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진

수트 암위(Am. We), 화이트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드라마 <도깨비>를 끝내고 영화 <남한산성>과 <형제는 용감했다> 촬영장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조우진은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주기 훨씬 전부터 배우의 길을 걸어왔다. 연극과 영화 현장에서 느린 속도로 필모그래피를 채우던 이전과 두세 작품을 동시에 작업하게 된 지금을 비교해보면, 그를 둘러싼 공기만 바뀌었을 뿐 그 안의 조우진은 달라진 것이 없다. “현장에 있는 순간이 가장 행복해요. 요즘 들어 좀 쉬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현장에서 쉬고 현장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그러는 것 같아요.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 온갖 걱정과 스트레스가 사라져요. 마치 마법 같은 순간이죠.”

<도깨비>는 끝났지만 여전히 쉬지 않고 촬영 중이다. 지금은 <남한산성>과 <형제는 용감했다>를 찍고 있고, 곧 <강철비> 촬영에 들어간다.

동시에 두 개의 작품을 하는 것이 쉽지 않겠다. 또 다른 도전이 되겠지. 작년에도 <리얼>과 <더 킹> <원라인>까지 세 작품을 동시에 했다. 과연 괜찮을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지난해와 올해 내 각오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더라. 주어진 대로 뭐든 열심히 한번 해보자는 각오로 임했고 올해도 마찬가지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감정의 밸런스를 맞춘다고 생각한다. 악기에 비유하자면 이런 거다. 이 곡에서는 바이올린을 팽팽하고 격렬하게 연주하고 저 곡을 연주할 때는 소곡을 연주하듯 듣는 사람이 편안한 감정을 느끼도록 연주하는 거다. 지금껏 한 우물만을 파며 살아왔고 이제야 그동안 들어오지 않았던 많은 양의 물이 들어왔으니 노를 열심히 젓는 중이다.

많은 일을 하다 보면 일을 잘하는 것을 넘어 쳐내기도 벅찰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음, 물론 몸은 피곤하다. 그런데 연기가 업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고민을 할 여유조차 없다. 어떤 작품이 주어졌으니 그 작품에서 내가 맡은 캐릭터가 얼마큼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연구하고 생각하기에도 바쁘다. 고민할 새 없이 바쁜 지금 이 순간이 솔직히 행복하다.

연기를 시작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이름을 알린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이 길에 확신이나 신념이 없었다면 지금에 도달하지 못했을 텐데. 여전히 내가 왜 태어났고,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또 내가 사는 이곳이 어떤 세상인지 답을 찾는 중이다. 삶은 결국 그런 것들에 대한 탐구생활이다.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삶을 살면서 이 세상에서 조우진이란 사람은 어떤 인간인지 알아보고 싶어 배우의 길을 선택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배우라는 직업은 어떤 일인지, 세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생의 끝자락에서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신념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삶은 결국 신념과 오기가 교차하는 것 같다. 신념을 다잡기 위한 욕구나 욕망이 다양한 인물을 만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배우로서 목표는 다양한 삶을 살며 되도록 많은 관객이 내 연기에 공감하게끔 하는 것이다. 그런 바람이 되도록 많은 작품을 만나고 싶은 욕망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무명의 시간이 힘들지는 않았나?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다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그런 걱정과 고민이 차고 넘쳤다면 이 일을 그만뒀겠지. ‘언젠가 나는 될 것이다’라는 생각도 없었다. 다만 배우를 하며 평생 먹고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때 어둠의 세계에 버려진 아이처럼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복잡한 문제일수록 단순하게 생각하게 됐다. 배우의 길을 가보겠다고 생각했으니 한번 끝까지 밀어붙여보자고 마음먹었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연기를 하지 않고 다른 경제 활동을 해야 할 때였다. 일과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한 적도 있는데 결국 양쪽 다 집중을 못 하겠더라. 그래서 작품 하나가 끝나면 3~6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편의점, 주유소, 물류 창고에서도 일해봤고 아파트 경비로도 일했고 막노동을 하러 간 적도 있는데 다른 일을 알아보라고 하더라. 그렇다고 대단한 고생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작품에서 다양한 직업을 연기할 테고, 이런 식의 경험도 언젠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조우진

블루종 암위(Am. We), 화이트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시계 태크호이어(Tag Heuer), 안경 스페쿨룸(Speculum).

연극 무대가 그리울 때도 있나? 늘 동경한다. 무대에 서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이 있다. 슬프다, 행복하다, 즐겁다, 노엽다 등의 여러 감정을 내가 만들면 그에 대한 반응이 동시에 온다. 늘 그리운 곳이다. 연극이든 영화든 본질은 같다. 공감을 어떻게 끌어내느냐는 숙제를 푸는 거다. 무대에서 그 숙제를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배우는 감정의 소모가 많은 직업이다. 많은 작품을 하다 보면 지나치게 많은 감정이 소모될 것 같다. 소모된다기보다는 소비된다고 생각한다. 소모라는 단어는 어쩐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쓰게 된다는 느낌이 든다. 그게 아니라 내 감정을 쓰는 거다. 작년에 <보안관>과 <38 사기동대>를 같이 하는데 열흘 정도 촬영이 겹쳤다. 그 겹치는 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 잔 시간이 7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어떤 날은 지방으로 이동해야 했는데 시간이 촉박해 KTX로 움직였다. 피곤한 와중에 바깥 풍경을 잠깐 바라보는데 행복하더라. 그 전에는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구해야 할지,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 걱정이 더 많았는데 이제는 작품에 참여하는 시간이 이토록 많아진 거다.

좋은 배우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하나? 답을 여전히 찾고 있지만 그 질문을 많이 하진 않는다. 그런 질문을 할 시간에 작품 속 내 임무와 역할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한다. 나이가 들고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다 보면 그 안에서 좋은 배우에 대한 답을 찾게 되겠지. 내가 연기한 인물과 성격을 카드로 펼쳐 보면 전체가 보이지 않겠나. 그러려면 그 카드가 많아야 한다. 아직 그 대답을 찾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인물을 만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좋은 배우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늘 평행선상에 있다.

책을 매우 많이 읽는다고 들었다. 연기자는 텍스트를 통해 인물을 분석하고 연구한다. 텍스트를 많이 접해야 작품을 읽어내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책을 많이 읽기보다는 늘 옆에 두려고 한다. 어쩌다 생긴 버릇이다. 한 권씩 차례로 읽지 않고 두 권 정도를 동시에 읽는다. 요즘은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을 읽고 있다. 진하고 독한 소설을 좋아한다. 정유정 작가의 소설은 워낙 진해 읽다가 힘들어서 중간에 잡지나 에세이를 읽곤 한다. 김훈 작가의 소설은 술 마시면서 읽는다. <현의 노래>를 읽고 있으면 진짜 가야금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어떻게 모든 사물을 그렇게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는 걸까. 말이 나온 김에 얘기하자면, 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 전면 창이 있는 공간에서 정유정 작가의 소설을 한번 읽어보라. 마치 <인셉션>처럼 몇 간계의 꿈을 꾸듯 감정이 침몰하는 느낌이 들 거다.

촬영을 마친 작품과 곧 촬영에 들어가는 작품을 보고 있으면 올해를 대표하는 한국 영화 라인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의 특별한 목표가 있나? 미래의 계획은 잘 하지 않는다. 바람이 있다면 1년이 지난 후에도 이런 모습과 각오를 가지고 주어진 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으면 좋겠다. 현장에서 행복하게 연기하고, 신념이 흔들리지 않도록 내 삶을 잘 다져가며. 주변의 칭찬을 감사한 마음으로 품되 충언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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