뿐더러 집착이나 질투가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깔끔하다. 되도록  오래 이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그게 요즘의 인생 목표다. K(32세, 작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년째 오픈 릴레이션십을 유지하고 있다. 언뜻 보면 모든 것에 자유롭고 열려 있는 것 같지만, 아무리 서로 합의했더라도 이 연애 역시 고통이 따른다. 때때로 나는 그가 다른 여자와 잠을 잔다는 사실에 비참해진다.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 나와 관계를 맺을 때와는 어떻게 다른지, 문득 궁금하다. 하지만 그가 좋은 여자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는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응원해줄 마음이 있다. 나 역시 다른 남자들과 다양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의 행복뿐 아니라 나를 위한, 즉 우리를 위한 것이니까.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성장한다. Y(34세,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