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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도, 타인의 경험으로도 배울 수 없는 게 연애다. 내 친구에게는 그린라이트였던 그의 행동이 나에게는 레드라이트일 수 있다. 상황과 상대에 따라 게임의 규칙은 늘 바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연애소설을 읽는 이유는 그 미묘하고도 찐득찐득한 심리의 변화를 제3자인 독자의 눈앞에 보기 쉽게 펼쳐내고, 대체로 해피 엔딩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갈등이 해소된 뒤 느끼는 사랑의 아름다움이란 더 달콤한 법. 연애소설 읽는 재미다.

만난 지 불과 석 달 반 만에 프러포즈를 받은 리브. 서둘러 결혼했다가는 후회할 수도 있다는 친구들의 충고를 뒤로하고 리브와 데이비드는 로마로 떠나 결혼식을 올리고, 파리로 신혼여행을 왔다. 하지만 건축가인 부유한 새신랑은 허니문 와서도 바쁘다. <미 비포 유>의 조조 모예스 신작 <허니문 인 파리>는 2002년의 커플 리브와 데이비드, 1912년의 커플 에두아르와 소피를 동시에 이야기 속으로 불러들인다. 화가인 에두아르와 그의 모델인 소피. 연인이 된 이후부터 에두아르는 소피를 모델로 쓰겠다는 친구의 말에 화를 내고, 소피는 에두아르의 모델이었던 여자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다시 2002년으로 돌아와 리브는 데이비드가 일하러 나간 사이 혼자 미술관에 간다. 그곳에서 ‘화가 난 아내’라는 그림을 보는데, 자신이 그림 속 아내와 똑같은 상황이라는 사실에 눈물이 고인다. <허니문 인 파리>는 짧다. 2백50페이지 중 절반이 파리 사진으로 채워져 있으니 1백10쪽 분량의 중편소설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1912년과 2002년이 어느 순간 ‘만나는’ 느낌으로 진행되면서, 갓 결혼해 이제 서로를 알아가는 네 남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보여준다. 화난 아내의 그림을 그린 남편은 아내를 싫어하고 있었을까?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져 결혼을 서두른 남자는 정말 아내보다 일을 우선하는 걸까? 두 커플의 해피 엔딩은 분통이 터질 정도로 사랑스럽다.

스물두 살 때 쓴 <PS. 아이 러브 유>가 히트하고 영화로 제작되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한 세실리아 아헌. 그녀의 신작 <하우투 폴 인 러브>는 책으로 인생을 배운 여자의 사랑 이야기다. 살벌하게 춥던 더블린의 어느 겨울날, 로즈는 다리에서 강물로 뛰어들려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모든 것이 바뀐다. 자기계발서와 명언집으로 인생을 배운 로즈는 자살하려는 애덤에게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설득한다. 2주 뒤, 애덤의 서른다섯 번째 생일까지 삶의 가치를 증명하기로 한 로즈는 책 밖 인생을 자기 힘으로 대면하게 된다. ‘견딘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법한 주인공들이 다시 다리 위에서 마주 섰을 때, 사랑도 인생도 이미 충분히 알았다고 생각하는 회의주의자들조차 어쩌면 사랑의 기회가, 인생을 새롭게 바꿀 기회가 남아 있다고 믿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들과 이메일을 주고받고 영상 통화를 할 수 있다면? <트와일라잇>의 제작사가 영화로도 제작 중인 로리 프랭클의 소설 <지금은 안녕>. 샘은 사랑하는 메리디스가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와 작별할 수 있도록, 기록들을 동원해 할머니의 가상 시뮬레이션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은 기쁜 동시에 몹시 슬프고, 눈물 흘리게 만든다. <지금은 안녕>은 남녀 간의 불타는 애정에 더해, 우리를 지탱하는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미리 떠올리고 현재에 충실하게 만든다. <지금은 안녕>을 읽을 때는 손수건이든 티슈든 눈물을 닦을 무언가를 준비해두시길.

“너를 좋아하는 것과 너를 사랑하는 것 사이의 이 상태를 묘사하는 말은 하나도 없어 난 그런 말이 정말 필요해. 너한테 꼭 말해주고 싶거든.” <잃어버린 희망>의 커플은 이제 막 사랑을 알아가는 중이다. 키스를 하면서 남들이 느낀다는 흥분을 느껴본 적이 없는 열일곱 살의 스카이. 어느 날 그녀 앞에 학교를 자퇴했다든가 소년원에 다녀왔다든가 하는 소문의 주인공 홀든이 나타난다.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스카이는 전에 느끼지 못한 감정에 휩싸인다. 홀든도 마찬가지. 소문과 진실 사이에서 둘이 함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하면서, <잃어버린 희망>은 심쿵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처음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 경험하는 절박할 정도의 흥분과 기대 그리고 상심을 콜린 후퍼는 10대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절묘하게 풀어낸다. 스카이는 홀든에게 ‘좋아하다’와 ‘사랑하다’ 사이의 단어를 찾아준다. “살다. 좋아하다(like)와 사랑하다(love)의 철자를 조합하면 살다(live)가 되잖아. 그러니까 이제 ‘살고 싶다’고 해.” 이제 겨우 키스를 한 연인의 이 대화에 읽다 말고 미소 지었다. 이래서 연애소설을 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