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스릴러

<바퀴벌레>

요 네스뵈의 <바퀴벌레>를 읽다가 구글을 검색했다. 1970년, 태국 방콕에서 노르웨이 대사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적이 있다. 요 네스뵈는 이에 얽힌 소문을 접하고 <바퀴벌레>을 착상했다고 밝히며, “현실은 더 기묘하므로”라는 말을 덧붙인다. <스노우맨>으로 잘 알려진 해리 홀레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 이 작품은 젊은 해리 홀레가 방콕으로 떠나 노르웨이 대사 피살 사건을 수사하는 내용이다. 매춘부가 손님을 만나러 갔다가 손님이 죽은 것을 발견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죽은 손님이 노르웨이의 대사였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이슈라서 노르웨이 경찰은 해리 홀레를 방콕으로 급파해 경위 파악에 나선다. “태국에는 1제곱인치당 변태 성욕자 수가 전 세계 평균보다 많을 거예요. 별별 욕구를 다 충족시켜주는 성 산업이 여기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이 몰려드는 거죠.” 수사에 착수한 사람들조차, 사망한 대사의 가방에서 아동 포르노물이 발견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바퀴벌레>는 매번 사기당하는 느낌을 주는 택시 기사와 벌이는 실랑이와 교통 체증,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행해지는 섹스와 이를 거래하는 사람 등 방콕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스릴러다. 후기 작품들에서는 지치고 비관적인 느낌이던 해리 홀레는 시리즈 초반인 이 책에서는 저돌적이고 원색적이다. 젊은 그가 어떻게든 해결하려 애쓰는 사건은 문제의 노르웨이 대사 살인 사건 말고 하나가 더 있다. 다운증후군을 앓는 여동생이 성폭행을 당해 임신하고 낙태를 한 것. 해리 홀레는 늦기 전에 범인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범인이 합당한 벌을 받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노르웨이와 태국이라는, 평균기온부터 도시 분위기까지 어느 하나 비슷한 것 없을 두 나라에서 벌어진 사건이 해리 홀레의 집념으로 풀려간다. 다 읽고 나면 실제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노르웨이 대사에게 숨은 사연은 무엇일까 상상하게 된다. 자기 버전의 <바퀴벌레>를 상상하는 것이다. 비채

 

 

예언의 집

<미니어처리스트>

영국 최대 서점 체인인 워터스턴이 2014년 ‘올해의 책’으로 꼽고, 연말의 긴 휴가를 앞두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장 많이 팔린 소설 <미니어처리스트>. 1982년생으로,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왕립중앙연극원과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한 뒤 비서로 일하며 배우로도 활동했던 작가 제시 버튼이 네덜란드로 여름휴가를 갔다가 정교한 모형 ‘미니어처 하우스’를 목격하고 이후 그 소유자에 대해 상상하며 소설을 집필하게 된다. 책에는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이 소장한 ‘페트로넬라 오트만의 캐비닛 하우스’라는 흑백사진이 실려 있는데, 실물로 보면 마치 소인국이 존재하는 듯 충격이 느껴질 정도로 정교한 수공예 작품이다.

소설은 융성했던, 1686년의 암스테르담을 무대로 한다. 열여덟 살 넬리 오트만은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성공했다는 요하네스 브란트와 결혼해 그의 집으로 오지만 식구들의 냉대를 견뎌야 한다. 어느 날 그녀는 ‘미니어처 하우스’를 선물 받는다. 집과 집안 사람들을 그대로 복제한 듯한 이 집은 사실상 넬리 주변에 일어날 일을 축약한 예언의 집이었다. 미드 <C.S.I.>를 즐겨 본 사람이라면, 라스베이거스 시리즈에서 그리섬 반장을 오랫동안 괴롭힌 ‘미니어처 킬러’를 떠올릴 수도 있다. 치밀하고 섬세하며, 암스테르담으로 떠나고 싶게 만드는 스릴러다. 자신의 삶을 바꾼 미니어처 하우스를 만들어낸 사람을 찾아 나서는 넬리의 불안한 모험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잠들지 못하게 만든다. 비채

 

 

콤비의 수사극

<나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

사무엘 비외르크는 독자를 방심하게 만드는 트릭을 멋지게 구사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발터 헨릭센은 식탁에 앉아 아내가 만든 아침을 먹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베이컨과 달걀, 청어와 연어, 갓 구운 빵. 아내가 늘 꿈꿔온 자신만의 텃밭에서 손수 가꾼 허브를 우려낸 차도 한 잔 있다. 오슬로에서 멀리 떨어진 이 집을 산 건 그 텃밭 때문이었다. 발터는 아내와 느긋하고 건강한 취미생활을 누리고 있고, 기르는 개에 대해서라면 불만이 좀 많지만 오늘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그는 어제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했다. 그때 아내는 자고 있었나? 자고 있었다! 발터는 아내를 사랑하므로,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다. 아내가 화난 기색을 보이지 않자, 발터는 신이 나서 평소 같으면 귀찮아했을 개 산책을 시키겠다고 나섰다. 개와 숲으로 들어간 발터는 느긋한 기분으로 개를 풀어주는데, 개가 어디론가 달려가고… “개는 작은 공터에 너무도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리고 나무에 매달린 작은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두 발이 땅 위에서 달랑거렸다. 등에는 책가방을 메고, 목에 걸린 종이에는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나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

노르웨이의 드라마 작가이자 작사가로도 활약하는 사무엘 비외르크의 <나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의 주인공은 쉰네 살의 베테랑 수사관 홀거 뭉크다. 인터넷에서 수학 동호인들과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는 취미를 가진 이혼남이다. 소녀가 숲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그에게 배당되자, 그는 직관력에서 자기보다 뛰어나다고 인정한 미아 크뤼거와 합을 이루려고 한다. 과거 두 사람은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가던 콤비였다. 과거의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미아는 사건 현장 사진을 보고 결국 합류하지만 사건은 연쇄살인으로 확장되고 과거의 어둠이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맞아떨어지는 듯한 클라이맥스의 진행은 사무엘 비외르크의 다음 책을 주저 없이 집어 들게 만든다. 황소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