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폰 플리츠 드레스 손정완(Son Jung Wan), 그레이 롱 카디건 럭키슈에뜨(Lucky Chouette).

한동안 소식을 듣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1년에 한 작품씩은 해왔다. 지금의 이 속도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호흡인 것 같다. 1년에 두 작품을 한 적도 있는데 작품 하나를 마치면 일단 쉬고 싶다.

작품을 하고 있지 않아도 보통 행사나 개인 SNS에서라도 소식을 접할 수 있는데 일부러 꽁꽁 숨은 줄 알았다. 원래 내가 활동적인 성격이 아니라 집을 좋아하는 집순이이긴 하다. 행사장은 사실 아직 어색하다. 그런 자리에 있으면 내 정체성이 무언지 잘 모르겠다. 아마 아직 내 중심이 확고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촬영장에서는 내가 내 호흡을 잃더라도 다른 배우나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나를 잘 붙잡고 있는데 행사장에서는 나를 어디에 맞춰야 할지 잘 모를 때가 있다. 그 행사장에 머무는 시간, 그곳에 가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 내내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더라. 그래서 피하게 된다. SNS는 하다가 관뒀는데, 요즘도 가끔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라도 계속 할 걸 그랬나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소통은 소속사 홈페이지를 통해 할 수 있으니 관두길 잘한 것 같다.

SNS 활동을 관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SNS를 보면서 나와 비교하게 되더라. SNS라는 공간이 꼭 진실만을 말하진 않지 않나. 누군가 꾸며냈을 수도 있는 모습과 상황에 나도 모르게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았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내 SNS를 보고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고.

 

문채원

화이트 니트 톱과 스커트 모두 디케이엔와이(DKNY), 앵클 스트랩 슈즈 니나 리치(Nina Ricci).

집에서 문채원은 어떤 모습인가? 그냥 평범하다. 밥 세 번 먹고, 밥 먹으면 설거지하고 영화 보고 책 보고. 심심하게 시간을 보낸다. 요즘은 보고 있는 작품이 있어서 대본을 보거나 작품과 관련한 내용을 검색하고 찾아보고 관련 사진도 보고 그런다.

배우에게는 뭔가를 채우는 시간이 중요하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의 연기를 많이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마치 과제를 수행하듯 하루에 영화 한 편씩 봤다. 그런데 이제는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걸 찾아보게 된다. 요즘 빠진 게 있다면 춤과 노래다. 내가 춤과 노래에 소질이 없다 보니 춤추면서 노래 잘하는 사람이 참 멋있어 보이더라. 춤도 결국 곡을 해석해서 감정을 연기하는 것아닌가. 사실 연애만큼 연기에 도움을 주는 게 없다. 연애를 하면 멜로 감성만 생기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내 단점도 드러내게 되고, 희로애락을 느끼며 나 자신이 다양한 감정으로 채워진다. 아, 그런데 연애를 안 한 지 너무 오래됐다. 어쩌지. 너무 오래 안 해서 멜로 감성이 걱정된다. 멜로 세포와 연결고리가 끊어질 것 같아 걱정이다.(웃음)

 

문채원

블랙 니트 원피스 유돈 초이(Eudon Choi), 이어링 셀린느(Celine).

차기작으로 한국판 <크리미널 마인드>를 고려하고 있다고 들었다. 다행히 멜로물이 아니다. 멜로도 좋아지는데 가장 즐겨 보는 장르 중 하나가 수사물이다. 좋아하는 장르의 작품을 만나서 다행이고, 수사물의 맛을 보게 될 거라는 생각에 한번 해보고 싶었던 장르다. 이번 작품이 내게 도전일 수도 있다. 난 도전에 조심스러운 편인데 배우에게 도전과 변화는 꼭 필요한 거니까. 그렇다고 대단한 도전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좀 더 내공이 쌓이고 자신감이 충만해져야 다른 사람이 인정할 만한 큰 도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큰 도전이란 뭘까? 도전이냐 아니냐가 작품의 장르에 달렸다기보다는 여성 캐릭터의 무게가 극의 주요한 흐름을 끌고 갈 만큼 무거운 작품을 해내는 것이 큰 도전이 아닐까? 배우로서 내 힘과 내공이 충분해서 화면을 꽉 채울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충만해야 할 수 있겠지.

그때가 언제일까? 모르겠다. 결혼도 준비를 다 하고 하는 게 아니지 않나. 모든 준비가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과감하게 선택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더 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선택할 수 있겠지. 그러지 않으면 내가 무너져버릴 것 같다. 더 잘하고 즐길 수 있을 때 도전할 것 같다.

연기하는 현장은 즐거움이 더 큰가? 난 정답이 정해진 일보다는 창의적이고 만들어가는 일에 잘 맞는다. 그런 면에서 연기가 좋다. 다만 성격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관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연기를 시작한 지 4, 5년쯤 됐을 때는 쌓아온 게 없어서 그랬던 것 같고 지금은 이제껏 쌓아온 연기와 사람들이 가져주는 좋은 이미지 등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연기를 시작한 이래 할머니가 되어서도 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적도 없다. 지금 즐겁게 하고 있으니 하는 거다.

 

문채원

니트 톱과 이어링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이번 작품에 들어가게 된다면 어떤 걸 기대하나? 장르도 장르지만 함께 하게 될 선배들의 좋은 연기를 관객의 입장이 아닌 가까이에서 같이 연기하고 관찰하며 체득하고픈 마음이 크다. <크리미널 마인드>에서 생각중인 역할이 프로파일러인데, 그 직업에 대한 호기심도 있다. 도대체 어떤 유년기를 보냈기에,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성적이고 담대하게 범죄를 대하며 의로울 수 있는지 궁금했다. 몇 달 동안 연기하며 그 직업을 경험할 수 있다는 면에서도 기대된다. 작품을 선택하면서 <굿 닥터>를 빼고는 직업이 부각되는 역할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의사라는 직업에 동경이 있었는데 의사도 경험해봤으니까.

한국에선 아직까지 드라마나 영화의 여성의 캐릭터가 다양하지 않은 편이다. 배우로서 갈증을 느낄 수도 있겠다. 6년 전쯤인가, 비슷한 질문을 받았을 때보단 나아진 것 같다.

그때의 인터뷰 질문이 아직도 기억나나? 지금 비슷한 질문을 받으니 문득 떠올랐다. 나처럼 인터뷰를 가끔 하면 기억이 난다.(웃음)

그러게. 화보 촬영도 거의 하지 않는다. 화보 촬영을 할 때면 나 스스로 익숙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런 부분이 좀 어렵다. 연기할 때는 낯선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대사나 행동을 하며 인물을 표현하니 괜찮은데 화보는 오로지 사진으로만 보여줘야 하니까.

오늘은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팬들이 원하는 모습. <굿바이 미스터 블랙>을 촬영할 때 머리를 짧게 잘랐다. 그런데 많은 팬들이 긴 머리의 예전 모습을 그리워하더라. 처음 머리를 잘랐을 때는 내 변화가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문채원이라는 이름을 보고 잡지를 들춰 봤을 때 이왕이면 팬들이 원하는 모습의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짧게 잘랐나? 언젠가 꼭 짧게 잘라보고 싶었다. 배우는 언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모르다 보니 마음대로 자를 수가 없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 때는 연기한 인물이 태국에 사는 무국적 고아였기 때문에 짧은 머리가 어울렸다. 나와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를 떠나서 하고 싶었던 걸 해봤기에 만족스러웠다.

 

문채원

트렌치코트 셀린느(Celine).

헤어스타일 말고 바꾸고 싶은 것이 또 있나? 나를 채우고 싶은 것과 버리고 싶은 것 말이다. 연기를 오래 하면 할수록 사람을 잘 알게 된다던데 난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런 감각이 무디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첫눈에 알아채기가 어렵다. 처음 만났을 때 호감을 가지고 너무 빨리 마음을 열면 가끔 후회될 때가 있다. 상대방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거나 내가 좋은 마음으로 다가가는 걸 좋게 생각하지 않기도 하더라. 채우고 싶은건 현명함. 현장에선 좋은 배우, 회사에서는 좋은 일원, 그리고 집에서는 좋은 딸이고 싶은데 완벽하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 그래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이 좀 더 커지면 좋겠다. 서로의 다름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을 대하는 유연함은 세월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긴 하다. 바쁘게 지낼 때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지만 문득 그런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힘들고 지칠 땐 어떻게 푸는 편인가?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화내는 게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화? 화를 낼 곳이 없다. 그런 감정을 제대로 못 푸는 편이다. 요새는 그나마 매니저나 엄마에게 고민을 얘기한다. 친구들은 서로 가진 고민이 다르다 보니 수다는 떨어도 고민을 공감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왜 그런 것 있지 않나.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놨는데, 그 사람에게 특별히 뭔가를 기대한 게 아니어도 이상하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거. 그러다 보면 혼자만의 고민 같고, 나 혼자 짊어져야 할 것 같고, 그래서 더 외로워질 때. 요즘 내가 적당한 수다가 좀 부족한 상태인 것 같다.

오랫동안 근황을 접할 수 없었으니 근황 토크로 오늘 인터뷰를 마칠까한다.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해빙>. 보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좋았고 배우들의 연기가 기대 이상으로 풍부했다.

마지막 쇼핑 아이템은? 운동화. 이제 굽 높은 신발은 잘 못 신겠다. 아까도 오랜만에 하이힐을 신었더니 균형도 잘 못 잡지 않았나. 발이 아프다기보다는 굽 높은 신을 신은 내가 어색하다. 그래서인지 시상식 때 내 모습이 어색한 것 같다. 괴리감이 든달까. 화려하고 긴 드레스에 구두를 신은 모습은 사실 동화 속에서 보는 모습이지 않나. 일상에서는 입을 일이 없는 옷.

마지막 여행지는? 부산! 얼마 전에 부모님과 다녀왔다. 회는 못 먹었다. 부모님이 출발 30분 전에 배탈이 나셔서. 정말 열심히 검색해서 숙소도 전망 좋은 곳으로 예약했는데…. 내가 그런 걸 정말 열심히 찾거든.

 

문채원

화이트 드레스 발맹(Bal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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