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나 소니아리키엘 마이클코어스 보이스2 OCN

화이트 재킷 소니아 리키엘(Sonia Rykiel), 안에 입은 톱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이 때로는 저주같다. 결과물이 나오는 시간보다 자신과 뒤척이는 시간이 오랠수록 더하다. 음악을 잠깐 접어두기로 했다고 말하는 이하나에게서 아프고 난 뒤의 개운함을 보았다. 만남의 명목은 8월 초에 방영하는 이하나의 새 드라마지만 쓴웃음을 지으며 때로는 꽤 긴 침묵 속에서 말을 골랐던, 음악을 생각할 때의 이하나가 외려 선명하게 남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이하나는 OCN 드라마 <보이스 2>에 모든 것을 걸었다. 복잡한 과제를 잠시 접어두고 어느 때보다도 건강한 에너지로 동료들과 진흙탕을 뒹굴며 생기를 고스란히 만끽한다. 사람으로 향하는 무엇에든 결국 끌리고만다는 이하나의 가로로 긴 눈을 떠올린다. 근래 본 적 없는 맑은 눈이었다.

이하나 포츠1961 폴앤앨리스 보이스2 OCN

수트 포츠 1961(Ports 1961), 안에 입은 톱 폴앤앨리스(Paul & Alice).

<보이스 2> 촬영이 한창이죠. 보이스 프로파일러 ‘강권주’는 절대 청각을 가진 캐릭터예요. 소리에 온 신경을 기울여야 하는 인물을 소화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확실히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권주는 112 신고 센터를 이끄는 대장인데 실제로는 그 안에서 제가 막내거든요. 리더십이 있기보다는 군중의 한 명으로 리더를 따라가는 성향인데 드라마 덕분에 제가 좀 성숙한 느낌이에요. 이번에는 좀 더 센터장다운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고 한 번 경험해봐서 그런지 제 옷을 입은 듯한 느낌도 들어요.

시즌 1에서는 사이코패스와 대적하는 장면이 화제가 됐었죠. 작가님이 범인이 불이라면 권주는 물이면 좋겠다고 했어요. 감정을 빼고 연기를 할 때 오히려 오케이가 나더라고요. 정말 강한 게 무엇인지 계속 고민해요. 범인에게 어떤 식으로든 져선 안 되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야 하니까 안 하던 고민을 하게 됐어요.

<보이스>에 출연하면서 이하나 개인의 내적인 변화가 많았나 봐요. <보이스>는 제가 자주 출연한 재미있고 유쾌한 드라마들과는 결이 다르죠. 그런데 본성은 어디 안 가는 것 같아요. 이번에도 장난을 많이 치고 재미있게 촬영하고 있어요.

이번 시즌에는 특히 우리 사회의 문제적 사건을 많이 다룰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촬영하면서 특히 몰입한 사건이 있다면요? 아동 성폭행범이 출소해서 피해자 가족들이 또다시 지옥을 경험하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굉장히 예민한 문제라 대본을 보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문제점을 잘 꼬집었고 우리가 어떻게 경각심을 가지고 대처해야 할지도 담은 것 같아 맘에 들었어요. 반전도 있고요.

사건 당시가 아니라 그 후의 일들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 같네요. <보이스 2>의 대본이 좋다고 칭찬을 많이 했는데 주로 어떤 부분에 끌려요? 그간 출연한 작품들이 뻔하지 않았고 그 이미지가 쌓여 이하나만의 느낌을 만들었죠. 사실 대본만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도 영화를 봐도 음식점에 가도 제가 좋아하는 결이 있더라고요. 책을 봐도요. 그 근본이 뭘까? 결국 저는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담긴 걸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 예민하지 않은 둥글둥글한 분들이 제일 부럽죠. 그런데 저는 유독 사람을 위하는 것에 자꾸 끌리고 또 추구하고 싶어요. 사람이든 노래든 그런 것을 만나면 위로를 받아요. 대본을 볼 때도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녹아있는 부분이, 장르를 떠나 제 마음을 열게 하는 것 같아요.

지금은 잠시 멈췄지만 ‘Granny’s Old Recipe’라는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독특해요. 팬들에게 자신을 ‘망구’라고 지칭하는 것도요. 하하. 그럴싸한 배경은 전혀 없어요. 팬들이 ‘하나’라는 이름에서 파생된 많은 별명을 붙여주셨는데 어느 날 ‘원(하나) 할머니 보쌈’ 간판의 할머니 얼굴에 제 얼굴을 넣어서 재미있는 스티커를 만들었더라고요. 그게 참 정겨웠어요. 얼토당토않은 이유도 좋았고요. 우리만의 재미있는 추억 같잖아요. 그런데 좀 더 대중적인 별명을 기다리고 있어요.(웃음)

팬들을 왜 ‘동지’라고 불러요? 와, 처음 말씀드리네요. 제가 가장 동경하는 뮤지션이 얼렌드 오여인데 그 친구는 늘 내게 ‘나도 너와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요. 세상은 무한대로 넓고 그만큼 대단한 사람도 많아서 그 생각을 하면 아득한 느낌이 들잖아요. 그 친구는 그렇게 크기만 한 세상을 작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에요. 예를 들어 카페에서 외국 뮤지션의 노래가 나오잖아요. 제게는 비현실적인 뮤지션이죠. 그런데 얼렌드 오여는 ‘내가 듣기에는 너도 이렇게 부를 수 있어’라고 말해줘요. 마치 내가 있는 세상이 전부인 것 같은 느낌이 들게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수록 나 자신을 존중하게 되더라고요. ‘내 생각이 맞을 수도 있어. 내가 잘하는 것일 수도 있어. 이게 대단한 것일 수도 있어.’ 이런 메시지를 많이 받았어요. 팬들은 저를 신기해하고 본인과 다른 사람처럼 느낄 수 있지만, 저도 팬들에게 한 가지라도 줄 수 있다면 이 느낌을 가장 주고 싶어요. 가장 동경하는 그 친구가 제게 눈높이를 맞춰준 것처럼요.

‘동지’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걸 즐기는 모습이 보였어요. 그런 통로를 잠깐 접어두는 게 서운하지는 않아요? 지금도 좀 울컥하네요. 팬들을 위해서 SNS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더 많은 위로를 받고 있었나 봐요. 좀 더 수면 위로 올라오기 위해 회사도 대중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곳을 택하고 보니 팬들을 제외한 다른 분이 제 SNS를 보면 자신이 이방인이 된 느낌이 들 수도 있겠더군요. 그래서 일단락 지었어요. 그래도 팬들을 위한 작은 프로젝트는 계속 구상하고 있어요.

이하나 코스 노앙 컨버스 보이스2 OCN

화이트 터틀넥 코스(COS), 데님 팬츠 노앙(Nohant),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이하나 마쥬 보이스2 OCN

라이더 재킷 마쥬(Mage).

만나기 전에 최근 인터뷰 내용을 훑어봤어요. 꿈은 여전히 음악에 있는 것 같더군요. 음악 작업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괴로워요? 제 음악을 들려드린 적 없으니까 사람들은 모르지만 저는 알고 있잖아요. 요즘에 와서야 나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제겐 음악을 하는 게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즐기면서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주문이나 최면 같은 것이었나 봐요. 우선 연기로 입지를 확실하게 다지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음악을 처음으로 잠시 놓아봤는데 그 5, 6개월 동안 아주 특별한 날 빼고는 기타를 잡지 않았어요. 전에는 음악을 안 하면 큰일 난다고 생각했거든요. 저 자신이 못 견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음악을 안 하고도 참 잘 지내더라고요. 심지어 에너지가 너무 많이 남는 거예요. ‘아, 그랬구나’ 싶어요. 잘 모르겠어요.

음악에 너무 많은 힘을 쏟고 있었나 봐요. 맞아요. 마음먹으면 하루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너무 가볍고. 지금은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쓰고 있는데 컨디션이 아주 좋아요. 혼자 참 무거운 짐을, 누가 들으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지고 있었구나 싶어요.

씁쓸해요? (긴 침묵) 그냥 애틋한 마음이라고 하고 싶어요. 끝난 게 아니고 다음을 기약했으니까.

다른 챕터부터 시작하기로 한 거죠. <보이스 2>에 임하는 마음이 확실히 다르겠어요. 맞아요. 현장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에너지가 아주 좋아요. 음악을 놓은 이유가 뚜렷하게 있는데 그것을 등한시하면 안 되잖아요. 더 철저히 해야 음악을 기다려주는 팬들이 이해할 수 있을 테고요. 그래서 처음으로 외적으로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운동을 이렇게까지 해본 적 없는데 최근에 복싱을 시작했죠. 3개월 동안 매일 도장에 가서 코어를 중심으로 단련하고 있어요. 전에 존경하는 선배님께서 제 대사를 듣고 “여기서 호흡이 끊기잖아. 한 번에 가야 해”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하고 있거든요. 그때는 숨이 차서 한 번에 다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되더라고요. 복싱을 하면서 호흡도 길어지고 걸음걸이도 달라지고 체질이 바뀌어서 요즘 촬영하 는 게 너무 즐거워요.

강권주 센터장도 인기가 많지만 예전의 발랄하고 귀여운 역할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요. 실제의 이하나는 어떤 모습에 더 가까워요? 며칠 전에 진흙탕에서 촬영했어요. 원래는 흙이었는데 비가 정말 1분도 쉬지 않고 오더라고요. 바닥은 이미 발목까지 잠기는 진흙탕이 됐는데 정말 재밌는 거예요. 왜 그런 데서 더 에너지를 얻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몸으로 부딪치는 걸 더 좋아하더라고요. 여유가 많으면 생각이 많아지나 봐요. 그 촬영 현장을 다시 생각해보니까 아주 야생적인 느낌이었어요. 내가 어느 정도는 그런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는데, 생각해보니까 학창 시절에도 체육을 제일 잘하고 좋아했어요. 데뷔하고 연예인으로 색깔을 입혀가다 보니 잊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하나는 쉴 새 없이 달리기보다 자신만의 리듬에 맞춰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직업인으로서 그 여유로운 시간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겠죠. 지금의 템포를 찾는 데 가장 도움이 많이 된 건 무언가요? 시간이 많아 생각도 많아질 때 대형 서점에 가면 도움을 많이 받아요. 도서관도요. 마음속의 책상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하루 5분 아침 일기>라는 책을 무심코 집어 들었고 아침마다 책의 항목에 맞춰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 데 많이 도움이 돼요. ‘오늘 하루 감사했던 3가지’라는 항목에 답을 쓰려면 감사했던 일을 떠올리게 되니까. 보통 집에 돌아오면 인간의 본능인가 싶을 정도로 아쉬웠던 일, 스트레스 받았던 일을 생각하게 되잖아요. 요즘에는 새벽 6시에 나가야 할 때도 잠깐이라도 쓰고 갈 정도예요.

이 드라마에 모든 걸 쏟아붓고 난 후에는 자신에게 어떤 상을 주고 싶어요? 듣기만 해도 기분 좋네요.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아버지와 함께 집 근처 바닷가를 걷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잖아요. 그것처럼 아주 사소하고 평범하지만 저를 행복하게 만드는 건 엄마와 여행을 떠나는 상상이에요. 일주일 정도 유럽에 다녀오고 싶네요. 작품을 안 하면 가기가 어렵고 작품이 끝나면 명분이 생겼다고 생각하는지 곧잘 떠나요. 이번에도 잘 끝내고 가면 마음 편히 있다 올 수 있겠죠?

이하나 산드로 코스 마이클코어스 보이스2 OCN

그레이 니트 톱 산드로(Sandro), 팬츠 코스(COS), 화이트 스니커즈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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