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미 조정석

오직 백치미 남자가 살아남는다

이전 시리즈들과 비교하면 tvN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은 여행지를 이슈화한 데는 실패한 듯 보인다. 웅장한 굴포스 폭포와 오로라를 제치고 ‘실검’을 장식한 단어는 ‘포스톤즈’였다. 아예 대놓고 ‘돌머리들’이라고 부를 만큼 이 남자들의 여행기는 좌충우돌이다. 말간 목소리로 백조에게 “뭐 드실 거예요?”라고 말을 걸고, 길에서 산 소시지 하나에 희로애락을 보인다. 이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미소 짓는 이유는 그들이 단지 미남이어서가 아니다. 영혼의 아름다움까진 과하더라도, 그들의 눈빛을 보면 즐겁다. 왠지 이 ‘모자란’ 남자들과 연애를 한다면 조금 더 뜨거운 사랑을 받을 것만 같다.

연애의 역사가 깊어질수록 반복 학습의 효과는 커진다. 우리는 더 이상 복학생의 허언에 설레던 어린애가 아니다. 똑똑하거나 똑똑한 척하는 남자보다 빈틈이 있어도 감정에 솔직한 남자가 좋다. 이 깨달음은 소위 ‘뇌섹남’이라 불린 K 덕분에 얻을 수 있었다. 매사 그는 맞았고 나는 틀렸다. 돌이켜 보면 그는 지식을 지성으로 둔갑시킨 이기적 사내에 불과했다. 그의 이성적 사고에 따르면 나는 비논리적이고, 헛된 꿈을 갖고 환상을 좇는 여자였다. 존엄은 추락했고, 덜 행복했다.

인생의 우기를 극복한 건 S의 백치미 같은 사랑의 방식 덕분이었다. 그는 마음이 머리를 지배하는 사람이었다. 성장통을 건너뛰고 성인이 된 소년처럼 감성이 풍부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있지?’ ‘이번엔 기필코 내가 이겨야지!’ 하는 상념 없이 깔깔거리며 웃고 울고 화낼 수 있는 자유, ‘밀당’과 ‘권력’의 암투가 반복되는 연애의 긴장을 무장해제해 마음의 평온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의 ‘비이성적’ 사고에 따라 나는 재치 넘치고 지적이며 세련된 맵시를 가진 여성이 되어 있었다. 존엄을 되찾았고, 비로소 행복했다.

‘포스톤즈’가 그러했듯 남자의 백치미는 특히 여행지에서 격렬한 환영을 받는다. 2년 전 라오스로 혼자 배낭여행을 갔을 때 게스트하우스의 인기남은 바보스러울 만큼 천진난만하던 ‘상구’라는 친구였다. 상구는 잘생긴 편은 아니었지만 건강한 체격과 민첩한 운동신경을 지녔고, 재미없는 유머로 낯선 공기를 따뜻하게 만들 줄 아는 남자였다. 부족한 영어 회화 실력은 문제 되지 않았다. 타고난 순수성은 방비엥의 블루 라군에서 힘을 발휘했다. 다이빙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수심 5m의 푸른 물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사람들의 환호에 그는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다이빙을 하다가 어딘가에 부딪혀 코피가 났다. 어깨 한번 으쓱거리며 휘파람을 불고는 이어 맨발 축구를 하다가 발목에까지 사달이났다. 발목에 붕대를 감고도 상대방을 다정하게 안심시키는 그가 꽤 괜찮은 남자처럼 보였다. 우리는 모두 상구와 같이 있고 싶어 했다. 학벌과 스펙의 사회적 의미가 사라지는 여행지에서 상구는 ‘위너’였다. 그는 내게서 삼겹살을 얻어먹었고, 다른 여행자에게서는 맥주를 얻어 마셨다.

이웃사촌이자 나의 연애 카운슬러인 H. 그녀처럼 연애를 잘하는 이를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 비통해하고, 비겁해지다가 증오하는 패턴의 반복이 그녀의 연애사엔 없다. 나는 늘 그녀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연애를 잘할 수 있어?” 대답은 명료하다. “머리 쓰지 않아도 되는 남자를 만나.”

최소한 사랑할 때만큼은 머리를 덜 굴리고, 덜 계산하고 덜 논리적이고 덜 똑똑했으면 좋겠다. 며칠 전, 1975년에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기 위해 인도에서 스웨덴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린 인도 청년 마하난디아(PK Mahanandia)에 관한 CNN 뉴스를 읽었다.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나온 기획 기사였다. 그가 ‘트루 러브’를 찾아가는 4개월의 여정은 무모하고 바보 같았지만, 끝내 사랑을 얻지 않았는가.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백치란 ‘진짜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의 고난을 극복하고 마음이 말하는 대로 살아가는 가장 순수한 삶의 태도 말이다. 외롭거든 그 백치를 잡자. 충만한 사랑의 에너지로 달려드는 그 뜨거운 사내가 공허한 마음의 서랍을 채울 인생의 구원일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