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선 정인선화보 내뒤에테리우스 내뒤에테리우스정인선 렉토

니트 스웨터 렉토(Recto).

정인선 정인선화보 내뒤에테리우스 내뒤에테리우스정인선

니트 스웨터 캘빈 클라인 진(Calvin Klein Jeans), 셔츠 띠어리(Theory), 재킷 인스턴트 펑크(InstantFunk).

정인선 정인선화보 내뒤에테리우스 내뒤에테리우스정인선

니트 스웨터 에잇세컨즈(8 seconds), 수트 클루드클레어(Clue de Claire), 운동화 드하모니(De L’Harmonie).

드라마 <내 뒤에 테리우스>를 앞두고 불안한 마음과 걱정이 컸다고 들었어요. 저 자신에게 확신이 들지 않았어요. 저에게 의구심이 생기는 점이 가장 힘들었죠. 제가 맡기에 큰 역할 같았고 그러다 보니 제가 이 작품을 하게 됐다는 사실이 잘 납득이 되지 않았어요. <내 뒤에 테리우스>의 ‘고애린’은 누구보다도 시청자에게 공감을 사야 하는 인물이에요. 갑작스레 남편을 잃은 두 아이의 엄마가 느끼는 감정을 제가 과연 깊숙이 이해할 수 있을지, 사람들에게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상황을 사람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걱정이 컸어요. 저는 원래 고민을 혼자 감당하는 편 이거든요. 작품을 준비할 때면 집에서 대본과 저 둘이 고민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좀 달랐어요. (김)여진 선배님 댁에도 가고 아이가 있는 친구들과 키즈 카페에 가서 주변도 좀 살펴보며 활동적으로 준비했어요. 그렇게 몸을 움직이고 부딪히며 배우니까 안심이 조금 되더라고요.

끝내고 나니 어때요? 제 그릇이 넓어졌어요. 그 전에는 제 그릇이 넓지 않지만 그 크기에 만족하며 살 줄 알아야 한다고 스스로 다그치고 마음을 다스렸죠. 그런데 이 작품을 하면서 제 그릇을 따뜻하게 넓혀주려는 분을 많이 만났죠. 감독님과 작가님뿐만 아니라 스태프 한 분 한 분 그리고 (소)지섭 선배까지도요. ‘아, 나만 나에 대한 의구심을 접고 압박감과 부담감을 이겨내면 많은 걸 배우고 넓어 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모든 것이 끝난 지금에야 실은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어느 선에서 만족해야겠다고 욕심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있었던 것 같다고 느껴요. 사실 저는 자신을 넓히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말이죠.

모든 사람이 욕심을 드러내지는 않는 것 같아요. 일종의 방어기제처럼 나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부분도 있었어요. 게다가 전 무소유 기질이 강하거든요. 주어진 것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내 것이 아닌 것은 욕심내지 않고 괜한 망상을 품지 않아요. 배우로서는 주어진 역할에 연연하기보다는 다양한 캐릭터를 맡아보고 싶었고, 그것만으로도 복받은 것이라 여겼죠. 그래서 꽤 많은 작품을 해왔고 그에 만족했어요. 주인공 역할을 해내기에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일생일대의 기회가 스물여덟살에 갑자기 찾아왔어요.

중간에 도망가고 싶었던 적은 없어요? 방송 첫날이 제작 발표회 날이었는데, 그 전날까지 매일매일 도망치고 싶었어요. 진짜. 첫 방송 직전까지는 저를 믿어준 사람들의 믿음과 현장의 따뜻한 분위기를 불씨 삼아 달렸어요. 첫 방송 이후에는 제 연기에 공감하는 분이 예상보다 많아서 안도감이 들었고 극 중·후반에는 잘해내고 싶은 욕심을 힘으로 달렸어요. 이제야 현장의 유쾌한 분위기를 즐기며 부담감을 조금이라도 더 내려놓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드라마를 무사히 마치고 나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었어요? 혼자 제주도로 짧은 여행을 가고 싶었어요.

원래 혼자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해요? 자주 다닌 건 아닌데 제주도에서 혼자 3일 동안 여행한 적이 있어요. 바다를 바라보다가 사진도 찍고 책도 보다 숙소에 돌아와 영화도 보며 느긋하게 제주도를 즐겼어요. <내 뒤에 테리우스>를 찍으면서 제주도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아직은 체력이 덜 회복되어 그런지 잠만 자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도 여전히 촬영장에서 실수하는 꿈을 꿔요. 아직 작품앓이가 끝나지 않은 것 같아요.

여섯 살 때 연기를 시작했어요. 필모그래피도 꽤 풍부하고요. 그중에는 <한공주>처럼 평단에서 주목받은 작품도 있고. 많은 작품을 해오면서 자신을 좀 더 빨리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조바심도 들었을 것 같아요. 그보다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었어요. 저 자신을 시험해보는 것처럼요. 이걸 해봤으니 저것도 해봐야겠어 하는 식이었죠. 역할의 크기가 중요하진 않았어요. 연기에 대한 기준점을 잘 리뉴얼할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이전에는 다양한 것에 초점을 뒀다면 이제는 내 강점과 약점,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며 캐릭터에 부딪히기보다 어떤 부분을 더 잘하고 어떤 부분은 내려놓아야 하는지, 단점은 어떻게 장점으로 바꿔야 하는지 생각하며 저에게 좀 더 집중 해보려 해요.

오랫동안 삶의 방향을 바꾸지 않고 배우로 살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해요. 무엇보다 연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죠. 어릴 때 잠시 활동을 안 한 시기가 있어요. 그때도 제가 하는 모든 생각이 결국 연기로 이어졌어요. 어쩌면 너무 어릴 때 연기를 시작해 자연스레 생각의 끝에 늘 연기가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연기를 제 동반자로 삼고 오래 데리고 가고 싶어요. 존중하면서요. 한때는 연기가 제 삶을 덮어버릴까 봐 두려웠어요. 반대로 제 삶이 연기를 덮어버리는 것도 싫었고요. 연기가 곧 나 자신인 게 아니라 서로 거리를 유지하며 동반자처럼 지내고 싶어요.

연기와 동반자가 되어야겠다는 깨달음은 왜 얻은 걸까요? 한때 아역 배우라는 수식어를 지운 정인선을 떠올리면 무기력하게 느껴졌어요. 그러다 문득 주변 사람 중에 내가 아역 배우이기 때문에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섯 살 때부터 연기를 했으니 아역 배우라는 타이틀을 떼어냈을 때와 그러지 않았을 때를 비교조차 할 수 없었죠. 그런 생각을 할수록 자신감도 떨어졌어요. 그런 감정이 쌓이다 보니 제 연기가 보기 싫어지는 순간이 오더군요.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연기를 잠시 쉬기로 한 거죠. 딱 중2병이 오는 시기에, 올게 온 거죠.(웃음)

중학교 2학년이라는 시기가 지금은 너무 어리게 느껴지지만 돌이켜보면 개인적인 취향의 많은 부분이 결정되는 때인 것 같아요. 적절한 때에 필요한 고민을 한 것 같아요. 꼭 거쳐야 할 시기이기도 했고요. 그때 한 고민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죠.

어떤 점에서는 또래 친구들보다 고민이 더 깊고 크지 않았을까요? 그땐 그랬어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를 주제로 산문도 썼어요. 원래 글 쓰는 걸 좋아하거든요. 사진을 찍고 싶어 여행 갔다가 엄마한테 배가 끊겨 못 돌아간다고 거짓말한 적도 있어요. 그런 시간 덕분에 지금의 제 취향 그리고 삶과 연기를 대하는 방식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그래도 그때를 생각하면 우습기도 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사진을 좋아하는 내가 좋고, 내가 가졌다고 믿는 내 색깔이 마음에 들고 그런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 매력 있는 사람이 될 거야, 이러면서 제 자신에 심취해 있었죠.(웃음)

그때 가졌던 취향은 여전해요? 지금도 작품 하나를 끝내면 꼭 여행을 가요. 여행을 준비하고 낯선 곳에 가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히는 것도 좋고요. DSLR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도 하는데 요즘은 무거워서 휴대폰 카메라로 대신하고 있어요. 그러다 최근 조금씩 다시 카메라를 알아보는 중이에요. 고프로도요.

작품을 끝낸 후 다녀온 여행 중에 지금까지도 큰 힘이 되는 여행지가 있나요? 다 좋았지만 최근 다녀온 여행지가 자꾸 생각나요. <으라차차 와이키키>를 마치고 크로아티아에 다녀왔거든요. 함께 간 친구가 회사에 다녀서 말도 안 되게 짧은 일정으로 갔죠. 운전을 하며 다녔는데 길에서 보낸 시간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드라이브하며 본 아름다운 풍경들이 자꾸 생각나요.

2019년은 정인선에게 20대의 마지막 해이기도 해요. 서른이 되기 전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가 있다면요? 전에는 오로라를 보고 싶기도 했고 해외 봉사활동이나 워킹홀리데이를 하며 오랫동안 외국에 머물고 싶기도 했어요. 남극에도 가보고 싶었고요. 그런데 서른 전에는 이루기 힘들 것 같기도 해요. 어릴 때는 제가 스물일곱, 스물여덟 살쯤 되면 대범하게 살 줄 알았어요. 그런데 크게 달라지는 건 없더라고요. 나이와 상관없이 많은 걸 경험하고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싶어요. 많은 사람을 만나고요. 그러면서 많은 걸 느낀다면 좋겠죠. 그리고 체력을 잘 관리하고 싶어요. 서른이 되기 전에 만든 몸으로 30대를 살고 30대에 만든 몸으로 40대를 산다고 하잖아요. (소)지섭 선배에게 배운 점이기도 해요. 선배는 스스로에게 아주 엄격해요. 그런 자기 관리가 작품을 위한 당연한 자세라고 생각하죠. 선배처럼 앞으로 인생을 잘 살기 위해 건강하게 지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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