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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다. 남자라는 생명체와 시시콜콜한 대화라도 나눠보고 싶다. 머리 벗겨진 박 부장이나 거래처 주정뱅이 최 대리 말고, 사적인 이성 좀 만나고 싶다. 마지막 연애는 작년에 끝났다. 몇 달째 남자 옷깃조차 스친 일 없다. 어찌된 건지 종종 들어오던 소개팅 제안도 없고, 건너건너 아는 남자들과의 술자리도 없다. 당장 뜨거운 연애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냥 마주 앉아 별 볼일 없는 이야기나 나누면서 밥 한 끼 하고 싶다. 그래, 나 외롭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그래서 깔았다. 소개팅 앱, 일명 소셜 데이팅을 시작했다.

평이 괜찮은 앱 몇 개를 다운로드했다. 한 2년 전쯤, 매일 새로운 남자의 프로필을 소개해주는 ‘정오의 데이트’나 가까운 곳에서 접속한 회원과 만나게 해주는 ‘1km’ 같은 몇몇 유명 앱을 사용해본 적이 있긴 하다. 실제로 남자를 만나지는 않았다. 화면 속 남자들 프로필만 훑어보다 지웠다. 다소 무작위로 매칭되는 느낌이라 탐탁지 않았다. 솔직히 앱에서 인연을 찾는 게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다.

 

디토

한 달 전, ‘디토’라는 앱을 다운로드했다. 나이, 사는 지역, 외모 스타일, 체형. 이것저것 빈칸을 채워 넣는 게 가입 1단계다. 외모는 귀엽고 지적인 동안으로(!), 체형은 슬림탄탄으로 설정했다(‘통통한’, ‘다소 살집이 있는’도 선택지에 있긴 했지만 뭐 어떤가. 누가 검사하는 것도 아닌데). 가입 2단계에서는 상대방에게 묻고 싶은 질문 몇 가지를 선택한다. 이를테면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자신의 성격은?’ 등이다. 마지막으로 프로필 사진을 등록하자 회원 가입이 완료됐다.

다섯 남자의 프로필이 펼쳐졌다. 금융권에서 일한다는 33세의 C군 셀카가 뜨는가 하면, 학원 선생이라는 31세 P군의 여행 사진도 있다. 5명 중 30세의 직장인 L군에게 OK 사인을 보냈다. 얼마 후 그와의 채팅창이 열렸다. 그는 모 제약 기업의 영업사원이고, 앱을 다운로드한 지는 한 달 남짓 됐으며, OK를 주고받은 여자와 만난 적은 아직 없다고 했다. 카톡 아이디를 주고받았다. 이틀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취미는 등산, 주량은 소주 반병, 마지막 연애는 1년 전, 고향은 제천. L과 저녁 약속을 잡았다. 토요일 저녁 7시, L과 마주 앉았다. 어색하고 뻘쭘했다. 생면부지 모르는 남자가 내 앞에 있다. 나는 ‘슬림탄탄’이 아니고, 그는 ‘핸섬한’, ‘키가 큰’ 타입과 거리가 멀다는 게 탄로났다. 우리는 불편했다.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 그날 이후 L과 나는 서로 단 한 통의연락도 하지 않았다.

 

아임에잇

일주일 후 또 다른 앱에 도전하기로 했다. ‘아임에잇’은 직장인을 위한 소개팅 앱이라고 한다. 신원 인증 절차가 꽤 까다롭다. 우선 기본 정보를 쓴 다음 다니는 직장의 정확한 회사명을 입력한 후 명함이나 사원증을 찍은 사진을 증명 자료로 제출해야 한다. 조건이 맞는 남녀를 이어주는 아임에잇의 ‘큐레이터’가 나의 프로필을 컨펌하면 비로소 가입이 완료된다. 다음 날 아침, 승인이 떨어졌다. L 모 전자 기업에 다니는 34세의 남자 A와 마포구의 모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31세 수의사 M을 소개받았다. A와 OK 사인을 주고받았다. 지난번처럼 카톡으로 이야기를 조금 나눴고, 일요일 점심을 함께 먹었다.

 

메이저

아임에잇과 함께 받은 ‘메이저’를 켰다. ‘메이저 기업’에 종사하는 남녀를 위한 앱이라고 한다. 성별을 입력하고 ‘재직 중인 회사 선택’ 목록을 열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 이름이 없다. 추가 기입란도 없다. 가입할 수 없었다. 곧바로 ‘아만다’에 접속해보기로 했다. 기본 정보와 프로필 사진 입력창이 뜬다. 사진은 셀카 3장 업로드가 필수 항목이다. 올렸다. 다음 절차는 이렇다. 아만다 회원 30명이 내 사진을 보고 점수를 매기는데, 5점 만점에 평균 3점 이상이면 가입이 완료된다. 첫 가입 시도는 실패했다. 두 번째로 가입 요청을 눌렀다. 3장의 셀카는 최강의 인생컷으로 다시 업로드했다. 평균 3점을 겨우 넘겼다.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시작 버튼을 누르지 않고 앱을 지웠다.

 

스카이피플

마지막으로 ‘스카이피플’이라는 앱을 해봤다. 남자는 SKY대, 의대, 로스쿨 등 일정 학력 이상을 갖췄거나, 대기업 또는 국가기관 재직 및 전문직 종사자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가입할 수 있다. 여자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입 가능. Y대 출신의 35세 남자 P를 소개받았다. 카톡 아이디를 주고받지 않고 약속 날짜를 정했다. 점심을 같이 먹은 A, 지난주에 만나 커피를 마신 P와는 이후 한 번씩 통화했다. 다시 보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L을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낯선 만남은 여전히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한 달간 거의 50명 의 프로필은 본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심심하고 외롭다. 지우지 않고 남겨둔 몇몇 앱에 다시 접속했다. OK 사인을 몇 개 더 보내볼 참이다. 나는 그냥 남자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낄낄거리고 싶은 것뿐인데 그게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