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 올세인츠(All Saints), 티셔츠와 팬츠,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 캘빈 클라인 진(Calvin Klein Jeans), 스웨트셔츠 스톤아일랜드(Stone Island), 버킷 햇 캉골(Kangol).

셔츠 올세인츠(All Saints), 티셔츠와 팬츠,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묵직한 목소리로 붐뱁 비트를 타고 우직하게 랩을 하던 이로한. 그의 꾸밈없으면서도 매력적인 모습은 뜨거운 환호와 함께 <고등래퍼 2>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꽤 터프한 10대 소년에서 지나온 삶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래퍼가 되기까지 이로한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언어만으로 소통해왔다. 꿈 같은 거품이 어느 정도 가신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진 것만큼만 보여주고 뒤통수는 치지 않는다.

<고등래퍼 2>에 처음 나왔을 때가 기억나요. 지금은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네요? 스타일을 의도적으로 바꿨다기보다 촬영할 때 준비해주는 옷이 대부분 트렌디한 느낌이더라고요. 방송 2회 차까지 제가 늘 입던 대로 입고 나왔는데 지금도 평소에는 그렇게 입어요. 통 큰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파이널 무대에서 ‘이로한’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불렀죠. 프로그램은 끝나지만 나는 이제 시작한다고 말하는 듯했어요. 말 그대로 이제 시작이죠. 방송에 나오기 전에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큰 성과가 없었고 스스로도 아마추어 같다고 느꼈는데 방송을 하면서 실력이 비약적으로 늘었어요. 아직 덜 여문 것 같지만 온갖 조명을 받으며 이제 시작하는 느낌이에요. 방송은 더 높은 곳에 가기 위한 사다리 정도죠. <고등래퍼 2> 출연 당시 지원 동기에도 ‘나를 알리고 싶어서’라고 썼고, 방송을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이용해보자고 생각했는데 그게 상상 이상이었을 뿐이에요.

랩을 언제 시작했어요? 랩을 시작한 계기와 힙합을 듣게 된 계기가 달라요.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요 프로그램에서 드렁큰 타이거의 ‘몬스터’라는 곡을 들었는데 같은 말을 반복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발라버려’ 같은. 궁금해서 찾아보니까 그런 게 라임이라고 하더라고요. 조금씩 찾아가다가 흥미가 생겼어요. 그때부터 힙합을 찾아 듣기 시작했죠. 듣다 보니 나도 이렇게 가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1 때였죠. 항상 방송과 음원 차트에 있는 랩만 듣다가 어느 날 유명하지 않은 래퍼들의 랩을 들었는데 그게 훨씬 멋있더라고요. 쓰는 단어나 문장 구조와 배열 같은 것들이요. 그걸 따라 해보고 싶었어요. 일단 원래 있는 곡의 문장 배치는 그대로 두되 단어만 조금씩 바꿔서 개사하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그다음으로 비트를 타는 방법을 연구하고 가사 내용을 전부 직접 쓰기 시작했죠. 랩을 제대로 하기 시작한 건 고1 때예요. 원래 있던 곡의 비트에 랩을 하는 게 아니라 유튜브에 있던 타입 비트(유명 래퍼와 스타일이 비슷한 비트로, 무료로 듣고 쓸 수 있는 아마추어의 비트)를 찾아서 그에 맞는 가사 를 쓰면서 시작했어요.

그러다 키프클랜을 만난 거군요. 맞아요. 그때 전 뚜렷이 하는 작업 없이 공연만 많이 다녔어요. 강릉의 청소년 수련관에서 고등학생들을 무대에 많이 세워줬죠. 그 무대에서 몹 딥(Mobb Deep)의 ‘Shook Ones, Pt.II’라는 비트에 가사를 붙여 공연했고, 그 광경을 페이스북의 랩 작업물을 올리는 페이지에 업로드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그 영상을 본 (이)병재에게서 연락이 왔죠. 처음에는 좀 고민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현실적인 랩 실력과 제가 즐겨 듣는 음악 사이의 갭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저도 그 친구들도 다 수준 미달이라고만 여겼는데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고등학생이기도 하고. 게다가 저는 그중 몇몇이 어떤 작업물을 만들었는지 알고 있었어요. 같이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2016년 9월쯤 팀에 들어갔어요.

한 마디로 정의하긴 힘들어도 키프클랜 친구들이 다 함께 추구하는 가치관 같은 것이 있나요? 키프클랜이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을 정의 내린 적은 없어요. 단체로 규정하기보다는 개개인이 모여서 단체를 대표하게 되는 것 같아요. 키프클랜 하면 딱 떠오르는 게 한 단어가 아니라 이병재, 김하온, 이로한 등이잖아요. 그런 느낌인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들만 떠올려봐도 색깔이 전부 다르네요. 그렇죠. 어떤 컨셉트를 정하고 그게 우리의 이념이라고 정의 내린 후 단체를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자가 하는 음악이 곧 키프클랜을 대표하는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왜 올드 스쿨에 빠졌어요? 제가 처음 들은 힙합인 ‘몬스터’가 붐뱁 리듬의 곡이라 그런지 그런 곡만 들었어요. 힙합을 처음 들었을 때는 트랩이라는 장르가 미국에서만 유행했거든요. 몇 년 후에 한국에도 트랩이 들어와서 ‘연결고리’ 같은 곡이 나오기 시작했죠. 중독성은 있는데 저는 크게 신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쭉 들어온 음악이 있어서인지, 제가 만약 그런 스타일로 음악을 한다면 잘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클래식이 오히려 듣기 좋았어요. 빌보드 차트에 반짝 오르거나 당시를 주름잡았던 원히트 원더 앨범 같은 건 귀에 잘 안 들어왔어요. 올드 스쿨 힙합을 들을수록 오래 사랑받는 음악이 왜 오래 사랑받는지 알게 됐고, 그럴수록 더 클래식 한 것을 찾게 되더라고요. 잘할 수 있는 게 이런 것밖에 없기도 하고요.

생각하는 멋에 대한 기준이 명확한 거죠. 네, 의도적으로 규정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좋아하는 것을 가려낼 수 있게 되어서 이제는 못을 박아놓은 것 같아요.

이로한이 쓰는 가사로 이로한을 판단해도 좋을까요? 네. 저는 거짓을 가사로 쓰지 않아요. 목표나 포부 정도는 적을 수 있어도 하지도 않은 것, 얻지도 않은 것은 절대 가사에 담지 않았어요. 제 또래 중에 간혹 돈 자랑, 차 자랑을 떠벌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없는데 있는 척하는 게 가장 리얼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최근 사무엘의 신곡 ‘틴에이저’에 피처링했죠. 가사를 보면 ‘내가 바라던 나는 절대 이런 것이 아닌데’라고 말해요. 유명해진 지 몇 달 됐죠. 어때요, 요즘? 우울증이 조금 있었어요. 사람들의 많은 관심에 적응하지 못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죠. 그리고 심장이 나빠져서 심장 약도 먹었어요. 아픈 데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컸어요. 그럴 때 곡 작업을 같이 하게 됐는데 마침 그 곡의 가사가 제 상황과 비슷하더라고요. 딱 들어맞는 느낌이 있어서 그런 가사를 쓰게 됐는데 그때는 정말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앞으로 편하게만 살 것 같았는데 너무 많은 관심과 참견 때문에 일상 생활이 무너지고, 밥을 먹으러 가서도 편하게 먹지 못하고 마스크 없이는 길을 걸을 수가 없고, 고향에 내려가도 툭하면 사람들에 둘러싸이니까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상황에 스트레스가 컸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했어요. 무관심해졌다고 해야 하나. 적당히 쳐낼 줄도 알고요.

시간이 필요한 문제겠죠. 사실 그 세대답게 갑자기 쏟아진 관심을 제법 즐긴다고도 생각했어요. 지금의 상태가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르죠. <고등래퍼 2>가 <쇼미더머니> 같은 프로그램보다 더 잘돼서 제가 생각했던 관심의 기준치를 훌쩍 넘어섰어요. 그 한계치를 넘어설 때마다 힘들었어요. 이제는 가라앉는 추세고, 제가 아직 공식적인 움직임을 보여준 게 없으니 다시 올라 갈 발판을 준비하고 있어요. 나름 자신도 있고요. 그래서 요즘은 여유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과 작업하면서 많이 성장하고 변화했을 텐데 최근 음악적인 측면에서 제일 신경 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다섯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좁은 방에서 답답하게 살아온 배연서, 이로한이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요. 우선 대한민국 법 시스템을 비판하고 싶어요. 친권 이전을 둘러싸고 많은 문제를 빚었거든요. 악용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란 건 물론 알아요. 하지만 이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이 꽤 많은 것으로 알거든요. 실제로 결승 무대가 끝나고 많은 분이 곡에 대한 감상평을 보내주셨는데 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분이 아주 많았어요. 그렇게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개선이 필요해요. 그리고 목적의식 없이 악플을 다는 사람들도 비판하고 싶어요. 꿀밤을 한 대 때려줄 수도 없고 너무 딱해요. 같이 활동하는 래퍼 중에서 치졸한 사람을 비판하는 곡도 생각 중이에요. 구상을 거의 마쳤고 나머지는 작업에 들어가서 구체적으로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감정이 오고 가서 그런지 할 이야기가 많이 쌓인 것 같아요. 방송에 나가기 전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는 데 그냥 담아두고 있었어요. 유명해졌을 때 앨범을 내서 그 안에 이 이야기들을 싣는 게 제일 멋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맞아요. 행보로 보여줘야죠. 10대의 마지막 여름이에요. 좀 아쉬운가요? 제 10대를 마냥 추억하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아요. 친구 관계가 나빴던 것도 아니고 열아홉에 방송에 나와서 일찍 자리를 잡은 것도 좋은데 제가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던 것 중에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게 많더라고요. 만약이란 없는 것이지만 만약 부모님이 음악 하는 것을, 자퇴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고 허락하고 지지해줬더라면 결과적으로 경연 프로그램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증명하기까지 조급하지 않았을 텐데. 가출하고 그렇게 힘들게 지내지도 않았을 텐데. 결국 뼈가 되고 살이 된 일들이지만 당시에는 억울했어요. 20대가 가장 즐거울 것 같아요. 밤에 PC방도 가고 싶고, 친한 형들이 클럽에 갔다 오면 너무 재밌다고 하는데 그런 문화도 겪어보고 싶고, 클럽에서 제 노래가 나온다는데 저는 가본 적이 없잖아요. 내년이면 ‘북’ 같은 노래는 사라질 텐데. 내년에도 멋있는 음악을 만들어서 클럽에서 제 노래가 나오면 좋겠어요.

스무 살이 된 이로한에게 기대되는 건 뭐예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남은 반년 동안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열아홉, 10대가 가기 전에 앨범을 내고 싶기도 하고 <쇼미더머니>에 나가고 싶기도 하고. 둘 다 시도해 좋은 성과를 낸다면 스무 살의 시작부터 많은 찬사를 받겠죠. 그게 로망입니다. 그 두 가지를 다 잡기 위해서 노력할 거예요. 앨범도 공들여 만들고 싶은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아요. ‘이로한’이라는 곡의 가사도 쓰는 데 한 시간 반 정도밖에 안 걸렸거든요. 녹음을 잘해서 어떻게 사람들이 듣기 좋게 만드는지가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요즘 발성을 바꾸고 있거든요. 이제까지는 소리를 먹으면서 뱉는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누르고 쭉 뱉는 걸 연습하고 있어요. 지금 말하는 것처럼요. 분위기나 무드는 바뀌지 않을 테니 조금 더 듣기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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