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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은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공간에 창조된 가상 세계를 일컫는다. 하지만 이제 시각과 촉각을 제어하는 것만으로 실재하는 다른 시공간에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올 2월에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obile World Congress·MWC) 2016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삼성전자의 VR(가상현실) 체험장이었다. 4D 상영관에서 ‘기어 VR(Gear VR)’을 착용하면 실제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은 경험이 가능했다.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는 삼성과 손잡고 VR 헤드셋과 콘텐츠 보급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탈리아 영화감독 마르코 브람빌라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의 영화 <데몰리션맨(Demolition Man)>(1993)은 제법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산드라 블록과 지금보다는 눈이 덜 처진 실베스터 스탤론이 등장하는데, 이 둘이 ‘VR을 이용해 섹스’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포르노 배우 출신인 실베스터 스탤론이 최초로 VR 섹스를 다룬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은 운명의 장난을 넘어 숙명처럼 상당히 아이러니하지만, 그와 별개로 IT 기술의 발전이 포르노 산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하드디스크에 다운로드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동영상을 재생하는 스트리밍 기술, 온라인 결제 시스템 등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은 알고 보면 불온한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아무튼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인간에게 욕구와 욕망만 한 동기부여는 없다. 실제로 VR 시장에 마크 저커버그만큼 주목하는 것도 포르노 업계 종사자들이다.

한 미국 IT 매체는 ‘포르노를 향한 애정이 VR 시장 기술의 판도를 흔들 것’ 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카네기 멜론 대학의 교수이자 게임 디자이너인 제시셸(Jesse Schell)은 ‘VR에 관한 40가지 예언’이란 글에서 VR이 2016년이 VR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내년 말에는 뉴스에 VR 중독에 관한 보도가 나올 것이며 2018년 말이면 VR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한 영화가 적어도 3편 이상 나올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유엔미래보고서 2050>에서는 VR 기기의 등장으로 영화관이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VR 덕에 사람들은 아이맥스 때보다 영화에 더 빠지겠지만 모두가 자신의 헤드셋을 쓰고 자신만의 영화를 볼 것이라는 얘기! 어쨌거나 VR이 꼭 그렇게 이상한 쪽으로만 발전하는 것은 아니니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다.

한 가전업체에서는 발표공포나 고소공포 같은 공포증 치료 캠페인을 통해 VR을 정신의학 분야에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어내기도 했고, 혼자서 밥 먹어야 하고 연애 할 여유 따위 없는 헬조선의 청년들도 가상이지만 (포르노가 아닌) 연애 체험이 가능하게 됐으니. 아, 이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