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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택배비를 보낸다

동갑인 남자친구 L과 만난 지 6개월.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내가 그보다는 금전적 여유가 있었다. 데이트 비용이며 그의 자질구레한 생활비까지 종종 내 월급으로 메우곤 했지만 그가 곧 취업할 것이라 믿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어느 날 내 생일을 앞두고 그가 선물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사정을 뻔히 알기에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꼭 선물하고 싶다는데 마다하면 괜히 자격지심이 들까 싶어 겨울이니까 텀블러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데 그가 실수로 겨울용 텀블러가 아닌 빨대가 꽂힌 여름용 보냉 보틀을 주문해버린 거다. 이미 보냉 보틀이 있던 터라 그에게 쓰라고 했더니 그래도 선물인데 그럴 수 없다며 교환 신청을 하겠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나에게 업체 계좌로 5천원을 입금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황당해서 되물으니 자기 입장에서는 생돈 5천원을 교환 배송료로 쓰기가 너무 아깝다는 것이었다. ‘5천원이 아까우면 업체로 직접 찾아가보는 건 어때?’ 하고 답을 보냈다. 이후로 그는 답장이 없었다. 여행사 상품기획실 사원 P

중고나라 좋아하세요?

M의 인터넷 익스플로어 시작 화면이 포털 사이트의 메인 페이지가 아니라 ‘중고나라’ 카페임을 발견한 날부터 비극은 시작됐다. 그러니까 ‘중고나라’는 국민 4명 중 1명이 가입한 1천5백만 명의 회원 수를 자랑하는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다. 나 역시 그 존재를 알고 있을 만큼 생활에 유익한 곳이다. 그는 새것이라 해도 믿을 만한 좋은 상품을 중고가로 사곤 했는데 그가 구입한 노트북과 자전거 모두 훌륭했다. 그는 초 단위로 올라오는 새 상품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면서 남들이 제값 주고 사는 걸 본인은 훨씬 싸게 샀다는 데서, 또 누군가와 계속 협상해 가격을 낮추었다는 데서 엄청난 희열을 느끼는 듯했다. 데이트 장소는 매주 그의 거래 동선에 따라 바뀌었다. 직거래는 주로 지하철역에서 이뤄지는데 좋은 조건으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판매자가 살고 있는 지역까지 찾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개봉, 양정, 곡산, 신포··· 그가 아니었으면 가보지 못했을 곳곳을 탐험하는 중이다. 이제 그는 내가 무슨 물건만 사면 바로 중고나라 카페에서 가격을 확인한다. 콘서트 티켓부터 피트니스 센터 회원권까지 중고나라에서 팔지 않는 건 없기에 그의 최저가 레이더망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나는 지금 중고 나라 단골 회원이다. 대학원생 M

가격포비아의 N분의 1

‘나 돈 없어’를 조건반사처럼 말하던 H. 입사 동기였기에 우리가 버는 돈의 액수가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그는 늘 ‘돈이 없다’고 했다. H는 전형적인 ‘궁상 떨다 소탐대실’하는 타입의 남자였다. 집 앞 미용실의 커트 1만원이 비싸다며 차를 몰고 왕복 한 시간 거리의 7천원짜리 미용실을 찾아가는 식이였다. 절약 정신이 몸에 밴 게 아니라 어떤 가격을 들이밀어도 그에겐 그냥 비싼 것이었으니, 소위 가격 공포증에 가까웠다. 데이트 비용은 철저히 N분의 1 법칙에 따랐다. 1박 2일 속초 여행을 떠난 날 웬일로 돈타령을 안 하길래 그가 변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한데 여행을 다녀온 다음 날 아침, 카톡으로 엑셀 파일 하나가 날아왔다. 기름값과 식비는 물론 톨게이트 비용 2만3천4백원, 낙산사 입장료 6천원, 공영 주차장 주차비 5백원까지 꼼꼼히 기록돼 있었다. 총액의 반인 15만6천4백원 중 15만6천원만 입금하라고 했다. 그에게 50만원을 입금하고 안녕을 고했다. 공연기획사 마케팅팀 대리 L

너를 만나면 배가 고프다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한 이래 ‘식당에 가면 2명이서는 3인분, 3명이서는 4인분!’이라는 주문 공식을 고수해온 나와 그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칼국수집에서 내가 국수 두 그릇 이외에 만두를 추가하면 눈이 동그래져서는 ‘다 먹을 수 있어? 정말?’ 하고 되묻고 되물었다. 둘이서 부대찌개 1인분을 시켜놓고 공깃밥을 추가하기도 했으며, 오랜만에 고기라도 먹어볼까 하면 ‘1인분 반이요!’를 호기롭게 외쳤다. 식당 주인의 날카로운 시선에 몸 둘 바를 몰라 고개를 숙이는 것은 나뿐이었다. 실컷 먹고 싶은 마음에 내가 주로 밥을 계산했지만 그가 간혹 밥을 사는 날이면 눈칫밥도 그런 눈칫밥이 없었다. 데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늘 배가 고팠다. 불 꺼진 집, 혼자 부엌에서 라면을 끓일때면 내가 이러려고 연애를 했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더라. 가뭄에 콩 나듯 카페에 가면 그는 내게 무엇을 마실지 물어보지 않았다. 오로지 따뜻한 아메리카노, 게다가 라지 사이즈 딱 한 잔. 중학교 교사 P

10억이라는 이름의 신흥종교

엄마 카드 한 장으로 세상을 다 가졌던 남자, 대학 동기 P. ‘싸구려 음식은 먹을 게 없다’며 입학 이래 단 한 번도 대학 구내식당에 가지 않았고, 커피 한잔을 마셔도 ‘핸드 드립’만, 미용실도 꼭 연예인들이 가는 곳만 다니며 엄마 카드를 긁어대는 애였다. 엄마 카드는커녕 일주일에 과외를 네 군데씩 뛰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나와 P의 연애는 오래갈 수 없었다. 그 때문인지 사회에 나와 만난 L이 좋았다. 나에겐 그저 암호 같은 세법이나 지금 꼭 가입해둬야 할 금융 상품 등 생활 경제에 눈 밝은 남자였다. 그와 만난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월급쟁이 10억 모으기’ 열풍이 불었다. 그는 곧 10억이란 이름의 신흥종교의 골수 신자가 되고 말았다. 교통수단은 자전거, 점심은 도시락, 휴대폰 사용료는 한달 3천9백원. 어떻게 휴대폰 요금이 3천9백원이 나올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휴대폰 분실 신고를 하면 다달이 3천9백원의 요금이 청구되는데, 그러면 전화를 걸 수는 없어도 받을 수는 있어.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용건이 있는 사람이 전화하면 되니까 나는 전혀 불편하지 않지”라고 답하며 씩 웃었다. 그가 회사 전화가 아닌 휴대폰으로 내게 마지막으로 전화 건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지독한 돈 사랑 때문에 우리는 헤어졌다. 회사 동기가 결혼할 때도, 가까운 친구가 부친상을 당해도 축의금이나 부조금 내는 것이 아까워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절대 가지 않는 그에게 인간적 호감마저 잃었으니까. 전자회사 홍보팀 대리 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