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곳 털 정리, 브라질리안 왁싱에 대한 이야기다. 그곳이 어디냐고 굳이 물으신다면 음부란 두 글자를 쳐야겠지. 브라질리안 왁싱, 아직 내게는 미지의 영역이다. 동영상으로 구경은 했다. 보다 보면 생닭이 생각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아픔을 생각하면 으으으. 뭐 보여줄 곳도 딱히 없기도 했고, 천성이 털털한 탓에 수북한 채 살아온 나날들. 밀림 정복의 그날을 막연하게 상상하며 “너도 거기 털 정리해?” 지인들에게 질문을 던져보아도 체모 뜯기는 아픔을 마다하지 않고 미지의 세계를 개척할 용기를 품은, 혹은 이미 정복한 용자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럼 그렇지, 대부분 허벅지 사이에 열대 원시림을 키우고 있었다. 브라질리안 왁싱은커녕 비키니 왁싱조차 경험자가 드물었다. 이따금 겨드랑이 잡초들은 정리해주긴 해도 말이다. 그러나 원시림 사이, 조경 정원을 가꾸는 독보적인 문명인이 있었으니, K다. 브라질리안 왁싱 경력 3년 차, 처음엔 전문 숍에서 관리받다가 이제는 셀프 왁싱 제품 주문해 혼자서도 척척 잘해내는 K의 말을 듣다 보니 브라질리안 왁싱, 이거 솔깃하잖아.

“한번 맛들이면 신세계가 따로 없어. 냄새랑 질염도 확 줄고, 무엇보다 편하니까.” 그렇다. 위생에 좋단다. 순전히 미학적인 관점에서만 왁싱을 바라보다가 실용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이것 참, 뭐랄까. 겨드랑이 털 나풀대며 춤추는 탕웨이가 된 심정이다.

받아보고는 싶은데 체모가 뜯기는 그 아픔까지 사랑하기엔, 좀. K에게 용기 없음을 자백하자 격려의 메시지가 쏟아진다. “꼭 올 누드로 하지 않아도 되고 트라이앵글이나 하트 등 여러 타입을 택할 수 있으니 전문 관리 숍에서 눈 딱 감고 일단 한번 받아봐. 체모가 다시 나기 시작하면, 팬티에 와 닿던 그 보들보들 맨살의 감촉이 그리워질걸. 게다가 계속 받다 보면 체모 굵기도 얇아지고 그다지 아프지도 않아. 외국에선 에티켓의 하나라잖니. 말 나온 김에 예약 잡을까?”

가격은 올 누드가 15만원, 트라이앵글이 12만원 선이다. 전용 왁싱 제품을 사용해 혼자 할 경우, 왁스 비용이 4만~5만원 선. 단, 남이 해주는 것보다 조금 더 아프니 첫 경험은 숍에서 하는 편이 좋단다. 듣다 보니 예상보다 가격이 높기도 하고, 여전히 망설여진다. 바로 그 감촉을, 그 모습을 나 아닌 타인도 사랑할까? 또 대중목욕탕이나 수영장 갈 땐 어떻게 하지? 하는 문제가 마음에 남는다. 여긴 캘리포니아도 아니고, 있는 털 괜히 뽑아서 시원하게 정리해놓았다가 남자들에게 대번에 ‘까진 여자’로 보이진 않을까 노심초사가 발목을 잡은 순간, “아냐, 밤이 달라져. 남자들, 뭘 그런 것까지 정리하냐고 정색하다가 막상 정리한 모습을 보잖아? 그럼 엄청 달려들어. 야동 같기도 하고 암튼 느낌이 색다르대”라는 간증에 그냥 넋이 나가버린다.

지옥의 고통 뒤에는 신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니, 단테의 <신곡>에 버금가는 철학이 브라질리안 왁싱에는 담겨 있었구나. 그 아픔, 그 고통을 감수하며 지구상의 많은 여자들이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존재했던 거구나. 왜 그걸 몰랐지, 섹시한 속옷으로 커버해봤자 원초적인 미 앞에선 모두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무엇보다 내 마음을 움직인 가장 확실한 이유는, 왁싱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질색할 줄 알았던 남자친구의 반응 때문이었다. “흠,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더 이상의 망설임은 없다. 결심했다. 지옥을 거쳐 신세계로 승천해보자고. 뭘 하든 시도는 좋은 거니까. 당분간 휑한 아랫도리로 새해를 말끔하게 맞는 기분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새해의 작심은 삼 일을 못 가는 것이 통설이지만, 새해맞이 왁싱은 해놓으면 적어도 석 달은 갈 테니 이것 또한 나름 뿌듯한 선택과 투자 아니겠는가. 석 달 이후, 다시 무성해질 열대 원시림은…. 그때 가서 생각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