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83주년을 맞은 패션 브랜드 에르메스가 새로운 뷰티 라인을 선보인다. 1951년 에르메스 퍼퓸으로 뷰티계에 첫발을 내디디며 ‘오드 에르메스’를 출시한 이후 약 70년 만에 뷰티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지난 2월 5일 에르메스의 본고장 파리에서 에르메스의 열 여섯 번째 메띠에, 에르메스 뷰티의 ‘루즈 에르메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요 행사에 앞서 에르메스 아티스틱 디렉터 피에르 알렉시 뒤마의 진행으로 에르메스 뷰티의 철학과 이론적 바탕을 소개하는 대담을 나누었다. 에르메스의 창업자 티에리 에르메스는 말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마구를 제작하며 브랜드를 론칭했다.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아 에르메스 뷰티 역시 여성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할 뷰티 오브제를 만들고자 했다. “루즈 에르메스는 단순히 입술에 바르는 용도와 기능을 넘어 본연의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오브제예요. 컬러와 소재, 오브제, 제스처 등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여성에게 최고의 아름다움을 선사하죠.” 피에르 알렉시 뒤마의 설명이다. 루즈 에르메스의 가치를 한층 빛내줄 케이스를 제작하기 위해 슈즈 &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르 아르디가 나섰다. 유광 화이트와 블랙의 조화, 여기에 골드 메탈 소재를 더한 현대적인 디자인은 주얼리를 연상하게 한다. 그리고 오목하게 파인 케이스 상단에 누군가 발자국을 남긴 듯 엑스리브리스가 새겨졌다. “에르메스 도장 로고 엑스리브리스는 미적 전통에 뿌리를 둔 에르메스 하우스를 상징해요. 에르메스 뷰티 역시 이러한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피에르 아르디의 말이다. 간편한 마그네틱 케이스로 뚜껑을 닫는 순간 ‘딸깍’하고 자동으로 닫히는 아름다운 제스처도 놓치지 않았다.

에르메스는 가방과 각종 액세서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9백여 가지 가죽 색조와 실크 액세서리를 위한 7만 5천여 가지 컬러 샘플을 보유하고 있다. 이토록 풍부한 색감 중 우아함이 돋보이는 대담한 레드 컬러를 포함해 핑크, 오렌지, 누드와 버건디 등 총 24가지 색상의 립스틱을 선보인다(‛24’라는 숫자는 파리 포부르 생토노레에 위치한 에르메스 부티크의 번지수로 에르메스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포뮬러는 단 한 번의 제스처로 완벽하게 발색하는 매트와 밝고 선명한 컬러를 선사하는 새틴 두 가지로 구성했다. 피에르 아르디는 피니시에 따라 립스틱 모양도 다르게 제작하는 위트를 발휘했다. 부드럽게 발리는 새틴 피니시는 둥근 모양으로, 입술 선까지 살리는 정교함이 필요한 매트 피니시는 뾰족한 모양으로 완성됐다. 에르메스 뷰티는 24종의 루즈 에르메스 외에 입술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립 케어 밤, 유니버설 립 펜슬, 포피 립 샤인, 립 브러시도 함께 선보인다. 매력적인 립스틱 컬러가 24가지뿐이라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시즌마다 새로운 컬러의 리미티드 에디션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2020년 봄·여름에는 지중해의 빛깔을 담은 부드러운 산호 핑크, 정열적인 매트 핑크, 황홀한 플럼 바이올렛의 세 가지 컬러를 출시하고, 케이스 역시 화이트와 블랙, 골드가 어우러진 모던한 컬러 대신 알록달록한 컬러 블록으로 소장가치를 높였다.

에르메스는 최근 패션, 뷰티계의 큰 화두로 떠오른 ‘지속 가능성’을 염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플라스틱 사용을 최소화 하기 위해 루즈 에르메스를 리필 교체형으로 제작하고 하나의 케이스에 다양한 컬러의 리필형 립스틱으로 바꿔가며 사용하도록 했다.

각 디렉터들이 참여한 대담이 끝나고 이어진 론칭 파티에서는 에르메스 뷰티가 지향하는 네 가지 요소인 컬러와 소재, 오브제, 제스처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펼쳐졌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소재와 제스처를 표현한 공간. 루즈 에르메스의 다양한 소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공간에서는 순백의 벽 앞에서 모델이 다양한 빛깔의 레드 컬러 의상을 갈아입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는데, 모델들의 움직임 속에서 유영하듯 변하는 컬러들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제스처 존에서는 강렬한 레드 컬러 무용복을 입은 4명의 무용수가 여성이 입술에 루즈 에르메스를 바르는 동작을 무용으로 표현했다.

에르메스 뷰티의 행사를 즐기는 동안 에르메스가 얼마나 장인정신을 중시하고 문화, 예술 전반에 조예가 깊은 브랜드인지 감지할 수 있었다. 립스틱 컬러 하나 허투루 만들지 않고 작은 것 하나까지 신경 쓴 그들의 세심함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어렵게 만들었지만 그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모든 여성이 에르메스 뷰티와 함께 아름다워지는 것. 완연한 봄, 루즈 에르메스를 손에 들고 우아한 제스처와 함께 아름다운 입술을 뽐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