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우리는 친구 P를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소개팅한 남자랑 한 달 정도 만난 P는 남자가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오랜 솔로 생활로 죽어가던 자신의 연애세포를 되살려준 은인이라고도 했다. 이런 희소식은 휴대폰 단체 채팅창에서 글로 읽는 걸로는 부족했다. 친한 친구 넷이 모였다. P가 마지막에 왔다. 그런데 얼굴이 어두웠다. 연애는 잘 된다더니 뭐, 회사나 집에 문제 있어? 하니 그녀가 머뭇거리며 입을 뗐다. “며칠 전에 처음 잤는데… 남자친구 거기가 잘 안 보였어.” 한 친구가 재차 확인했다. 잘 안 보이다니? 털이 그렇게 많아? “아니, 작아서. 줄줄이 소시지 중 한 개. 딱 그 크기.” 누구는 숨을 들이켰고 누구는 질문을 이어갔다. 서기 전에? 설마, 후에? “당연히 발기 후에. 서로 처음으로 옷을 다 벗고 마주했는데 남친 거기에 아무 반응이 없으면 그게 더 문제였을 거야.” 글쎄 어떤 게 더 큰 문제일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고 생각했지만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녀는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도 다방면에서 찌릿찌릿한 감정이 통하던 남자였는데, 말마따나 계급장 다 떼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한 가장 원초적이고 내밀한 교감의 순간에 그녀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와 진심으로 잘해보고 싶은데 이제는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도, 데이트를 할 때도 그놈의 줄줄이 소시지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이야기를 듣던 우리가 혼란을 느낀 이유는 좀 달랐다. 정말 그렇게 작을 수도 있나?

그때까지 유일하게 묵묵히 있던 친구 J가 확인 사살을 했다. “내가 몇 년 전에 만난 남자 거기가 딱 엄지만 했어. 아직도 기억나. 진한 스킨십에 잔뜩 달아올라 이제 그만 넣어 줬으면 했는데 이미 그 ‘엄지왕자’는 내 안에 들어와 있었더라고. 앞뒤로 피스톤 운동을 하는 그의 몸짓을 보고 눈치챘지. 손가락은 차라리 앞뒤로 구부려 자극이라도 줄 수 있지, 그 작고 곧은 페니스는 문간에서 가볍게 인사만 하고 가버렸어. 농담이 아니라 혹시 콘돔이 헐렁해 벗겨지지는 않았을까 걱정했지. 좋은 남자였는데. 그러고는 못 봤어.” 담담한 그녀의 고백은 일말의 숙연함마저 느껴져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인터넷과 학술 자료를 뒤져보면 한국 성인 남자의 발기시 성기 사이즈는 평균 11~13cm라고 한다. 19cm 정도 되는 사람이 있다면, 산술적으로 당연히 5cm쯤 되는 남자도 이 평균값을 이루는 데 포함되어 있을 터다. 그 5cm가 남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아시아인의 신체가 다른 인종에 비해 작은 것은 소위 팩트다. 수많은 학계의 연구 결과가 말하고 있고, 수백만 년의 역사가 증명한다. 우리의 까마득한 조상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 유럽과 아시아로 이동하고, 네안데르탈인을 만나 같이 사네 마네 지지고 볶는 동안 북아시아에 정착한 호모사피엔스는 빙하기를 시베리아에서 나게 되었다. 생존은 곧 적응이다. 추위에 노출되는 면적은 적을수록 좋다. 더 작은 젖가슴, 더 납작한 엉덩이, 더 작은 성기 등등. 추측이지만 허무맹랑한 이론은 아니다. 이런 죽일 놈의 빙하기. 호기심에 자료를 검색하던 우리는 다 함께 지구를 원망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다. 평균치는 통계일 뿐, 사실 겉만 보고 남자의 그곳 사이즈를 짐작하기는 어렵다. 발이나 코가 크면 거기도 크다, 마른 장작이 활활 탄다 등 온갖 속설이 난무하지만 일관성도 증명된 바도 없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고 잘 자기 위함인데, 빈약한 잣대로 수준 낮은 신체 품평회를 하는 투는 옳지 않다. 섹스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다. 대부분의 우리가 평생 살면서 만날 성기의 수에는 한계가 있고, 그를 받아들이는 여자의 질은 모두 다르게 생겼다. 그래서 이런저런 속설만큼이나 나에게 맞는 페니스의 사이즈는 다양할 수 있다. P와 J의 이야기를 듣던 K의 속내가 그랬다. “근데 나는 속궁합에서 길이보다 굵기가 중요한 것 같아. 평균보다 짧아도 둘레가 어느 정도 되면 느끼는 데는 문제없었어. 난 오히려 너무 긴 남자는 못 만나겠더라고. 전에 사귀던 남자는 거기가 활처럼 위로 길게 휘었어. 길이도 한 뼘이 넘고. 잠자리를 할 때마다그 사람 성기 끝이 자궁벽을 찌른다고 해야 하나? 닿아서 못 견디게 아픈 거야. 염증도 자주 생기고. 내가 질 내부가 조금 짧은 편인가 싶기도 해. 결국 도저히 안 되다 싶어서 헤어졌어.” 굵기에 대해서는 함께 있던 K가 의견을 덧붙였다. “난 엄지왕자 말고, 검지왕자를 만난 적이 있어. 길이는 가까스로 평균치인데 참으로 슬림하고 여린 페니스였지. 그 남자가 침대에서 그러는 거야. 자기 게 길고 커서 조심해야 한대. 글쎄 본인 거기에 자격지심 가질 필요는 없지만, 그런 객관성이 결여된 자부심도 좀 아니지 않니? 섹스 끝나고 나서 많이 아팠느냐고 또 물어보길래 참지 못하고 솔직히 말했어. 너 그 정도는 아니라고. 그랬더니 득달같이 나한테 네 아래가 헐거운 거라고 쏘아붙이더라. 그래, 멀리 안 나간다. 난 큰 성기 찾을 테니 너는 더 작은 음부 찾으세요, 하고 헤어졌어.”

우리는 결국 친구 P의 고민에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이대로 만남을 지속해 두 사람의 관계가 무르익는다면, 삽입 자체보다 전희나 후희에 더 몰입해 삽입 시 부족 한 느낌을 채우려 노력해볼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의술의 힘을 빌리는 방법을 생각해보거나(최근 영국에서는 자가 지방 이식 확대술이 개발되어 인기가 높다고 한다), 결국 각자의 ‘몸’에 맞는 새 연애 상대를 찾아 제 갈 길을 가야 할 수도 있다. 어쩌겠나. 사랑을 위해서든 쾌락을 위해서든 도전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검지왕자의 이야기를 듣던 J가 한 마지막 말에 모두가 공감했다. “얘, 고추 작은 남자는 만나도 속 좁은 남자는 못 만나. 인생도 섹스도 오픈 마인드 가 중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