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뺑반 뺑반 공효진 류준열 조정석

류준열 재킷과 니트 스웨터, 팬츠 모두 캡틴 선샤인 바이 샌프란시스코 마켓(Kaptain Sunshine by San Francisco Market).
공효진 하운드투스 체크 그레이 수트 제이백 쿠튀르(Jaybaek Couture), 블랙 터틀넥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조정석 그레이 니트 톱 닐 바렛(Neil Barrett) 그레이 싱글 수트 띠어리(Theory).

새로운 조정석

좀처럼 나쁜 사람을 연상할 수 없는 얼굴인데 이번엔 악역을 연기한다. 악역이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점에 따라 악한 인물이긴 하지만 위험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이상한 사람이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도 ‘얘 뭐지? 정말 희한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어떤 서브텍스트를 읽어냈는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 와중에 자수성가했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빠져버린 거지. 그런데 그 최종 목적지가 결국 생존인 것 같다. 살아남기 위해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거다. 나는 이런 사람이니 이해해달라 하지 않고 그냥 자신의 생존 방식을 보여주기만 하는 거다.

나쁜 조정석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보여준 여러 인물과 가장 거리가 있는 인물을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도 될 것 같다. 매우 다른 인물이다. 하지만 그 점만 걱정했다면 이 작품을 선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게 좋다. 물론 그 결과가 실패로 돌아올수도 있지만 그런 데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다.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조정석의 새로운 모습을 흥미롭게 받아들여줬으면 한다. 배우로서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절실히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그다음에 관객이 과연 내 연기를 궁금해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내가 하고 싶어서 선택한 인물에 대해 많은 사람이 기대하지 않고 궁금해하지 않는 배우가 되어서도 안된다. 그게 배우의 의무인 것 같기도 하고.

아마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는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겠다.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많은 분이 나를 보며 유쾌함 혹은 활달함을 떠올린다. 이번에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하지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목표만으로 작품을 선택하진 않았다. 다만 이 인물에 집중하다 보니 ‘이상한 놈이구나, 희한하네, 재밌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게 된 거지. 아마 흥미로울 것이다. 비단 내가 맡은 캐릭터뿐만 아니라 (공)효진 씨나 (류)준열 씨에게서도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후반 작업 중이라고 들었다. 완성된 작품을 보지 않았는데도 작품에 대한 확신이 드는가? 작품을 끝낸 배우는 누구나 그 작품이 잘 나왔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현장에서 재미있었고, 현장에서 작업하는 동안 내게 득이 되는 순간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이번 작품에 확신이 있다. 한준희 감독이 분명 끝까지 잘 만들어내리라는 확신. 한준희 감독과 작업하는 건 정말 재미있었다. 배우가 장면을 연구하고 고민해서 연기하면 그에 대해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다시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 연기에 정답은 없지만 정답에 최대한 가깝게 가기위해 감독과 함께 노력하는 건데, 한준희 감독과는 대화도 잘 통하고 내가 생각하기에 생경한 감정을 끄집어내서 표현하려고 하면 그런 지점까지 잘 생각해주었다. 현장에서 감독님에게 늘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다. 흥이 나고. 그 덕분에 배우로서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었다. 농담 삼아 ‘감독님은 예술적인 변태 같다’고 말했다.(웃음) 진짜 좋은 현장이었다.

배우로서 또 다른 전환점이 되는 작품일 수도 있겠다. 작품을 할 때마다 늘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임한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고. 앞서 내가 기존에 해온 작품과 결이 많이 다르다고 했는데 결이 다른 역할을 나를 통해 표현하고 연구하는 그런 과정이 너무 재미있다. 이번에는 결이 다르기보다는 코드가 완전히 바뀌는 역할이다. 많은 분이 조정석이 로맨틱 코미디를 많이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서 늘 다른 결이 있기에 선택해왔다. 장르가 같더라도 늘 전환점이라 생각하며 임한다.

오늘 대화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 ‘재미있다’다.(웃음) 무대까지 통틀어 오랫동안 연기했는데 여전히 그렇게 재미있나? 참 신기하지 않나. 재미있다.

지금까지 한순간도 지친 적 없었나? 체력적으로는 지치지. 심신이 굉장히 지칠 때가 있다. 그런데 재미없으면 지칠 일도 없다. 재미있으니까 열정을 쏟아붓는 거고, 쏟아부으니까 지치는 거고, 연기가 마음대로 되지 않거나 바라는 대로 감정이 나오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냥 힘든 스트레스라고만 여겨지지는 않는다. 배우는 결국 연구하는 직업인 것 같다. 연기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그래도 하나의 일을 오래하다 보면 때론 관성적으로 할 때가 있지 않나. 일종의 매너리즘처럼. 사람은 모두 다르니까. 작품을 볼 때면 늘 ‘와, 이런 사람도 있구나’, ‘와, 또 이런 사람도 있네’ 하고 생각한다. 참신한 이야기와 인물들 때문에 지칠 새가 없다. 이를테면 시리즈로 나오는 책의 경우 책을 읽는 행위는 같지만 앞으로 흘러갈 이야기 때문에 계속 흥미롭지 않나. 연기라는 행위는 같지만 다른 인물과 이야기 때문에 계속 흥미가 생긴다.

쉬지 않고 일해왔다. 회사원으로 치자면 일 중독자 같다.(웃음) 일 중독은 아닌데 연기 중독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사적인 자리에서 대화할 때도 누군가에 대해 얘기할 때 자꾸 연기하듯 재현한다.(웃음)

열일하는 와중에 가장 힘든 때가 있었다면 언제인가? 오래전이긴 한데 공연할 때다. 시련이라면 시련이었다. 데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는데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연기를 하며 무대에 올랐는데 9개월간 원 캐스팅으로 계속 연기하다 보니 어느 순간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도 힘들다는 감정이 드는 게 참 이상했다. 공연이 잘되어 연장한 건데 힘든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 그 시기를 잘 버티고 이겨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이게 내 성격이기도 하다. 어릴 때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아주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고, 소중한 사람을 잃기도 했다. 이른 시기에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까 자의로 해낼 수 없는 것을 잘 받아들이고 수긍하며 이겨내는 법을 체득했다.

일찌감치 단단해졌다. 맞다. 대학에 가기 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에게 부모님과 관련해 카운슬링을 많이 하게 된다. 그 상실감은 잃어본 사람만이 안다. 전에 내가 힘들어하던 거 기억나지 않느냐고, 너도 다 보지 않았느냐고. 그렇게 힘들기 싫으면 소중한 사람들에게 잘하라고 말해준다. 그런 시련을 어릴 때 경험한 때문인지 시련을 대하는 내 마음도 일찌감치 단단해졌다.

열일하며 오늘까지 왔다. 이 시점에 가장 큰 고민은 뭔가? 나는 늘 긍정적이다. 다만 이제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 가정이 있는 가장이 되어, 가장으로서 어떤 작품과 어떤 역할을 연기하며 좋은 길을 잘 걸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 외에 별다른 고민은 없다. 다 잘될 거고 잘 살 테니. 행복하게 모든 일이 이뤄지며. 말하자면 하쿠나 마타타.(웃음)

오랜만에 듣는 말이다.(웃음). 2019년의 다짐이 있다면? 이제 불혹이다. 아, 이 단어 안 써야겠다. 쓰고 싶지 않다.(웃음) 친구들이 모두 회사에 다니고 아이들 아빠가 되어 자주 만날 수는 없지만 가끔 만나면 요즘 몸이 좋지 않다거나 어젯밤에는 끙끙 앓았다거나 이런 말을 한다. 무엇보다 건강해야지. 이제 나도 혼자가 아니고 누군가를 책임지게 되었으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영화뺑반 뺑반 공효진 류준열 조정석

공효진 하운드투스 체크 그레이 수트 제이백 쿠튀르(Jaybaek Couture), 베이식한 옐로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화이트 골드 로즈 링 피아제(Piaget), 블랙 터틀넥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조정석 그레이 니트 톱 닐 바렛(Neil Barrett), 그레이 싱글 수트 띠어리(Theory), 블랙 로퍼 엘칸토(Elcanto).
류준열 재킷과 니트 스웨터, 팬츠 모두 캡틴 선샤인 바이 샌프란시스코 마켓(Kaptain Sunshine by San Francisco Market), 구두 톰 포드(Tom Ford).

다른 공효진

어제 개봉한 <도어락>을 오늘 아침에 보고 왔다. 아침에 보기 좋은 영화다.(웃음) 원래 스릴러를 좋아하는 편인가?

그렇지는 않은데 <도어락>은 현실 공포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무엇보다 가해자를 향한 주인공의 온도에 공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보통 사람은 위협받는 상황에서 도망가지 가해자를 붙들고 공격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 후반부처럼 특수한 상황에 처하지 않는 이상 싸워 이기기란 힘든 일이다. 사건이 지나간 후 주인공에게 대단한 변화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게 현실적인 결말 같다.

두 작품이 연이어 개봉한다. 지난 1년 배우 공효진이 어떻게 보냈는지 보여주는 시간인 것 같다. <도어락> 촬영을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뺑반>에 들어갔다. 두 작품의 결이 많이 달라서 연이어 개봉하는 데 대한 걱정은 별로 없다. 지금까지 이렇게 몰아쳐서 작품을 해본 적이 없다. 어느 하나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까 봐 주저했다. <뺑반>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도마찬가지였다. 그럴 만한 체력도 없다고 생각했다. <뺑반>은 여러모로 지금까지 해온 작품과 외형적인 면에서 많이 다르다. 일단 예산 규모가 크고 내로라하는 배우 여럿이 함께 나온다. 처음 시나리오만 봤을 때 어떤 인물은 선과 악 중 어느 쪽인지 잘 파악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블록버스터에 큰 관심이 없었던 터라 쉽게 결정을 못 내린 부분도 있다.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는 지금은 어떤가?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 우선 현장의 새로운 시스템을 경험했다. 전체가 82회차 정도인데 그중 58회차에 등장한다. 아, 잘못 걸렸다 싶었다.(웃음) 하지만 늘 촬영 현장의 흐름이 수월해 힘들게 찍지는 않았다. 내가 연기하는 ‘시연’은 내사과 경위다. 경찰청 내부 수사를 맡는 팀에 있다가 좌천돼 ‘뺑반’에 오게 되는데 카리스마 넘치고 말이 많지 않은 시크한 인물이다. 몸소 액션을 하기보다 주로 브레인 역할을 한다. 아마 한국 영화계에서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일 것 같다. 여느 콤비물과도 느낌이 많이 다르다. 보통 콤비물 하면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며 웃기는 해프닝이 이어질 거라고 예상하는데 <뺑반>은 그렇지 않다. 이야기가 사뭇 진지하다. 무엇보다 한준희 감독과 작업을 함께 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의외인 부분은 <차이나타운>의 한준희 감독이 카 체이싱 액션영화를 연출했다는 점이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영화를 마치니 감독님의 빅 픽처가 짐작이 되더라.(웃음) 감독님이 저보다 어리고 현장에서 늘 ‘선배님, 사랑합니다’ 하며 응원해줬다. 감독님이 참 똑똑하다. 현장에서 헤매는 법이 없고 모든 게 딱 떨어진다. 흠잡을 데 없다. 준비가 항상 철저하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늘 분장차에 들어와 그날의 촬영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눈다. 현장 분위기는 보통 감독을 따라가게 돼 있다. 감독이 초조하고 불안해하면 현장도 힘들어지고, 다혈질이면 현장도 그렇다. 그런데 한준희 감독은 늘 여유로워 보이는데 준비는 철저했다.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기다린 적이 한 번도 없다. 걱정 없이 작업했다.

한준희 감독은 전작에서도 성별과 상관없이 예상치 못한 캐릭터의 색깔을 만들어냈다. 보통 형사물에서는 남자 배우에게 주요 역할이 집중되는데 <뺑반>은 다르다. 텍스트에 담긴 것 이상으로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류)준열 씨가 맡은 역할은 어떤 한 사건으로 성장한다. 사람들이 응원하고 싶어지는 인물이다. (조)정석 씨는 지금껏 보여준 인물과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그 연기에 분명 놀랄 것이다. 내가 연기하는 시연은 시나리오만으로는 평범해 보였다. 그런데 막상 연기해보니 아니더라. 감독님은 여자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캐릭터를 굳이 남녀로 구분하지 않는다. <차이나타운>을 보면 어린 남자 배우가 해도 될 것 같은 역할을 김고은 배우가 연기한다. 매우 극악무도하고 잔인한데 사랑에 빠져 설렐 때는 소년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감정을 보여준다. 김혜수 선배와 보여주는 모녀의 케미도 새롭지 않나. 남녀의 구분을 매력적으로 뒤엎어버렸다.

공효진의 필모그래피에서 스릴러와 범죄 오락 액션이라는 장르는 튀는 느낌이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나이가 된 걸까? 뒷자리가 9가 되는 나이가 그런 것 같다. 감정적으로 우울하지는 않은데 스물아홉 살 때도 그랬고, 서른아홉인 지금도 내가 이대로 가도 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씽: 사라진 여자>(이하 <미씽>)와 <싱글라이더>가 개봉하고, 드라마 <질투의 화신>을 끝낸 다음 좀 쉬고 싶었다. 배우라는 이름으로 해온 모든 작업을 내가 너무 관성적으로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연기를 하며 드는 콩닥콩닥하는 설렘, 한 장면을 잘 마치고 나면 드는 기쁨, 뭔가 확신이 들지 않을 때 느껴지는 불안함, 개봉을 앞둔 때의 몽실몽실한 감정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무던해지더라. 그러다 내 연기가 지루해질까 봐 걱정이 됐다. <미쓰 홍당무>를 촬영할 때는 어느 한순간이라도 모른 채 그냥 흘러가게 두면 제대로 만들어질 것 같지 않아 가만히 있질 않았다. 다시 하라면 그만큼 할 수 없을 정도로 나 자신을 완전히 소진한 기분이었다. <미씽> 때도 주변에서 너무 잘했다고 하는데 내가 과연 그만한 감정을 쏟아냈는지 모르겠더라. 어쩌면 이전보다 조금 내려놓고 연기해서 더 좋은 연기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 자신을 불신하게 됐다. 과도기일 수도 있지. 그래서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장르를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과도기를 새롭게 만들어줄 무언가.

어떤 일이든 연차마다 고민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여전히 선배가 많지만 어느 현장에서는 후배가 더 많다.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렀다. 전에는 실수해도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여겼다. 그런데 이제 작품을 고를 때도, 연기를 할 때도 실수해서는 안 되는 나이가 됐다. 적절한 타이밍에 좋은 작품을 선택하며 삐끗하지 않고 작품을 잘 선택해나가고 싶다.

선배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가? 모든 게 적절한 사람. 관객과 타협해야 할 때는 그럴 줄도 알고, 작품을 고집스럽게 고르기도 하고 상업적인 활동도 적당히 하고. 모든 면에서 적당하고 적절한 사람.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같은데 탄탄하게 길이 만들어지는 느낌. 필모그래피도 그렇게 탄탄하게 채우고 싶다.

2019년 <마리끌레르> 1월호를 위한 인터뷰다. 어떤 한 해를 기대하는가? 2019년 운세가 아주 좋다고 한다. 무엇이든지 잘되기를 기대한다.(웃음) 존재만으로 위협적인 배우가 되고 싶기도 하다. 지금까지 상업 영화보다는 작은 영화를 해왔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흥행 스코어가 좋지는 않았다. 내 취약점이 스코어라 생각했고, 2019년에는 그 취약점이 보강되었으면 한다. 아마 또다시 바쁜 한 해를 보내게 될 것 같다. 더불어 <뺑반>도 기대만큼 흥행하고 잘되기를 기대한다.

영화뺑반 뺑반 공효진 류준열 조정석

류준열 재킷 드리스 반 노튼 바이 분더샵(Dries Van Noten by BoonTheShop), 니트 스웨터 마르니 바이 분더샵(Marni by BoonTheShop), 팬츠 세야 바이 10꼬르소 꼬모(Seya by 10 Corso Como).
공효진 핑크 코듀로이 수트 에리카 카발리니 바이 10꼬르소 꼬모(Erika Cavallini by 10 Corso Como), 배색 터틀넥 니트 톱 록산다 바이 한스타일(Roksanda by Hanstyle), 유니크한 디자인의 이어링 젬앤페블스(Jem & Pebbles).
조정석 셔츠와 수트 모두 에르메네질도 제냐 쿠튀르(Ermenegildo Zegna Couture).

류준열의 한결같음

인터뷰할 때마다 늘 다른 작품을 촬영 중인 것 같다. 요즘은 <전투>를 촬영 중이다. 거의 막바지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바쁜 것 같지는 않다. 오늘 함께 촬영한 형과 누나들은 나보다 훨씬 더 바쁘고 열심히 사는 시간을 더 오래 보내지 않았나. 여기서 내가 바쁘다고 하면 엄살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힘을 내는 게 맞다. 요즘도 여전히 계속 작품을 하면서 어떻게 보면 비슷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그 안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려 하고 있다.

배우로서 변화를 말하는 건가? 그보다는 나 자신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문득 나 자신이 제자리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

<뺑반>에서 연기한 ‘민재’는 그 전에 보여준 캐릭터들과 어떤 점에서 많이 다른가? 다른 작품의 인물과 비교하는 건 잘 못 하겠다. 민재는 매뉴얼과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일을 해결할 때 직감이 우선인 재미있는 친구다. <뺑반>에는 독특한 유쾌함과 통쾌함이 있다. 같은 장르의 다른 영화들과 구별되는 재미가 있다. 직감적인 부분을 강조해야 해서 텍스트에 적힌 내용만큼이나 매 장면 감독님과 상의하며 인물을 만들어갔다. 원래 시나리오상의 인물과 비교하면 좀 변했다. 원래는 너드 느낌이 굉장히 강했는데 방향을 살짝 틀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 기분 좋은 배신 같은 거. 반전 있는 스토리와는 또 다른 얘긴데, 작은 순간순간에 새로운 지점이 있다.

앞서 인터뷰한 두 배우 모두 한준희 감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함께 대화하기 무척 유쾌하고 즐거운 감독님이다. 나로선 선배 배우들과 작업하는 것만으로도 늘 뜨거운 현장이었다. 여기에 감독님까지 가세해 ‘좋은 영화를 찍어보자’ 하기보다 ‘한번 재미있는 작업을 해보자’라며 의기투합 했다. 알콩달콩했달까?

촬영 현장의 좋은 기운이 오늘까지 전해지는 것 같다. 내가 인복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 좋지 않은 현장이 없었고 늘 좋은 사람들이 함께했다. 그렇지 않은 현장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감사한 일이지.

작품을 하나씩 끝낼 때마다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나? 스스로 성장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잘 성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작품을 끝낼 때마다 배우는 건 물론 있다. 소중한 경험도 하나씩 늘고. 이번에도 함께한 선배 배우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친구 같은 감독님과 재미있게 작품을 만들어갔다. 시너지를 키우는 경험을 남긴 작품이었다.

오늘 이곳에 오기 전에 이름을 검색했는데 마침 ‘류준열은 성장 중’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더라. 성장통?

아니, ‘통’은 없었다. 물음표였나?

마침표였다.(웃음) 자꾸 더 나아지고 싶어서 새로운 내 모습을 찾고 싶은 것 같다. 그런 과정이 재미있기도 하고. 이것도 해볼까, 저것도 해볼까 이러면서. 연기는 할수록 어렵다. 전에는 어렵거나 쉽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일에 전력을 다하다 보면 정작 나를 더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나? 여유가 좀 더 생기면 좋겠다. 작품으로 바쁜 것과는 또 다른 얘긴데 연기하지 않는 시간도 너무 바쁘게 보낸다. 여유가 있어야 고민도 더 많이 하고, 그런 고민 끝에 좀 더 대단한 뭔가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럴 여유가 없다. 스케줄이 없는 날에는 운동하고 대본도 읽고 그러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질 못한다. 오래전부터 쌓아온 내 삶의 루틴을 유지하지 않으면 뭔가 사라져버릴 것 같아 그런 것들을 지키려다 보니 자꾸 바쁘게 보낸다. 이런 말을 하는 게 조심스럽기는 한데, 지금까지 운 좋게 나쁜 평가보다는 좋은 평가를 많이 받을 수 있었던 건 내가 그전에 지켜온 삶의 방식 혹은 생활 패턴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 걸 잃어버리면 금방 넘어질 것 같다.

곧 여행 관련 예능 프로그램도 출연한다고 들었다. 좋아하는 테마여서 한번 해보기로 했다. 원래 지금 가족과 여행 가 있어야 하는데 여러 다른 스케줄 때문에 나 빼고 가족들만 떠났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니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번엔 함께하지 못했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좋은 아들, 좋은 오빠로 함께하고 싶다.

한 배우를 신인 때부터 이렇게 여러 번 인터뷰하기는 류준열이 처음인 것 같다. 그래서 자꾸 과거의 대답들이 여전히 유효한지 궁금하다. 이를테면 여전히 일기를 쓰는지. 여전히 쓴다. 다만 쓰는 시간이 좀 짧아졌다. 전에는 저녁 먹고 이것저것 하다가 일기를 쓰면 잘 시간이 됐는데 이제는 일기를 쓰면 자야 할 시간이다.(웃음) 요즘은 배우 일지를 일기처럼 쓴다. 오늘 연기한 것 중에 뭐가 잘되고, 뭐가 잘되지 않았는지.

가끔 전에 썼던 일기를 읽어보기도 하나? 잘 안 들춰 본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너무 오래 걸린다. 그리고 가끔 정말 내가 이걸 썼는지 못 믿겠다.(웃음) 아, 요즘 정말 기억이 잘 안 난다.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지기도 했고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아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은 좀 곱씹어보기도 하며 지나가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많지 않다.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영감이나 생각을 잘 정리해두면 훨씬 풍요로울 텐데. 좋은 음식을 먹고 잠을 많이 자는 것보다 그런 걸 통해 내가 채워져야 사는 맛이 나는 것 같다.

요즘은 SNS도 뜸하더라. 얼마 전에 올린 놀이터 사진이 너무 쓸쓸했다.(웃음) 오랜만에 시간 내서 올린 거다. 사진은 많이 찍는데 올릴 시간이 없다. 요즘은 SNS 들여다볼 시간도 별로 없다.

주로 어떤 순간에 카메라를 드나? 촬영장에서는 스태프들 사진도 많이 찍는다. 추억을 만드는 시간이랄까. 한 작품을 마치고 나면 가장 아쉬운 건 사람들이다. 한 명 한 명 모두 기억하고 싶은데 가끔 이름조차 모르고 지날 때도 있다. 그래서 많이 미안하고 아쉽고 그렇다. 아, 얼마 전에는 전에 살던 동네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영화 <집의 시간들>을 보고 문득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예전에 살던 동네에 가고 싶어졌다. 내가 살았을 때와 비교할 때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사람들도 많이 떠났고. 그 동네를 추억하면 여전히 좋은 기운을 많이 받는데 한편으론 사라진다는 생각에 쓸쓸했다. 속상하기도 하고.

여전히 열심히 산다. 피곤하게 살고 있다.(웃음)

1월의 바람이 있다면? 1이라는 숫자는 청춘을 떠오르게 한다. 숫자 1, 리뉴얼, 리셋, 이런 것들. 늘 청춘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계속 그 안에 있고 싶다. 청춘의 뜨거움. 늘 뜨거운 온도로 있고 싶다.

여전히 뜨겁나? 그럼.

나이 들수록 감흥이 떨어진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그 감정, 감흥을 잃지 않으려고 자꾸 영감을 받고 싶어진다. 김동률 선배의 노래를 좋아하는데 지난 한 달간 <노래>를 엄청 많이 들었다. ‘울어본 적이 언젠가, 분노한 적이 언제였었던가. 살아 있다는 느낌에 벅차올랐던 적이 언젠가’. 그분은 인생을 통달한 것 같다. 노래 한 곡이 인생 전체 같고, 그 노래를 들으면서 내가 생의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는지 짐작해본다. 아무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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