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영화와 패션계 사람들로 붐비는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호텔 샤토 마몽.

여전히 영화와 패션계 사람들로 붐비는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호텔 샤토 마몽.

지난 가을, LA로 일주일간 여행을 다녀오면서 이 매력적인 도시와 완전히 사랑에 빠졌다. “요즘 예쁘고 멋진 건 다 LA에 있어”라며 얼마나 떠들어댔는지 이 아름답고 활기찬 도시의 잔상에서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했다. 지금 LA를 말하자면, 그 어떤 도시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다문화적인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예술적인 풍요로움으로 가득하다. 시즌마다 새로운 영감과 에너지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전 세계 도시를 헤매는 패션계에서도 다시금 이 천사의 도시를 주목하고 있다. 몇 해 전엔 베를린과 스톡홀름, 코펜하겐, LA가 그랬고, 최근엔 밀라노에서 모스크바까지 넘나들며 곳곳을 넘봤던 그들이 또다시 LA로 주파수를 맞춘 것.

 

최근 LA에 불어온 젊고 새로운 물결에 대해 리포트한 〈Mr. Porter〉의 에디터 단 록우드(Dan Rookwood)는 말한다. “존 레넌이 이렇게 농담하곤 했어요. LA는 뉴욕, 런던과 파리 문화에 비하면 창의력과 품격이 떨어지는 도시라며, 마치 거대한 주차장 같다고 비유했죠. 하지만 더 이상 LA는 그런 취급을 받을 도시가 아니에요.” 그의 말에 따르면 할리우드와 함께 거대한 자본과 엔터테인먼트가 움직이는 도시에서 이제는 패션, 문화, 예술의 르네상스가 불어닥친 매력적인 도시로 변모했다는 것.“ 〈LA 위클리〉에 의하면 2013년 이후 LA에는 50개 이상의 아트 갤러리가 생겨났어요. 예술과 음악, 기술, 음식까지 모든 분야가 급성장했죠.” 미국의 재능 있고 참신한 ‘영 크리에이터’들이 사계절 내내 따뜻한 이 서쪽 도시로 이주하고 있으며, 이는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젊고 성공한 청년들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엔 다른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도 한 요인이 됐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미국의 많은 매체들은 앞다퉈 뉴욕을 잇는 ‘미국의 위대한 다음 도시(America’s Next Great City)’로 LA 다운타운을 지목하는가 하면 새로운 패션 수도가 될 수도 있다고 예측한다.

 

최근 주목받는 주얼리 브랜드 소피 부하이는 이 도시 특유의 밝고 여유로운 분위기에 매료돼 소위 잘나가던 브랜드를 접고 아예 뉴욕에서 LA로 거점을 옮겼다. “건강하고 편안한 이곳의 라이프스타일과 완전히 사랑에 빠졌어요. 특히 이곳의 언덕과 자연, 오래된 아르데코풍 건물, 플리마켓, 헬시 푸드가 좋아요” 그녀는 지난 <마리끌레르>와의 인터뷰에서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완벽한 도시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일한다고 전했다. 이 도시에서 누리는 그녀의 삶과 이곳에서 만드는 담백하고 편안한 주얼리가 그러하듯, LA엔 사치스러운 할리우드 식 패션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남자아이들에겐 어릴 적부터 놀면서 즐긴 스케이트보드와 서핑, 농구와 힙합이 일상이자 삶이고, 당연히 자연스럽게 스트리트 문화와 패션이 발달했다. 또 할리우드 스타들과 함께 성장해온 하이엔드 럭셔리와 ‘하이 퀄리티’의 삶과 태도를 지향하는 느긋한 라이프스타일이 공존하는 것.

 

LA 곳곳을 누비며 보낸 일주일간의 여행은 도시의 이러한 기운을 조금이나마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아지트로 유명한 전설적인 샤토 마몽 호텔은 여전히 할리우드 스타일의 동의어처럼 느껴졌다. 소피아 코폴라의 영화<Somewhere>에서 보았던 화려하지만 조금은 쓸쓸한 기운이 감도는 호텔엔 대낮에도 명품으로 완벽하게 드레스업한 스타일리시한 여인들이 가득했고, 입구엔 밤낮없이 슈퍼카들이 빽빽이 들어 찼으며, 라운지는 카니예 웨스트와 킴 카다시안이 참석하는 프라이빗한 패션 행사로 쉴 새 없이 붐볐다. 호텔 주위를 둘러싼 호화로운 고급 저택들과 함께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할리우드 라이프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생 로랑의 2016 가을 컬렉션이 열린 할리우드 팔라디움.

생 로랑의 2016 가을 컬렉션이 열린 할리우드 팔라디움.

반대로 웨스트 할리우드의 중심인 멜로즈엔 우아하고 럭셔리한 취향의 숍들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특히 저택을 숍처럼 꾸민 올슨 자매의 ‘더로우’ 플래그십 스토어와 뉴욕에 이어 두 번째 오프라인 셀렉트 숍을 오픈한 바네사 트라이나의 ‘디 아파트먼트 바이 더 라인’은 요즘 여자들이 좋아하는 ‘Clean & Calm’ 무드를 바탕으로 한 세련되고 고상한 LA 식 ‘페미니티’가 넘실거렸다. 한편, 실버레이크엔 지금 가장 핫한 LA 힙스터들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크고 작은 패션 브랜드와 멀티숍, 건강하고 신선한 주스와 유기농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상점들이 즐비했다. 한국에도 불어온 ‘착즙 주스’ 열풍이 유독 건강에 집착하는 사람이 많은 이 도시에서 비롯됐다는 걸 아는가? 낡고 오래된 극장들로 죽어 있던 브로드웨이에는 에이스 호텔이 들어서면서 스타일리시한 레스토랑과 바가 줄을 잇는 힙스터들의 새로운 성지가 됐고, 지난해 9월 캘리포니아의 억만장자 일라이 브로드가 LA시의 협조로 세운 거대한 더 브로드 뮤지엄은 미국 서부 최대의 현대미술관 LACMA의 지원에 힘입은 놀라운 팝아트 큐레이팅과 컬렉션으로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든다. 또 스트리트 패션과 문화의 메카인 페어팩스 거리, 창고를 작업실로 개조한 젊은 아티스트들의 예술 지구인 차이나타운엔 자유분방하고 창조적인 에너지가 가득하다.

 

에디 슬리먼이 베니스 비치에서 모델로 캐스팅한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의 아들 딜런 브로스넌.

에디 슬리먼이 찍은 파멜라 앤더슨(Pamela Anderson)과 토미 리(Tommy Lee)의 아들 딜런 리(Dylan Lee).

 

이처럼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한 도시를 패션 피플이 구경만 할 리 없다. 패션계가 LA를 향한 열렬한 애정을 드러내면서 한시도 조용할 틈이 없는 것. 몇 해 전 LA에 별장을 구입한 톰 포드는 2015 가을·겨울 쇼를 할리우드에서 열었고, 베니스 비치와 서핑에 빠진 사진가 글렌 루치포드는 자신과 친구들을 위해 호텔 ‘로즈’를 열었다. 또 틈만 나면 LA에서 휴가를 즐기던 루이비통의 니콜라 게스키에르는 근교 휴양지인 팜스프링스에서 영감 받은 크루즈 컬렉션으로 프레스들을 불러 모으는가 하면, 스텔라 매카트니 역시 뉴욕에서 선보이던 프리폴 프레젠테이션 장소를 LA로 옮겼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이 도시에 각별한 사랑을 드러낸 건 에디 슬리먼이다. 디올 옴므를 떠나 LA에 새 둥지를 튼 그는 할리우드 신예 감독들과 하이킹을 즐기며 이곳의 음악과 예술, 서핑과 젊음, 소년과 소녀들에 빠져들었다. 한동안 사진가로 활동하던 그는 생 로랑을 맡으며 파리가 아닌 웨스트 할리우드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차렸고, 파리 태생의 클래식한 하우스 브랜드를 완전히 캘리포니아 감성의 빈티지하고 그런지한 스타일로 쿨하게 탈바꿈 시켜버렸다. 그리고 지난 2월 10일, 생 로랑 쇼를 위해 전 세계 프레스와 셀러브리티들을 LA에서 가장 크고 역사적인 콘서트장인 ‘할리우드 팔라디움’으로 초대하기에 이른 것. 이는 지난 10여 년간 새롭게 떠오른 캘리포니아 음악계를 철저히 기록하고 지원하며, 지지했던 그의 각별한 애정이 담긴 컬렉션이기도 했다. “LA는 창조적인 곳이에요. 이 도시가 전 세계를 이끌어갈 겁니다.” LA를 ‘컨템퍼러리 월드’라고 요약한 에디 슬리먼의 말마따나 지금 이 천사의 도시는 동시대가 원하는 젊고 활기찬 흐름으로 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