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러쉬 화보

재킷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팬츠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스웨터와 스니커즈 모두 펜디(Fendi).

동그랗고 작은 놀이터. 한 아이가 그네를 타고 시소를 타다가 모래로 무언가를 만든다. 곧 벌떡 일어나 정글짐에 올라간다.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 만드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말은 아꼈지만 대중 가수로 피치 못하게 해야 하는 것들을 제외하고 크러쉬는 대체로 그런 식으로 살고 있는 듯했다.

‘멍때리기 대회’에서 보이던 그 표정으로 들어온 그는 바닥에 쌓여 있는 LP판을 보자마자 주저앉아 뒤지며 “오~” 하고 감탄사를 내뱉고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앨범을 골라 사진을 찍는다. 턴테이블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럼요. 엄청 좋아해서 작년부터 모았어요”라고 대답하고는 책상에 놓인 사진집을 넘겨 보다가 ‘진짜 힙하다’며 또 사진을 찍어 간다.

어떤 옷이든 감각적이고 영리하게 옷을 이해했고 인터뷰를 하다 질문이 조금만 길어지면 눈동자는 금세 다른 생각으로 꽉 찼다. 스물다섯 살. 트렌디한 목소리뿐만 아니라 크러쉬라는 사람 자체가 그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처럼 보였다. 좋아하는 음악을 향해 거침없이 밀어 붙이는 힘까지도.

 

크러쉬 마리끌레르

셔츠와 팬츠, 쇼츠 모두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슈즈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앨범 발매 일이 하루 남았어요. 네, 앨범 프로모션을 굉장히 많이 준비 했어요. 이번에는 방송 활동을 안 해서 콘서트 위주로 준비하고 있어요.

프로모션 방법이 특이했어요. 실제 본인의 방을 이상과 꿈을 그리는 ‘룸 원더러스트’라고 이름 짓고 팬들이 체험할 수 있게 했죠. 현실의 내 방을 이상과 꿈을 그리는 방으로 재정의했다는 점이 특이했어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제 방에는 LP들과 턴테이블이 있고, 포토북도 있죠. 거기에서 앨범 구상도 하고 가사도 쓰고 음악도 듣고 혼자 위스키도 마셔요.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죠. 이번 앨범이 자전적인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제가 느낀 감성이나 감정을 많은 분이 공감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제 방을 재현해봤어요.

 

크러쉬 인터뷰

재킷 랄프 로렌(Ralph Lauren), 팬츠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스웨터와 슈즈 모두 구찌(Gucci).

스물다섯 살을 맞아 다르게 다가오는 감정들이 있었나봐요. 어리다면 어린 나이부터 이 일을 시작했는데 올해 들어서 여러 가지를 깨달았어요. 그 깨달음으로 이번 앨범을 만들 수 있었고요. 제 소리를 연구하고, 사운드를 많이 고민하면서 어떤 음악이 저를 가장 돋보이게 할까 깊이 생각했어요. 어떤 주제를 가사로 옮겨야 많은 분이 공감해주실까 고민도 많았고요.

스스로 좋아서 시작했지만 점차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들었을 때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고민한 결과네요. 하고 싶은, 쓰고자 하는 가사의 기준이 명확해졌어요. 제 이야기를 음악으로 잘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이번 앨범부터 확실하게 잡혔거든요. 사실 지난번 앨범 <interlude>가 예고편이었던 셈이에요. 그때까지 제 모든 노래는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었거든요. <interlude> 앨범부터 자전적 내용에 집중하면서 조금씩 변화시켰어요. 흥행 성적을 떠나서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확실하게 있어야 오래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운드에도 변화가 생겼나요? 디지털 요소들을 다 뺐어요. 완벽히 어쿠스틱을 기반으로 한 앨범이에요. 제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할 수 있는 장치죠.

처음 음악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순간, 기억나요? 그렇게 다짐을 하기도 전인 어릴 때부터 너무 재밌고 좋아서 계속했던 것 같아요.

크러쉬는 피처링이나 OST 참여로 ‘열일’하는 뮤지션 중 하나예요. 제일 흥미로웠던 작업을 꼽는다면? 외부 작업은 항상 재밌게 하는 편이에요. 기억에 남는 작업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음악인데, 3년 전에 ‘태완’이라는 형님 노래를 피처링했어요. ‘어디 갈래’라는 곡이에요. 그 곡을 작업할 때 30분 만에 가사를 쓰고 30분 만에 녹음했어요. 편곡이 워낙 좋아서.

목소리가 지나치게 많이 소비되는 건 아닐까 고민한 적은 없어요? 노래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듯해요. 목소리가 소비돼야 사람들이 제 목소리를 알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제가 할 수 있는 장르를 벗어나 말도 안 되는 음악을 갑자기 하진 않으니까 적당한 선을 지키면서 계속 좋은 결과물들을 발표하는 게 우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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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슈스케 심사에 참여했죠. 느끼는 게 많았을 텐데요. 그랬어요. 아는 친구가 갑자기 참가자로 나와 당황하기도 했고요. 제가 심사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이 많아서 뿌듯했어요.

심사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하지만 이 일을 오래 해온 감각으로 듣자마자 될 것 같은 목소리는 알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네, 느낌이 바로 오더라고요. 몇 명 심사하지 않았지만 마지막에 장안의 화제인 김영근 씨가 나와 첫 소절 불렀을 때 듣자마자 ‘아,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죠.

 

크러쉬 스타일

울 코트 디올(Dior), 티셔츠와 팬츠 모두 구찌(Gucci), 슈즈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여러 명과 음악을 함께 하고 있고, 친한 뮤지션도 대충은 알 것 같은데 음악을 하면서 편하게 기댈 수 있거나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면요? 지코나 딘, 그리고 밀릭이라는 친구와 많이 소통해요. 항상 같이 작업하는 스테이 튠이라는 형도 있고, 이번 앨범부터 완벽하게 저의 프로덕션 팀에 합류한 또치 누나가 있어요. 또치 누나와 스테이 튠 형과 저, 셋이서 편곡도 같이하면서 이번 앨범을 총괄했어요.

미국, 유럽 투어도 준비하고 있죠? 너무 감사하고 설레고 좋은데 그렇게 많은 공연을 감당할 체력이 될지 걱정돼요. 목 관리도 잘해야 하고요. 몸 상태가 가장 중요하니까 열심히 운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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