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미운동기-이미지

흉내 낼 게 따로 있지

동기는 유난히 내 화장품에 관심이 많았다. 립스틱 색깔이 너무 예쁘다는 그녀의 칭찬에 꽤 으쓱했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 일주일 후 사무실에서 마주친 동기가 내가 말한 바로 그 립스틱을 바르고 왔을 때부터였다. 이후로 옷이며 액세서리, 디자인 문구류까지 어김없이 그녀가 똑같은 아이템을 입거나 갖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뻔뻔하게 매번 어디서 샀는지 나에게 출처를 묻는 그녀에게 동대문시장에서 구했다, 인터넷 검색하다 샀는데 어딘지 기억이 안 난다 등등 여러 핑계를 댔지만 집요한 동기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동기가 얄미운 건, 타고난 몸매가 마르고 길쭉해 같은 아이템을 입어도 옷 태가 다르다는 사실! 회사 동료들이 그녀의 신상 원피스를 칭찬할 때마다 내가 먼저 지난 월요일에 입고 왔었다고 그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업무에 관한 것이라면 불러놓고 따지기라도 할 텐데, 옷 좀 따라 입지 말라고 면박을 주려니 내 자신이 유치해지는 기분이다. K, 무역회사 영업지원팀 사원(26세)

우린 같은 편인 줄 알았어

입사 동기와 나는 음식 취향이나 성격이 비슷해서 처음부터 죽이 잘 맞았다. 야근이 많은 직업이라 짬이 나면 저녁식사도 같이 했고, 옥상에서 수다도 떨다가 재수 없는 상사 이야기가 나오면 같이 신나게 흉도 보면서 전우애를 다졌다. 회사 사업팀에는 유난히 새로 입사한 사원들에게 뾰족하게 굴며 군기 반장을 자처하는 여자 상사가 한 명 있었는데, 나나 동기나 각자 그 상사에게 당한 것이 있어 매번 둘이서 그녀의 뒷담화를 하면서 상종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그 후로 여자 상사와 동기가 새 프로젝트 때문에 한 팀이 되어 일하게 되었고, 부쩍 휴게실에서 두 사람이 하하 호호 신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를 위한 신사업 TF팀이 결성되었을 때, 연관 업무 경력이나 전공 지식 등 누가 보아도 내가 더 잘하는 분야가 확실한데도 그 여자 상사가 나 대신 내 동기를 팀원으로 뽑았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상사에게 자신을 어필할 기회를 놓치지 않은 동기의 유능함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함께 그 상사를 흉보던 일 따윈 기억에 없다는 듯 구는 동기의 모습이 못내 야속했다. P, 대기업 마케팅 팀 대리(32세)

너의 매력이 얄밉다

특별히 무언가를 잘하지 않아도 묘하게 사랑받는 사람들이 있다. 단순히 정말 예뻐서일 때도 있고, 천성이 밝고 유쾌해서 미워할 수 없는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누가 봐도 화목한 가정에서 모난 구석 없이 자란 것 같은 내 동기는 회식 자리에서 무심결에 한마디만 해도 전무님, 부장님 일동이 빵빵 터지고, 같은 실수를 해도 상사들에게 덜 혼난다. 그렇다고 그녀가 출세 지향적인 인물이라 상사에게 아부를 떤다거나 동기들에게 계산적으로 구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특별히 욕심을 부리는 타입도 아니고 업무 능력도 무난하다. 더 잘하고 싶어서 용을 써도 칭찬 한 번 들을까 말까, 오히려 상사에게 너무 기를 쓰는 네 모습이 피곤하다는 소리나 듣는 나로서는 그녀의 존재 자체에 분함을 느낀다. 다시 태어날 수도 없고, 상사들이 나보다 아낀다는 이유로 나에게 잘못한 것도 없는 동기를 이렇게 얄미워하는 내 신세가 서글플 뿐이다. L, 출판사 홍보팀 사원(28세)

너만 출세하고 싶니

3년 전 함께 입사한 내 동기는 정치가 전부라고 생각했다. 입사 직후 나와 같은 부서에 동기라고는 그와 나뿐이었고 자연스레 회사 내 소식을 서로 공유하면서 나름 친해지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 때 나는 입사 동기들 중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회장님 조카가 있다는 사실을 주워듣게 되었다. 소문을 내고 다니기는 뭣하고 그래도 입이 근질근질해 그 동기에게만 살짝 알려주었다. 허, 그랬더니 그 다음 날부터 동기는 회장님의 조카인 그녀에게 눈에 띄게 살갑게 굴기 시작했다. 급기야 거의 매번 함께 점심을 먹던 나와 다른 동기들을 제치고 구내식당에서 그녀에게 알은체하려 애쓰는 그의 모습에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지금, 동기들 사이에서 그는 소위 ‘은따’를 당하고 있다. 동기들끼리 회식을 하면 현금이 없다며 다른 동기에게 돈을 내게 하고는, 갚으라고 말하면 고작 2~3만원으로 사람을 치사하게 만드냐며 끝끝내 모른 체하는 그 치졸함에 모든 동기들이 이를 갈고 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회식비를 내는 때가 바로 그 회장님 조카인 동기가 회식에 참석했을 때다. 아우, 얄밉다. I, 건설회사 영업팀 사원(30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