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혁

블랙 셔츠 하이더 아크만 바이 10 꼬르소 꼬모 (Haider Ackermann by 10 Corso Como) 팬츠 앤 드뮐미스터 바이 10 꼬르소 꼬모 (Ann Demeulemeester by 10 Corso Como) 팔찌 구찌(Gucci)

이수혁은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1월부터 OCN에서 방영되는 <동네의 영웅> 촬영이 한창이다. <동네의 영웅>에서 그는 경찰 시험만 5년째 준비 중인 ‘최찬규’를 연기한다. 몸은 날아다니는데 시험에서는 매번 낙방하는 청년. 그런 그가 전직 ‘요원’의 훈련을 받으며 동네의 잉여에서 동네의 영웅으로 거듭난다는 스토리다. 이전보다 좀 더 밝고 가벼운 동네 청년이 된 이수혁은 머리 색깔을 바꾸고 <마리끌레르> 화보 촬영장을 찾았다. 그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스태프들이 그의 헤어스타일을 두고 잠시 수다가 시작됐다. “왜 그 바가지 스타일 있잖아. 앞머리 일자였던 거. 난 그 스타일이 참 좋았어.” “그래, 그땐 지금보다 한참 더 말랐었잖아.” 스마트폰이 없었으니 화보 촬영장에 가기 위해 전화로 길을 물어물어 찾아가던 시절이었고, 해외 컬렉션 무대에 서기 위해 영어도 잘 못하면서 지하철역에 쭈그리고 앉아 지도를 그려가며 동선을 연구하던 시절이었다. 그 이후로 꽤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이제 소년이라기보다는 남자의 나이에 가까워졌고, 우리도 화면 속의 이수혁에 많이 익숙해졌다. 그의 변화가 느껴진 건 아마도 드라마 <일리있는 사랑> 때부터였을 것이다. 우리는 남편이 있는 여자와 사랑에 빠진 ‘김목수’에 설레었다. 그리고 <고교처세왕>과 <밤을 걷는 선비>까지 그는 부쩍 잰걸음으로 필모그래피를 채우는 중이다. ‘요즘 탄력받은 거 아니냐’는 질문에 탄력받은 것 같기도 하고 흥미도 생겼고, 그리고 사실은 서툰 시절 드러낸 부족함을 어서 부수어야겠다는 위기감 때문에 더 빨리 많은 작품을 하고 싶다고 답하는 그다. 이수혁이 달라진 건 머리 색깔만이 아니다. 이 남자의 온도도 달라졌다.

이수혁

블랙 셔츠 하이더 아크만 바이 10 꼬르소 꼬모(Haider Ackermann by 10 Corso Como)
팬츠 앤 드뮐미스터 바이 10 꼬르소 꼬모(Ann Demeulemeester by 10 Corso Como), 팔찌와 반지 모두 구찌(Gucci)

이수혁

니트 스웨터 릭 오웬스 바이 10 꼬르소 꼬모(Rick Owens by 10 Corso Como)

이수혁

니트 스웨터와 팬츠 모두 다미르 도마 바이 무이(Damir Doma by M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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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스웨터 발맹 바이 10 꼬르소 꼬모(Balmain by 10 Corso Como)
팬츠 앤 드뮐미스터 바이 10 꼬르소 꼬모(Ann Demeulemeester by 10 Corso Como)

 

동네 청년, 우리에게 익숙한 이수혁과 많이 다른 모습이겠다. 이전에 연기한 역할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좀 더 힘이 빠진 캐릭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예전부터 있었는데 쉽진 않았다. 모델 활동할 때의 이미지 때문이겠지. <고교처세왕>과 <일리있는 사랑>을 찍으면서 좀 더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드디어 많이 편해진 캐릭터를 만났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수혁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신비롭고 진지하고 그런 모습이다. 오해일까? 많은 사람이 이수혁이란 사람은 정적이고 집에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그냥 보통의 편한 사람이다. 레고 블록 조립처럼 보통의 또래 남자들과 비슷한 취미를 가지고 있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다. <동네의 영웅>의 찬규처럼 좀 더 편하고 익숙한 남자를 연기하게 돼서 좋다. 요즘 들어 부쩍 다양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욕심이 이전보다 더 많아진 건가? 20대 초반에는 일을 많이 가려서 했다. 그때는 매니지먼트 없이 혼자 일을 했다. 꽤 오랜 시간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혼자 해왔고, 그래서 스스로 내 이미지를 잘 만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좀 달라졌다. 좀 더 많이 보여주고 싶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도 생긴 것 같다. 마음이 급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그때가 더 자유로웠겠다. 물론 자유로웠지. 취향도 확실했고. 대신 나이가 들면서 취향의 폭이 넓어졌다. 과거에는 알고 있는 게 ‘요만큼’이라서 딱 거기에서만 내 취향을 찾았다면 이제는 아는 것도 좀 많아지고 나라는 배우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의 폭도 넓어진 것 같다.

그렇게 자유롭고 취향이 확실했던 그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겠지. 후회하는 성격이 아니라 그때가 그립지는 않다. 하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해외에서 혼자 일을 할 때도 되게 재미있었다. 영어도 안 되면서 부딪혔던 그때를 떠올리면 도대체 무슨 용기로 그랬는지 믿기지 않는다. 아마 어렸기에 할 수 있었겠지. 그러고 보면 참 사랑받으며 모델 일을 했다.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는 내가 얼마나 부족한 게 많은지 알게 됐다.

배우로서 활동하면서 좌절한 순간이 있었나? 좌절이라기보다는 한계에 부딪혔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그 간절함에 비해 과연 내가 배우로서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나 확신이 들지 않았다. 배우로서 대중 앞에 나서기 전에 공부도 더 많이 하고 연기 연습도 했어야 했다는 생각에서 놓여나지 못했다. 그래서 <상어>가 끝나고 1년 정도 작품을 하지 않았다. 운동하면서 몸도 키우고 살도 찌우고 연기 수업도 하고 그렇게 변화의 시기를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를 먼저 변화시키고 제대로 연기를 시작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랬더라면 부족한 모습을 좀 덜 보여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미처 준비되지 않았을 때 보여준 모습을 어서 빨리 부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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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와 팬츠 모두 다미르 도마 바이 무이(Damir Doma by MUE).

 

1월호를 위한 인터뷰다. 그래서 ‘처음’에 대한 질문을 하려고 한다. 기억나는 생애 첫 눈물은? 아, 진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거의 안 운다. 슬픈 영화를 봐도 슬프다는 감정만 느낄 뿐 울지는 않으니까. 아마 어릴 때 내가 사고 싶은 걸 엄마가 안 사준다고 울었겠지.

내 인생 첫 실패는? 열일곱 살에 모델로 데뷔하고 운 좋게도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렇게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에서 파리 컬렉션 무대에 서보겠노라고 파리로 갔다. 캐스팅되기 위해 한 달 넘게 돌아다녔는데 단 한 건도 성사되지 않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전체 컬렉션을 통틀어 동양인은 중국인 모델 딱 한 명이던 시절이다. 정말 케밥만 먹다가 돌아왔다. 어릴 때는 그 일이 너무 충격이었다. 아마 그때 잘되었더라면 배우를 지금보다 좀 늦게 시작했을 것이다. 원래는 파리에서 모델 활동을 좀 더 하다가 연기 공부도 제대로 해서 데뷔하려고 했다.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도 파리 컬렉션에서 시작도 못해보고 끝난 게 두고두고 아쉬웠다. 그래서 1년간 작품을 쉬던 시기에 다시 컬렉션 무대에 서기 위해 파리로 갔다.

배우를 하다가 다시 해외 컬렉션 쇼에 서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맞다. 게다가 나처럼 모델의 이미지가 강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 이미지는 배우로서 독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자꾸 모델로서 뭔가 마무리가 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2014년 1월 1일에 혼자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갔다. 가기 전에 걱정도 많이 했다. ‘아, 배우 하다가 쇼에 서보겠다고 가는데 이번에도 무대에 서보지 못하고 돌아오면 어쩌지 하며 말이다. 그래도 다행히 발렌시아가, 발맹, 준지 등 대여섯 개 쇼에 설 수 있었다.

첫 일탈은 뭐였나? 음…, 글쎄.

술은 잘 마시나? 잘 마시긴 하는데 자주 마시지는 않는다. 많이 마시면 다음 날 계획이 다 무너져버리니까.

원래 계획한 스케줄 대로 사는 걸 좋아하나? 원래 전혀 그러지 않았다. ‘나는 되게 자유로운 영혼이고 그렇게 감성을 키워야 하고 어디에 가서 연기 수업을 받기보다는 영화를 많이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웃음) 지금은 스케줄이 바빠져서 계획대로 사는 게 좋다.

2015년 마지막 날에는 뭐 할 건가? 예전에는 그런 기념일을 꼬박꼬박 챙겼다. 연말, 생일, 크리스마스 다 챙겼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과거에는 내가 꿈속에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릴 때부터 꿈꾸던 모델이 되고 배우가 된 현실이 마치 꿈꾸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봐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그런데 이제는 현실을 사는 느낌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기쁘다는 생각만 하기보다는 내가 배우로서 갖춰진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살아가다 보니 기념일 같은 건 잘 안 챙기게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