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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평생을 입으로 살아온 남자가 있다. 글을 쓰고 고치는 일로 돈을 벌고, 몸을 쓰는 세계보다는 말로 먹고사는 세계에서 생존해온 글쟁이가 마흔 살 생일을 앞두고 ‘나만의 방’,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직접 만든 방’을 갖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주말 집짓기>는 먹는 일, 가까운 거리의 운전, 섹스 정도를 뺀 대부분의 육체노동에는 언제나 전문가를 고용할 수밖에 없었던 ‘흙손’ 인간, 벽에 액자를 걸거나 부품 하나 교체하는 일에도 진땀을 빼 아내에게 ‘유니콘보다도 쓸모없는 존재’라는 핀잔을 들어온 한 중년 남성이 친구이자 건축가인 ‘찰리’와 함께 2년 동안 숲 속 목조 오두막을 완성하며 기록한 건축 무용담이다. 고작 원룸 크기의 작은 집 짓는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로울까 싶지만 이 허당 중년이 현재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저널리스트이자 환경운동가인 마이클 폴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저서 <욕망하는 식물>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통해 인간과 자연, 환경과 역사에 대해 자유분방하면서도 치밀한 해석을 해온 그의 장기는 여전하다. 터잡기, 설계, 기초, 골조, 지붕, 창문, 마감 등 일련의 건축 과정을 거치며 쌓인 깊은 사유가 곳곳에서 반짝인다. 그는 집의 창문을 두고 ‘사는 사람의 얼굴이자 뼈대’라고 지칭하며 ‘집 안과 밖의 관계, 의자에 앉은 사람과 풍경의 관계를 정립하는’, 그래서 지붕이나 기둥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임을 주장한다. 나아가 기원전 1세기 비트루비우스의 건축 고서 속 문장을 인용하는가 하면, 미국의 사상가이자 문학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프랑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를 적재적소에 등장시키며 ‘인문학 글쟁이’로서의임무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전 세계 어느 공사 현장에 가더라도 건축가는 수수께끼와 같은 존재다. 그들은 예술가적 성향이 강해 대체로 독특하며, 실용성 따위는 무시해버린 디자인을 들고 나타나기 십상이다. 반면 목수는 철저하게 규칙과 법에 따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건축가의 설계도를 세상 물정 모르는 철딱서니의 낙서쯤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건축가와 목수 간의 팽팽한 기 싸움을 ‘중계’한 이 대목처럼 때로 현학적 사유 속에 생생한 경험담이 불쑥 끼어들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집이 완성될 무렵 마이크 폴란은 그간의 저서에서 꾸준히 다뤄온 주제인 ‘자연과 문화’로 회귀한다. ‘인간은 어떻게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며 그 공존의 방식은 다른 생명체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 한 문장의 질문을 던지기 위해 그가 2년간 집을 지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20대 시절 건축 잡지의 표지를 장식할 만한 작품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지만, 다양한 건축주들을 만나며 실용 건축으로 전향한 일본 건축가 오시마 겐지. 그의 <집짓기 해부도감>은 제목대로 집을 유형별로 섬세하게 분해한 책이다. 노하우를 설명하는 디테일이 예사롭지 않은데 예를 들어 부엌 챕터의 경우 ‘집의 크기’ ‘일하게 될 사람의 수’ ‘필요한 수납량’ ‘냄새와 연기, 튀는 기름의 정도’까지 카테고리를 나눠 일러스트와 함께 최적의 설계 노하우를 공유한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소리’ 같은 무형의 요소에도 집중하는데, 그는 “전혀 소리가 나지 않는 방은 오히려 몸과 마음이 불안정해진다”고 이야기하며 물 끓는 소리, 희미한 음악 소리 등 집 안에서 나는 소리를 부드럽게 반사할 수 있는 구조까지 제안한다.

 

마이클 폴란과 오시마 겐지가 집 짓는 일련의 과정에 집중한다면, ‘땅콩 건축’으로 유명한 이현욱 건축가의 <굿바이 아파트, 집 짓기의 정석>은 특수한 한국 건축 정서를 노골적으로 반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서울 8학군 지역에서 나고 자란 ‘아파트 키드’인 그가 결혼 후 전세 아파트와 빌라를 전전하다 2006년 돌려받은 전세금 1억 5천만원으로 판교의 17평 땅에 자신의 집을 짓기 시작하여 쌓은 노하우를 친절하게 풀어냈다. 마치 건축가인 사촌 오빠가 해주는 조언 같다고 할까. 그는 땅을 사기에 앞서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뭘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땅 건폐율이 얼마예요?’라고 시작하면 맹탕 신세는 면할수 있다고 귀띔한다. 평당 가격에 현혹되는 것이 아니라 땅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지를 알아봐야 하며, 이런 이유로 용적률(땅에 지을 수 있는 건물의 총면적)과 건폐율(건물 한 층의 최대 면적)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 이밖에 땅값과 건축비의 최적의 비율은 5:5라는 것, 제세 공과금, 토목 공사비처럼 놓치기 쉬운 추가 비용, 일조권, 도로 제한 등 사소한 법률까지 세세하게 설명한다.

“집이란 몽상의 보금자리요, 몽상가의 은신처이며,평화롭게 꿈꿀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다”라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거창한 정의까지 들먹일 필요 없이 우리는 그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순간부터 세상의 소음과 소란을 뒤로하고 무결점의 평안으로 진입하고 싶을 뿐이다. 나의 사소한 습관이나 생활방식을 사려 깊게 반영한 공간이 선사하는 강 같은 평화를 누릴 수만 있다면! 마이클 폴란이 2년간의 여정을 끝내며 남긴 “집의 책상 앞에 자리 잡고 앉아 있으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낡은 스웨터와 양말을 껴입은 듯한 아늑함이 느껴졌다. 몸에 꼭 맞는 옷 같은 집이었다”는 문장을 읽고 있자니 정말이지 내 집을 짓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