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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편집숍 퀸마마마켓 오너 강진영, 윤한희
옷을 사는 여자와 그릇을 사는 여자 사이의 간극은 결코 좁혀질 수 없을 것 같지만 모든 건 변한다. 살다 보면 충분히 옷을 사본 여자는 유행한다고 아무 옷이나 사들이는 대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옷만 사게 되고, 생전 관심이 없을 줄 알았던 요리를 하고, 그릇을 산다. 트렌드를 좇기보다 일상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입히고, 누리고, 치유받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나는 즈음에 맞춰 돌아온 사람들이 있다. 디자이너 윤한희-강진영 커플이 도산공원과 맞닿아 우거진 숲의 기막힌 전경을 공유하는 곳에 라이프스타일 셀렉트 숍 ‘퀸마마마켓’을 오픈했다. 오브제, 오즈세컨, 와이앤케이, 하니와이 등의 브랜드로 패션 디자이너로서 성공의 정점을 맛본 이들이 대중의 시선 밖에서 보낸 7년간의 공백이 진공이 아닌 숙성의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다. 퀸마마마켓이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공간을 끌어가는 사람은 윤한희다. 강진영은 ‘어번 보헤미안’을 컨셉트로 한 브랜드 ‘진케이’로 자신의 디자인 세계에 심도와 밀도를 더하는 데 보다 열중하고 있다. 어번 그린 라이프 문화 공간을 표방하는 퀸마마마켓에서 정식 오픈을 앞두고 퀸마마 윤한희와 만났다.

공백이 길었다. 오브제를 떠난 지 7년이 됐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휴가를 보낸 것 같은, 긴 잠을 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브제가 우리한테 뭐였을까?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보니 훈장이자 멍에였고, 내 삶의 무게이기도, 자존심이기도 했던 복잡하고 다양한 의미였더라. 그동안 내가 외면하거나 방치했던 나는 누구지? 뭘 좋아하는 사람이지? 거기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을 만큼만 하면 좋겠다. 물론 아주 팽팽하게 긴장되었던 끈을 놨을 때 처음에는 그 방향성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나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패션의 속도에 맞춰 살았는데 실생활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꽤 한참 갈지자로 걸었다. 안 하면 어떨까?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뭘 한다는 게 그렇게까지 필요한 일일까? 그러다 보니 결론은, 내 몸에서 원하는 일을 재미있을 때까지만 해야겠다는 거였다. 예전에 우리가 살던 곳은 뉴욕이었지만, 나중엔 LA로 훨씬 더 자주 다닌 것 같다. 따뜻한 날씨, 여유로운 사람들. 뉴욕하고 LA가 뭐가 달라요, 누가 물어봐서 LA는 카페에서 먹고 가는데 뉴욕은 다 들고 나간다고 했다. 우리는 왜 뉴욕에서 빨리 먹고 빨리 사무실에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에 싸여 살았을까? 그러니까 뉴욕은 젊음의 도시인 것 같고, 웨스트코스트는 그 이후의 도시인 것 같다. 한낮의 뙤약볕은 아니지만, 바람도 불고, 날씨도 따뜻하고, 조금만 나가면 바다가 있고, 굉장히 도시적인 삶이기는 하지만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거기 있더라. 아, 결국은 자연과 가까이 지내면서 어번을 벗어나지는 않는 것. 이게 어번 라이프구나. 내 몸이 필요로 하는 건 그린이구나. 그래서 우리가 컨셉트를 잡은 게 어번 + 그린 + 라이프스타일 숍이다. 패션에서 스타일이 굉장히 중요한 단어였다면, 삶에서는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것 같았고, 라이프스타일이 보이는 비즈니스를 하는 브랜드도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어렸을 때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부하면서 경험했던 히피 무드로 뜨거웠던 뉴욕의 삶, 그리고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조금은 느려도 되고, 조금은 한가해지고 싶고, 조금은 편안하게 널브러져 있는 라이프스타일까지 한 공간에 모아보면 너무 재미있겠다. 그래서 시작했다.

바쁘게 산다는 건 일종의 중독이다. 갑자기 멈추긴 쉽지 않다. 오브제가 뭐였지? 했을 때 그게 결국 사람이더라. 사람이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는 게 더 괴로웠다. 오브제를 통해 맺은 많은 인연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사회를 통해서 맺은 것들이 얼마나 가벼울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많이 느꼈던 시간이고, 반면에 그래도 끝까지 남아 있던 것도 사람인 것 같다. 가장 좋았던 건,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가 구분이 됐던 거다. 그러고는 굉장히 쉽고 빠르게 편안해졌다. 우리 아버지는 항상 나를 전업주부로 키우고 싶어 하셨는데, 우연히 강진영씨와 결혼을 하고, 그의 권유로 디자인을 하게 됐다. 나는 타고난 것 같지는 않지만, 좋은 눈을 가지려고 노력한 디자이너였던 것 같다. 디자이너가 내 천직인 것 같지는 않은 거다. 디자인을 안 했으면 뭘 잘했을까 생각하면 광고도 재미있을 것 같고, 작가도 재미있을 것 같고,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해 굉장히 궁금해했다. 반면에 강진영씨에게 디자인은 종교였다. 그러니까 그는 오브제 다음에는 공부를 선택했다. 내가 그동안 왜 그런 옷을 디자인했는지 한번 찾아봐야겠어. 그 이유가 뭘까?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다. 그에게는 스님들이 화두 하나를 잡는 것처럼 화두를 찾아서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왜 라이프스타일이었나? 내 삶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들은 잘 모르는데 그걸 원하는 순간 내 것이 됐던 것 같다. 강진영씨가 내 브랜드에 내 이름을 건 브랜드를 꼭 갖고 싶어. 그래서 오브제 강진영으로 시작한 거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어머니가 쇼가 끝나고 나한테 오시더니 너는 왜 다른 디자이너들이랑 무대에 안 나오느냐고 하시더라. 그러자 강진영씨가 그럼 오브제 동생을 해. 그래서 오즈세컨을 하게 됐다. 강진영씨가 마흔이 됐을 때, 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하고 마치 애처럼 말했다. 황당했지만 뉴욕에서 쇼를 하고 싶다고 해서 또 부랴부랴 갔다. 뉴욕에서 돈을 벌어서 써야겠어. 그럼 조금 더 쉬운 라인을 하자. 그래서 하니와이를 한 거다. 즉흥적이고, 정신과 몸이 반응해서 시작한 일들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가 레이 카와쿠보다. 정말 내 몸에서 내가 원하는 걸 단호하게 선택해온 것 같다. 그리고 될 때까지 했던 것 같다. 잘해서가 아니라. 그런데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화분도 가져다 놓고, 집도 꾸며놓고, 밥솥도 새로 사면서 느끼는 재미가 너무 컸다. 남들은 스물 몇 살, 서른 몇 살에 느꼈을 재미를 나는 바쁘다는 이유로 오브제를 떠나고 느꼈는데, 이 일상이 패션을 더 하는 것만큼이나 큰 기쁨이고 즐거움을 주는구나. 그러니까 조금 더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이 이 일을 하면, 이 공간에 오시는 분들은 쉽게 쇼핑을 하면서 내가 경험했던 여러 시행착오를 겪지 않아도 되겠구나. 이건 어떻게 보면 지름길 같은 거고, 지난 수십 년의 출장으로 경험했던, 사고 싶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너무 부피가 커서 사지 못한 많은 것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집약판 같은 거다.

퀸마마는 누구인가? 이게 말 그대로 여왕마마다.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이냐에 대해 점점 진지해진 부분이 있다. 우리는 가로수길에서 15평 남짓한 작은 가게로 시작했고 그게 지금 이 공간이 됐다. 우리가 굉장히 큰 혜택을 받은 디자이너구나. 알게 모르게 너무 많은 걸 받았구나. 이제 우리는 뭘 해야 하지? 깊이 고민하게 된다. 퀸은 아주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다. 그 절대 권력이 아주 선하게 쓰이면 무척 좋을 것 같았다. 퀸마마마켓이란 이름을 대니까 가족들이 넌 참 꿈도 크다고 하더라.(웃음) 그게 누구니? 했을 때 나한테는 그게 레이 카와쿠보다. 한국에서는 진태옥 선생님이 그런 분이다. 우리에게 디자이너가 누구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해주신 등대 같은 분. 정확하게 맞는 얘긴지 모르겠지만 카를라 소차니만 해도 당시에 편집숍을 하겠다고 한, 파이오니어적이고 파괴적인 인물이다. 동화 작가 타샤 튜더는 살아 계실 때 못 본 게 한이다. 그분이 가꾼 정원이 80만 평이란다. 세상에 이렇게 기여할 수도 있구나. 그렇다고 하면 내 후배들에게는 누가 퀸마마일 수 있을까. 그렇게 되고 싶다. 바른 먹거리, 바른 소비, 이런 아주 단순한 것부터 시작해보자.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패션이든, 디자인이든, 식물이든 내가 속해 있는 분야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그런 퀸마마들이 많아졌으면, 그리고 그게 모여서 하나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운동이 되고, 그러다 보면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아지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퀸마마마켓은 어떻게 구성된 공간인가? 지하 1층은 부엌, 1층은 정원, 메자닌 층은 몸에 바르고 집에 두는 향을 생각하며 꾸몄다. 2층은 강진영씨의 공간이다. 그는 나에게 엄마 밥처럼 편하고 따뜻한 존재다. 디자이너로서의 강진영씨는 충분히 인정할 만한 인물이기도 하다. 작가주의적이기도 하고, 매우 진지하고 노력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디자인을 사랑한다. 오롯이 이 층은 강진영씨의 에스프리를 잘 표현했으면 좋겠다. 다만 S/S, F/W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매 시즌 뭔가를 팔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그건 버리기로 했다. 소비자들이 이제 이번 옷은 살 만큼 샀다고 하면 나머지 기간에는 그 공간을 비워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자. 그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표현할 공간으로 이 공간을 제공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고 3층은 퀸마마마켓이란 이름을 붙일 만큼 마켓적인 것들을 위한 공간이다. 우리 정서 중에 흥이 있지 않나. 장터가 참 흥겨운 것 같다. 조명 옆에서 식물을 팔 수도 있고, 비싼 옷과 싼 옷을 나란히 놓고 팔 수도 있다. 대신 에디팅을 해서 주제의 일관성을 주면 될 것 같았다.

옷 얘기를 해보자. 진케이와 퀸마마 스튜디오는 어떻게 다른가? 강진영씨는 본인의 이름이 들어가면 진지해지는 것 같다. 지금까지 언제나 경쟁적인 공간에서 옷을 팔았기 때문에 이기기 위한 디자인을 해야 했다.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걸 하는 브랜드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고, 그가 잡은 화두는 어번 보헤미안이었다. 보헤미안적인 터치가 들어가지만, 조금은 도회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그의 여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여성보다 더 여성적이다. 어떨 때는 리얼이 아닐 때도 많다. 퀸마마 스튜디오의 옷은 일도 해야 하고, 전철도 타야 하는 여자들의 옷이다. 다만 스타일을 포기하지는 않는 옷이다. 우리의 취향을 보여줄 수 있는 옷으로 구성했다. 지금까지의 디자인은 더하는 거였는데, 이제는 빼는 작업이구나, 이번에 브랜드를 만들면서 배우게 됐다. 여기까지 끝. 중용의 도를 찾아야 한달까. 디자인 작업에서도 우리에게 그런 점이 요구된다는 걸 느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부훌렉 형제는 <메종>과의 인터뷰에서 당신네 집 인테리어가 궁금하다고 하자 집에서만큼은 디자인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답했다. 만약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관심도 시들해지면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너무 쉽게 싫증을 내는 존재들이니까 말이다. 살아보니까 그때는 그렇게 재밌고 아찔했던 게 1년만 지나면 다 잊어버리게 되더라. 이 공간을 나에게 덮어씌우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이렇게 해놨는데, 좋아해주신다, 그럼 더 잘해야지?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 거다. 이 공간을 오픈하면서 잘해야지 강박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 준비 없이 오브제와 헤어졌던 경험을 한 것처럼 무엇을 놓아야 할지 아는 게 훨씬 더 중요한 것 같다. 운명이란, 내가 쥐려고 하면 도망가고, 내가 놓는 순간, 한쪽 문이 막히면 다른 문이 열리는 거니까. 이 공간에 함몰되지 않겠다는 게 내 영원한 숙제다. 편의점 옆에 퀸마마슈퍼가 들어서서 예쁜 식물과 두부와 티셔츠를 팔고 라이프스타일이 편의점에 들어가서 경직되지 않는 것처럼 내 삶을 조금이라도 좋은 가격에 꾸밀 수 있다면 그걸로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할 것 같다. 몸도 가볍고, 정신도 가볍다. 더 잘하려고 용쓰지 말자. 힘들면 오래 하겠어?(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