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자소서

그래, 너 잘났다

학점 높고 영어는 유창하고 자격증도 많고. 서류전형을 위한 입사지원서에 쓰여 있는 것들을 굳이 구구절절 풀어내는 지원자들이 있다. 자기소개서는 점수나 스펙이 아닌 경험과 수치로 드러낼 수 없는 성향을 서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끔 취업준비생들을 컨설팅하다 보면 학점과 영어 점수 따느라 여행도 별로 다녀본 적 없고 딱히 특별한 경력이나 경험을 쌓은 것도 아니어서 스펙 외에는 딱히 쓸 말이 없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부족한 점을 알고 있으면 채워 넣으라고 말한다. 자기소개서는 지어내는 작문이 아니라 사실을 근거로 써야 한다. 경험이 없고 내세울 게 없으면 자신에게 부족한 경험이나 능력을 채워야 한다. (K, 취업 컨설턴트)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원하는 회사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고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는 건 사실 가장 기본적인 룰이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의외로 많은 지원자가 지원할 회사에 대해 잘 모르고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거다. 어떤 포부 없이 자신의 장점만 부각시키려고 애쓰는 자기소개서는 매력이 없다. 아무래도 취업이 힘든 시기에,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하루에도 50장, 1백 장씩 쓰다 보니 한 장의 자기소개서를 샘플처럼 만들어놓고 지원하는 회사의 이름만 바꿔 제출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 자신을 잘 PR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회사에서 원하는 내용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거다. (A, 전자회사 채용 담당자)

당신은 슈퍼맨

자기소개서를 읽다가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오면 딱 그만 읽고 싶어진다. ‘무슨 업무가 주어지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패기라고 하기에는 신뢰가 가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구체적인 포부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문장도 있다. ‘입사하게 된다면 영어 회화 능력도 더 쌓겠습니다.’ 회사는 입사 후 자기 계발할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이미 준비된 사람이 필요하다. 경력 12년 차인 나도 아직 모든 부서의 일을 파악하지 못했는데 미생인 신입 사원이 도대체 뭘 얼마나 다 해낼 수 있다는 건가. (L, IT회사 채용 담당자)

회사 소개는 그만

자기소개서가 아닌 회사 소개서를 들이미는 지원자들이 있다. 자신의 역량과 포부, 향후 계획 등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시작 부분에 지원한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치게 많이 하는 거다. 회사에 대한 지원자의 생각은 면접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자기소개서는 면접에서 지원자를 평가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가 된다. 지원자의 매력이 충분히 드러나야 면접관들이 이를 보고 지원자에 대해 궁금한 점이 생기면 질문하고, 지원자로서는 자신의 의견을 밝힐 기회를 얻게 되는 거다. 그 소중한 공간을 쓸데없이 지원한 회사에 대한 지식을 자랑하는 데 쓰는 건 낭비다. (H, 광고대행사 대표)

다 똑같은 기승전결

수많은 자기소개서를 읽다 보면 하나같이 기승전결에 따라 글을 쓴다. 요즘은 취업 포털 사이트에서도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를 첨삭해주니, 같은 공식 아래 작성하는 것과 같다. 물론 취업 전문가의 조언을 참고하는 건 좋지만 참고만 할 뿐 자신만의 소개서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천편일률적인 자기소개서는 무난할지는 몰라도 특별히 눈길이 가지는 않는다. 자기소개서는 논술 시험이 아니다. A4 한 장의 내용으로 자신을 충분히 어필하기만 하면 된다. 기승전결의 순서를 지키지 않고 결말을 먼저 보여줘도 무방하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자기소개서를 기계적으로 읽다가도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자소서를 발견하면 눈길이 멈추기 마련이다. (P, 홍보대행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