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화장품 맞춤형화장품 컬러스 뷰티트렌드

‘뷰티의 미래는 맞춤형이다.’ 2019년 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릴 예정인 ‘퍼스널라이즈드 뷰티 서밋(Personalized Beauty Summit)’ 컨퍼런스의 슬로건이다. 참석 예정자 명단을 훑어보니 인디 뷰티 브랜드 관계자, 제형 장인, 성분 전문가 외에 IT 기업, 테크놀로지 스타트업, 빅데이터 업체 등이 눈에 띈다. 이 익숙하고도 낯선 조합이라니!

2017년 가을, 나는 가족 외에는 절대 보이고 싶지 않았던 민낯의 사진을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전송했다. 맞춤 화장품 컬러스(Colors)에서 화장품을 사려면 필수로 거쳐야 하는 절차였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안면 인식 기술과 빅데이터 알고리즘으로 피부 상태를 측정한 뒤 생활 패턴, 식습관, 피부 관리 방식에 대한 추가 정보를 조합해 만들어낼 수 있는 화장품의 종류는 무려 7천4백40만 가지! (지성·복합성·건성 분류에 따른 전통적 스킨케어법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개인 스킨 코드가 생성된 후 일주일쯤 지나면 성분, 텍스처, 효과 등이 내 피부에 최적화 된 나만의 화장품이 도착한다. 사용한 소감? 만족스럽다. 솜털 보송보송한 복숭아를 만지듯 피부 표면이 싱그럽고 속은 과즙 팡팡 촉촉함이 터졌다. 랜선 친구가 나보다 내 피부를 더 잘 알고 있다니! 소비자로서는 감사의 하트를 날렸고, 뷰티 칼럼니스트로서는 의문의 1패를 맛봤다.

안면 인식 기술, 광학 장비, 행동 및 위치 분석, 증강현실(AR), 인공지능(AI), 게놈…. 무식해서 그저 ‘첨단’이라 통칭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테크놀로지가 뷰티 그리고 D2C(Direct to Customer) 유통과 만나자 세계는 맞춤형 화장품으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미국 노드스트롬과 블루밍데일 백화점 랑콤 매장에서는 고유의 피부색과 피부 타입, 원하는 커버력에 맞는 파운데이션을 즉석에서 제조해준다. 눈앞에서 색소와 텍스처가 블렌딩돼 병에 담기는 과정은 완전 포스팅 각이다. 온라인 헤어 브랜드 e살롱(eSalon)은 나만의 염색제를 배송해준다. 하이엔드 살롱의 헤어 디자이너에게 추천받은 것 못지않은 컬러로 집에서 손수 염색할 수 있게 된 거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나라의 톤28은 피부 상태와 계절은 물론이고 관리 영역별(T존·O존·U존·N존)로 다른 ‘바를 거리’를 28일 주기로 배달한다. 유전체 기반 맞춤형 화장품을 위해 게놈 지도를 펼치는 연구소부터 퍼스널 컬러 제안에 열정을 불태우는 메이크업 브랜드까지 현재 뷰티업계의 ‘맞춤’을 위한 노력은 감동 그 자체다. 온 세상이 ‘당신은 관심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외치는 지금, 그래서 우리의 뷰티를 둘러싼 고민은 모두 해결된 걸까?

몇 년 전 모 스마트폰 기업에서 의뢰한 피부 분석 & 솔루션 구축 스터디에 참여한 적이 있다. 비밀 유지 서약서를 썼으니 과정에 대해서는 함구해야겠지만 개인적으로 ‘맞춤’의 알고리즘에 매우 회의적이었다는 소회는 밝히고 싶다. 현재 화장품에서 대부분의 과학적 분석은 ‘맞춤’으로 이어지고, 그에 따른 ‘추천’ 마켓이 형성되면 더 많이 팔고 싶은 기업은 필연적으로 더 먼저 추천받는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분석은 평등해도 솔루션은 권력이 된다는 뜻이다. 매일의 피부를 분석해 그날의 제품 혹은 추가로 구입하면 좋은 아이템을 알려주는 스마트미러, 브랜드 내에 개설되는 멘토 프로그램 등은 4차 산업혁명이 낳은 우아한 판촉물이다.

맞춤 화장품의 시대에는 과학을 이해하는 지능지수와 자신의 뷰티를 꾸려나갈 뷰티지수를 동시에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맞춤 화장품 입장에서는 물론 억울한 오해일 수 있다. 과학은 팩트고 맞춤 포뮬러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하지만 여기에도 맹점은 있다. ‘맞춤의 완성은 셀프’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나만의 화장품’을 나는 가을 내에 다 쓰지 못했다. 다른 제품으로 몇 번 기분 전환을 했더니 곧 겨울이 됐고, 지금은 기존에 쓰던 오일을 첨가해야 건조함을 느끼지 않고 그 제품을 쓸 수 있다. 계절에 맞게 다시 주문하면 될 것 아니냐고? 활용할 방법을 알고 있는데 굳이 왜 또 돈을 써야 하지? 인공지능의 완성은 인간 지능, 남이 아무리 잘 맞춰줬어도 마무리는 나의 BQ, 뷰티지수가 맡는다. 또 한 가지, 화장품의 사용 목적은 피부 건강 유지와 단장 그리고 심리적 만족이다. ‘예쁨과 기쁨’이라는 다분히 주관적인 지표가 객관적인 분석과 얼마나 아귀가 잘 맞느냐가 맞춤 화장품의 호불호를 가른다. 나와 함께 맞춤 화장품을 주문했던 한 지인은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진 제품을 썼을 때 피부가 훨씬 더 건조하다는 아이러니를 호소했다. 스킨케어에서 ‘보습 그득’을 중시하는 그녀는 적당한 유수분 밸런스를 제안하는 맞춤 화장품을 쓴 후 각질이 평상시보다 많이 일어나자 스트레스를 받았다. “뭐 이렇게 일방적이야.” 불만을 토로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그녀에게 다른 제품을 추가해 만족할 만큼 촉촉하게 사용하라고 말해버렸다. 컬러도 그렇다. 피부 톤에 딱 맞는 색이 그렇게 중요한가? 진단받고 만드는 재미는 쏠쏠했지만 나는 내 피부보다 하얗게 화장하는 것을 좋아해서 맞춤 컬러 베이스를 단 두 번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애초에 밝은 컬러로 만들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나 카운슬러는 그건 ‘맞춤’ 의 의의에 어긋난다고 했다. 자연스러움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이다. 그건 그 브랜드의 기준이지 나의 미감이 아니다.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진단을 받은 퍼플 핑크 립스틱을 바르는 것도 좋아한다. 뭣 모르는 것 같은 부조화가 매력적이라 기분이 좋아지고 화이트 티셔츠를 입으면 전체적으로 어려 보여 더 행복해진다. ‘첨단’의 분석이 ‘개취’와 맞지 않을 때, 나는 후자를 선택하는 인간인 것이다.

맞춤형 화장품이 대세라는 점은 팩트다. 2020년 3월부터 맞춤형 화장품 판매업 제도가 시행되면 국내 매장에서도 화장품을 소분하거나 혼합해 구입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뷰티 카운터에서는 연일 텍스처 칵테일 쇼가 벌어지고 힙한 디자인의 화장품 셰이커가 넘쳐날 것이다. 각종 기관에서는 ‘맞춤형 화장품 상담 전문가’ 자격증 취득반이 개설되겠지. 물론 가장 확실한 것은 우리의 피부 관리에 큰 도움이 될 거란 사실이다. 단, 4차산업이 낳은 뷰티 총아, 떠먹여주는 우쭈쭈 케어, 맞춤 화장품의 시대에는 과학을 이해하는 지능지수와 자신의 뷰티를 꾸려나갈 뷰티지수를 동시에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판단을 유보한 예스맨이 되고 나면 지금 맞춤 화장품들이 그토록 비웃는 ‘무조건 많이 바르는 호구’에서 ‘맞춤형 호구’로 자리를 옮기는 꼴밖에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