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0일, 서울을 방문 중인 피에르파브르 더모코스메틱(PFDC)의 에릭 듀크르노 사장과 한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세 번째로 방한한 그는 올 때마다 변하는 서울의 모습에 놀라는 눈치다. 역사적인 판문점의 남북 회담을 일주일 앞두고 방한한 그는 미디어에서 연신 쏟아내는 외신 보도를 통해 다이내믹 코리아의 복잡성을 아마도 조금이나마 체감했을 것이다.
 

더모코스메틱의 탄생

PFDC(피에르파브르 더모코스메틱) CEO인 그의 주요 관심사는 역시 한국 코스메틱 시장의 끊임없는 변화였다. 과거와 달리 백화점 중심의 유통에서 벗어나 다양한 유통 경로가 생겨나고 있는 데다가 드러그스토어 중심으로 더모코스메틱 제품이 많이 유통되어 비약적인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에 고무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를 비롯한 PFDC의 모든 직원들은 선대 회장인 피에르 파브르가 더모코스메틱이라는 개념을 처음 창시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피에르파브르 그룹은 1951년 약사였던 피에르 파브르가 프랑스 남서부 카스트르라는 소도시에서 작은 약국을 인수하면서 그룹의 역사가 시작된다. 지금까지도 연구는 물론이고 제품 생산의 모든 과정이 작은 도시 카스트르와 그 주변의 소도시들에서 대부분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방 소도시에서 시작된 기업이 전 세계로 이름을 알리는 글로벌 기업이 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얼마 전 열렸던 평창동계올림픽이 세계인에게 박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 모든 국민의 염원과 준비하는 사람들의 희생 덕분이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프리미엄이나 평창의 인지도 때문은 아니었던 것처럼 피에르파브르 그룹에 카스트르도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의문이 생겼다. 혹시 남프랑스의 화장품 제조 전통을 고수하기 위해서 카스트르 지역을 고집하는 것일까? 아니면 메이드 인 프랑스만을 신뢰하는 배타적인 자부심 때문에 사업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는 것일까? 에릭 듀크르노 사장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피에르 파브르 선대 회장은 자신의 고향에 이 회사가 오래도록 있기를 바랐고 지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회사를 창립할 당시 본인의 고향에 지역을 대표하는 산업이 없다는 사실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했고 고용 창출로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기를 바랐죠. 그리고 그는 돌아가시면서 생산 시설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고 카스트르 지역에 그대로 둘 것을 유일한 조건으로 재산을 가족에게 상속하지 않고 피에르파브르 비영리 재단에 모두 기부했습니다. 이런 그의 유지를 받들어 파리 부근에도 여러 센터가 있고, 전 세계 연구 기관과 수시로 협력하고 도쿄에도 아시아 여성을 위한 R&D 센터가 있지만 대부분의 센터가 프랑스 남부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더모코스메틱이라는 개념을 확립한 창업자 피에르 파브르는 이 분야에 대단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약사였던 피에르 파브르는 약국을 운영할 당시에 의사들이 처방하면 그 처방을 보완하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예를 들어 보통 환자들이 피부과 치료를 받을 때 연고나 먹는 약을 처방받는다. 그러나 치료 후 부작용이 생기거나 의학적으로 완치되었다는 확진을 받아도 환자는 다 나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보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안전한 제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더모코스메틱이 생겨난 것이다. 그는 뷰티 분야는 물론이고 피부 건강을 위해서도 소비자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 했고, 피에르파브르의 제품이 약품을 온전히 대체할 수는 없지만 아름다움과 건강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제품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아시아 여성에 대한 관심

“피에르 파브르 전 회장은 여러 차례 아시아를 여행하며 아시아 여성들이 아주 세련된 뷰티 루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여성들은 화장할 때 굉장히 간단하잖아요. 한국과 일본을 특히 자주 방문하셨는데 아시아 여성의 뷰티 루틴을 유럽 시장에 도입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셨고, 더불어 아시아 시장에도 큰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우리도 이런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아시아 여성을 위한 제품을 개발하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듀크르노 사장 역시 K-뷰티 관심이 많고, 그룹의 사업에서도 아시아 시장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K-뷰티가 전 세계 코스메틱업계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프랑스에서도 K-뷰티와 함께 K-패션이 인기가 높고, 듀크르노 사장 역시 한국인의 미적 감각이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피에르파브르의 제품 가운데 유럽에서는 볼 수 없고 아시아에서만 유통되는 제품이 20퍼센트 정도 되는데, 요즘 프랑스의 소비자들이 SNS에서 아시아 전용 제품을 접하고 ‘왜 프랑스에서는 이런 제품을 판매하지 않느냐?’고 항의하기도 하고, 한국을 방문했던 프랑스 뷰티 에디터들이 본사로 연락해 한국에 나와 있는 제품을 프랑스에도 출시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한다고 했다. 듀크르노 사장은 아시아 여성의 뷰티 루틴이나 아시아 여성이 좋아하는 텍스처 등을 심도 있게 연구해 제품에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피에르파브르 연구 개발의 역사

초창기 피에르 파브르 약국에서는 하지정맥류 환자를 위한 약을 주로 판매했다. 슈퍼마켓이나 가게에서 서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혈관이 붓는 하지정맥류가 많이 나타나는데, 이런 약을 팔면서 여성의 건강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주력한 것은 우리나라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엘지디움’이라는 구강 관리 제품으로 이를 통해 패밀리 케어로 영역을 확장하게 되었다. 연대기로 따져보자면 1951년 약국을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1959년 하지정맥류 약을 개발하며 주목받기 시작해 1962년 피에르파브르사를 설립했으며, 1965년에는 더모코스메틱을 탄생시키고 클로란과 르네 휘테르를 인수하며 사업 규모를 확장했다. 이후 1968년 카스트르 연구소 설립을 시작으로 아더마를 론칭하고 피에르파브르의 중심이 되는 아벤느를 론칭해 10개의 브랜드를 주축으로 현재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피에르파브르의 사업은 제약 부문, 헬스 케어 부문, 더모코스메틱 부문으로 크게 나뉘는데, 더모코스메틱 분야가 매출의 6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며 매출의 4.5퍼센트 정도를 연구 개발(R&D)에 투자하고 3백여 명의 인력이 이를 전담하고 있다.

“연구 개발에 대한 투자는 단순히 비용적인 측면으로만 따질 수 없습니다. 더모코스메틱을 포함해 코스메틱 시장은 경쟁이 굉장히 치열하잖아요. 한국이 대표적인 예죠. 살아남으려면 매년 참신한 제품을 선보여야 합니다. 저희는 상시적으로 1백40여 개의 새 제품을 론칭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연구 개발에 끊임없이 투자해야 합니다.”

 
 

건강에서 시작된 뷰티란 무엇인가?

피에르파브르는 프롬 헬스 투 뷰티(From Health to Beauty)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다. 이 말은 단순히 생각해보면 건강을 지키는 약에서 시작해 뷰티로 발전해나가는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는데 듀크르노 사장에게 들은 피에르파브르의 접근법은 조금 달랐다.

“프랑스어의 표현에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내 피부 안에서 편하게 있다’라는 관용구가 있습니다. 의역하면 ‘편안하게 느끼다’라는 뜻입니다. 편안하다는 습관적 관용구에 ‘피부’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피부는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느끼게 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요소죠. 아름다움이란 무대 위에서 여러 사람의 시선을 받으면서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즉 집이나 학교, 직장에서 본인이 아름답다고 느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피부가 편안해야 한다는 것이 저희의 신념입니다. 피부가 땅기거나 뭔가 자극이 있으면 몸과 마음이 아무래도 불편하잖아요. 우리가 말하는 피부의 건강을 확보하면 자신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목욕하거나 세수를 하고 거울을 봤을 때 피부가 깨끗하면 자신감이 금방 생기잖아요.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말하는 건강은 인본주의적 측면을 포괄합니다. 건강을 말할 때 보통 어떤 건강 보조제를 먹느냐, 어떤 약을 먹느냐를 따지며 이너 뷰티와 신체적 건강만으로 정의하기 쉬운데, 피에르파브르는 일상생활에서 자신감을 포함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포괄하는 전인적인 차원의 건강을 추구합니다. 이것은 UN에서 정의하는 건강의 개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고요.”

‘내 피부 안에서 편하게 있다’라는 관용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뷰티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나 역시 연구 개발와 연계된 듀크르노 사장의 부연 설명을 듣고 나서야 피에르파브르가 추구하는 건강과 뷰티의 연관성을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

“피부야말로 우리 신체 중에 가장 적나라하게 외부에 노출된 부위죠. 몸속에 있는 장기는 만지거나 느끼기 어렵고 장기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잖아요. 반면 밖에 노출된 피부는 접촉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피부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나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고 나를 강하게 만들 수 있으며 나 자신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또 피부는 자신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요. 나의 내장 기관들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강한 피부에 싸여 있을 때 느끼는 편안함을 생각해보셨나요? 이러한 피부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려면 말초신경이 자극되면 왜 심리적, 육체적으로 고통 받게 되는지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아토피나 건선 같은 질환을 가진 사람은 아무래도 말초신경이 자극돼 내부적으로 영향을 주어 첫 번째로 육체적인 고통을 느끼고, 두 번째로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겪게 됩니다. 우리가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고 말할 때가 있잖아요? 그건 단순히 부끄러워서 그런 게 아니라 피부 쪽 말초신경이 자극돼 얼굴이 붉어진 것이지요. 이렇게 피부에 특정 현상으로 나타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더모코스메틱이고, 우리는 피부를 지킬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연구 개발에 투자해 부단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겸손에서 시작되는 사업의 미덕

요즘 코즈메틱 분야 연구 개발의 주제는 크게 세 가지로 피부 박테리아 수 분석과 컨트롤, 메이크업 제품의 수가 많아지는 추세에 맞춰 메이크업에 잘 견딜 수 있는 피부 상태를 유지시키는 것과 메이크업 이후의 관리 그리고 외부 오염으로부터의 피부 보호다. 이처럼 생물학적 기초 연구와 함께 환경과 여성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른 연구 과제가 속출하고 있다. 코스메틱의 기술과 혁신은 어디까지 진화할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듀크르노 사장은 아무리 규모가 큰 기업이라도 전 세계 모든 소비자의 니즈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사업에 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서 듀크르노 사장은 피에르파브르 그룹이 가지고 있는 식물 활성 성분 관련 기술 노하우를 다른 작은 기업에 전수하기도 하고, 소기업과 협업해 새로운 활성 성분을 공동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디지털이나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에 지역 차원의 협력으로 제품을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지난가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온라인 판매 사이트를 개설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전 세계 시장에 e-커머스를 론칭하기 전에 한국 시장에서 테스트를 한 것은 한국이 이 분야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재산을 비영리 재단에 기부한 피에르파브르 창업자의 정신을 돌이켜 생각해보자. 그의 기부금은 뷰티 특히 피부학과 관련된 사업에 우선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중점을 두는 두 가지 사업은 적도 지역에 발생하는 백색증의 환자의 치료와 보호, 교육, 훈련과 아프리카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e-헬스’라는 프로젝트다. ‘e-헬스’는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원격 진료 지원이다. 3천만 인구 중에 피부과 전문의가 40명밖에 되지 않는 국가에서는 이 의사들이 모든 환자를 돌볼 수 없기 때문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원격 진료 사업을 후원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클로란 식물 재단에서는 보타니 포 체인지(Botany for Change)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데 올해는 우리나라에서도 이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것은 식물 유산 보존의 중요성을 알리는 인식 재고 운동인데 조경학과나 원예학과 학생들이 참여해 식물 유산을 제품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을 출품하는 콘테스트 형식으로 펼쳐진다. 수상작들은 도시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에 전시되는데 이를 통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나무를 비롯해 식물 환경을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목적이다.

아벤느, 르네 휘테르, 아더마, 클로란, 듀크레이 같은 브랜드명은 익숙하지만 피에르파브르라는 그룹의 이름은 우리에겐 생소하다. 그리고 이 회사가 이렇게 훌륭한 사업을 많이 벌이고 있다는 것도 듀크르노 사장을 만나기 전에는 잘 몰랐다. 경쟁이 치열한 코스메틱 분야에서는 저마다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광고 비주얼과 영상미 넘치는 필름으로 미를 추구하는 여성들의 감성을 사로잡는다. 요즘의 SNS는 뷰티 전쟁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에르파브르는 SNS에 집중할지언정 한 번도 외형적인 미적 추구나 정서적인 접근으로 자신을 소비자에게 드러내지 않았다. 유명 디자이너와 콜라보레이션을 한 적도 없고, 디스플레이를 근사하게 할 수 있는 종이 상자로 포장한 제품도 많지 않다. 하물며 그럴 생각도 없는 것 같다. 그들이 신경 쓰는 건 세균 번식을 최소화하는 멸균 포장법, 텍스처, 새로운 포뮬러 등과 같은 본질일 뿐이다. 진정성만을 담은 채 알몸으로 드러그스토어 진열대에 놓인 그들의 제품들을 보면 한번 쓰다듬어라도 주고 싶다. 그룹의 비영리 활동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하는 것도 답답하다. 이미지보다는 본질로 이야기하는 화장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DNA를 지켜내는 자신감이 이 회사를 매년 성장하는 회사로 만들어낸 것일까? 오래도록 이런 전통을 지켜낼 수 있기를 바란다. 밀레니얼의 라이프 코드에 가성비와 진정성이 담겨 있다는 여러 조사 기관의 발표가 피에르파브르의 미래 가능성을 믿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