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인터뷰

트렌치코트 노앙(Nohant), 이어 커프 (Jinn).

거미의 노래는 요즘 음원 사이트에서 늘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와 <구르미 그린 달빛>이 인기를 끌며 거미가 부른 OST도 함께 사랑받았고, 음악 프로그램에서 그녀가 노래를 부르면 다시 상위권에 오른다. 거미가 노래를 얼마나 잘하는지, 무대 위 그녀가 얼마나 거침없고 뜨거운지, 이 시대 여성 솔로 가수로서 그녀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음색 깡패’, ‘OST의 여왕’ 같은 수식어는 이제 특별할 것도 없다. 14년간 한눈 한번 팔지 않고 수련하듯 음악을 해왔고, 어느 날 갑자기 스타가 된 것도 아니며, 하루하루 사람들에게 진심을 진솔하게 전하며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고, 그렇게 지금의 거미가 되었다. 더할 것이 없어 보이는 그녀는 여전히 배우고 싶은 기술이 있고, 담고 싶은 감정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거미 마리끌레르

러플 장식 더블 버튼 원피스 럭키슈에뜨(Lucky Chouette), 안에 입은 슬리브리스 니트 톱 세컨플로어(2nd Floor).

<슈퍼스타K 2016>에서 흥 넘치는 심사위원으로 나온다.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뜨거운 아마추어들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니 에너지를 얻는 시간일 것 같다. 그간 가끔 심사위원이나 교수를 제안받았었다. 그런데 선뜻 응할 수 없었던 건 자신이 가진 재능이나 처한 상황을 생각하지 않은 채 꿈만 가진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무작정 연예인이 되고 싶어 가수가 되려는 친구들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게 될까봐 심사위원이나 교수직을 고사해왔다. 물론 이번 슈스케에도 단순히 재미로 나온 사람이나 나오지 말아야 하는데 나온 지원자가 간간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이 절실한 마음으로 나온 지원자라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은 지원자들의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선배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어떤 선배이고 싶나? 진심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돕고, 문제점이 있으면 정확히 짚어주려고 했다. 현실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고 싶었다. 지원자 모두가 매번 합격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앞으로도 계속 음악을 할 생각이라면 그들에게 맞는 길을 제시해야 하니까.

10년 넘게 노래를 불러왔다. 그동안 위기도 있었겠지. 데뷔하자마자 성대결절이 왔다. 그래서 1년 가까이 활동을 할 수 없었고 그만큼 힘든 시절이었다. 수술하면 목소리가 변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수술도 받지 않은 채 훈련으로 이겨냈다. 아, 그런데 차라리 수술을 하고 충분히 쉬는 게 나았을 뻔했다.(웃음) 주변에 성대결절이 온 친구들이 꽤 있는데 수술해도 다들 괜찮더라. 가끔 성대결절로 고민하는 후배들을 보면 고민하지 말고 빨리 수술하고 많이 쉬라고 권한다. 어쨌든 그 시기를 보내고 힘든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한 3년 전쯤 큰 고비가 왔다. 음악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노래하는 게 즐겁지 않았다. 여러 상황이 조금씩 쌓인 것 같다. 달라진 음악 시장 환경의 영향도 있었다. 내가 데뷔할 때만 하더라도 많은 분들이 CD를 들었고 한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이 사랑받기도 했다. 그런데 음악 시장에서 음악이 점점 빨리 소비되다 보니 음악을 너무 가볍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부른 모든 곡을 사랑해달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존중받고 싶었다. 그런 시장의 변화가 경제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치다 보니 과연 내가 음악을 계속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미 화보

스팽글 장식 보디수트, 낙낙한 실루엣의 오버사이즈 코트 모두 막스마라(MaxMara).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나? 사람들 덕분에 치유했다. 나보다 어려운 환경에서 좋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위안을 얻었다. 그러다 그냥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상황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그 시간을 보냈다.

음악 시장이 변했어도 뮤지션으로서 포기하고 싶지 않은 가치관이 있을 것 같다. 혼자 좋아하는 음악이 아니라 항상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 나 자신이 좋아하며 부르는 것도 좋지만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을 우선시되 나를 버리고 싶지는 않다. 가령 내가 갑자기 유행을 좇아 댄스 음악이나 록 음악을 한다면 화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내게 어울리는 옷을 입은 건 아닐 것이다. 내게 어울리는 테두리 안에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

거미는 누가 뭐래도 노래를 잘한다. 그럼에도 더 잘하고 싶은 게 있나? 무엇이건 완성이란 건 없다. 특히 예술의 영역은 더 그렇다. 물론 나만의 스타일이 생겼고 기술도 많이 연마하긴 했지만 모든 기술을 지금 다 해내고 있는 건 아니다. 몇 년에 걸쳐 기술 하나가 는다면 그 또한 기쁜 일이다. 물론 지금도 더 잘하고 싶은 게 많다. 기술적인 면도 그렇고 감성적인 면도 마찬가지다. 내 성향이나 성격에 따라 음악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나를 둘러싼 상황이 바뀌면 음악이 달라지는데 어떤 상황에서든 예술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거미 슈퍼스타K

끈으로 여미는 카디건 쟈니 헤잇 재즈(Johnny Hates Jazz), 독특하게 절개된 모직 스커트 로우클래식(Low Classic).

지금 거미를 둘러싼 상황은 어떤가? 감사하다. 주변 사람들이 목이 괜찮으냐고 걱정할 만큼 노래할 일이 많다. 다행히 몸이 잘 견뎌주고 있다. 정신적으로 많이 건강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예전에는 자신 없는 순간이나 부담 될 때도 많아서 그런 부분이 목 상태로 드러나기도 했다. 공연을 다니다 보면 공연장이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으로 채워지는 건 아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때도 많은데, 모든 상황을 뒤로하고 공연이 끝날 때쯤 관객의 표정이 좋아지고 박수를 받을 때면 힘이 난다. 그럴 때면 3년 전 힘들었던 시절이 부끄러울 만큼 지금이 감사하다.

전국 투어 공연을 시작했다. 좋은 공연을 위해서는 체력 관리도 중요할 것 같다. 운동을 빼먹지 않는다. 지방에 행사를 하러 가면 오전에 등산을 하기도 하고 콘서트가 있을 때는 꼭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숙소에 피트니스 센터가 없으면 동네를 산책하거나 조깅을 한다. 요즘에는 잠도 잘 자는 편이다. 예전에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잠이 안 와서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잠을 청했다. 음악을 들으면서는 못 잔다. 음악을 틀면 잠이 오는 게 아니라 자꾸 음악을 듣게 된다. 요즘엔 불도 끄고 명상하듯이 누워 있다 보면 잠이 온다.

이번 공연에서 디제잉도 한다고 들었다. 거미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그런 건 아니다. 재미있고 즐거운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나의 한 부분만 보여주기보다는 ‘저 이런 것도 좋아해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하고 묻고 싶은 거다. 최대한 많은 관객을 만족시키고 싶어 매번 고민한다. 무대에 오르면 문득 신기할 때가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내 노래를 들으러 와주다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관객이 노래에 담긴 감정에 공감하고 신나는 노래를 들을 때는 다 내려놓고 놀 수 있으면 좋겠다. 콘서트에서 하는 내 모든 말과 행동에 진솔함을 담으려고 한다. 내가 요즘 어떤 느낌으로 살고 있는지, 공연장을 채운 관객은 어떤 감정으로 살아가는지 서로의 진심을 나누고 싶다.

 

거미 인터뷰

블랙 슬리브리스 드레스 럭키슈에뜨(Lucky Chouette), 낙낙한 실루엣의 트렌치코트 노앙(Nohant), 구조적인 디자인의 골드 이어 커프, 사각 프레임의 이어 커프 모두 (Jinn).

오늘 인터뷰를 하며 가장 의외라고 느낀 건 ‘거미’라는 이름이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다.(웃음) 감성도, 감정도 굉장히 센 사람일 줄 알았는데 밝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 같다. 언젠가 양현석 사장님이 이름을 바꾸자고 한 적이 있긴 하다.(웃음) 거미줄에 곤충이 걸리면 못 빠져나오지 않나. 사람들을 내 음악에 빠지게 하겠다는 포부와 신비로운 느낌을 담은 이름이다.

인생 음악 같은 게 있나? 내 인생의 음악은 어릴 때 엄마가 듣고 불러준 노래다. 어릴 때 시골에 살다가 초등학교 3학년 무렵에 서울에 올라왔는데, 그때 피아노를 배웠다. 노래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엄마가 불러주는 노래가 좋았다. 엄마가 김추자 선생님의 ‘님은 먼곳에’나 임희숙 선생님의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를 좋아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음악들이 결국은 한국의 소울 음악인 것 같다.

 

거미 화보

실키한 그레이 롱 드레스 캘빈 클라인 플래티늄(Calvin Klein Platinum).

원래 피아노를 전공하려고 했었는지 몰랐다. 대학에서도 피아노를 전공하려고 했다.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하기는 했는데 이상하게 피아노 연주를 위해 무대에 서면 항상 떨렸고, 노래를 하려고 무대 오르면 떨리지 않았다. 지금처럼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았더라면 아마 나도 참가했을 것 같다. 피아노 연주회를 할 때도 연주회가 끝나면 선생님이 내게 노래를 잘한다며 불러보라고 했었다. 노래는 내 운명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노래 때문에 힘든 적은 있지만 노래가 나를 배신한 적은 없다. 원래 예술 하는 사람들은 같은 힘든 상황이어도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어떨 때는 ‘도대체 노래를 얼마나 더 잘하게 하려고 이렇게 힘들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웃음)

드라마 OST와 피처링으로 신곡을 많이 선보이긴 했지만 새 앨범 소식은 뜸했다. 정규 앨범이나 미니 앨범을 내고 싶은데 고민이 많다. 좋은 앨범을 잘 만들어 오래 기억되지는 못하더라도 시간이 흐른 다음 들어도 좋은 노래를 담고 싶다. 지금까지 사랑과 이별에 관한 노래가 많았다면 이제는 인생 얘기를 담은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다. 가족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요즘은 혼자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노래로 채우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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