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준 BIFF

크림 컬러 블라우스 렉토(Recto), 팬츠 르메르(Lemaire), 메리제인 슈즈 트리커즈 바이 유니페어(Tricker’s by Unipair), 양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혜준

<킹덤> <미성년> <변신>

올해만 벌써 <킹덤> <미성년> <변신> 세 작품을 선보였다. 지금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나? 얼마 전까지 <변신>으로 무대 인사를 다니다가 지금은 <싱크홀>이라는 영화에 합류하게 됐다. 올해 하반기는 <싱크홀>을 찍으면서 보낼 것 같다.

매번 색깔이 완전히 다른 장르의 작품을 시도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좇는 성향인가? 그보다 아직 한 게 별로 없어서 지금 하는 모든 것이 새로울 뿐이다. 사극도 공포물도 코미디물도 해본 적 없어서 다 처음일 수밖에 없다. 사실 소심한 편이고 도전도 잘 못하는 편인데도, 작품에서는 이건 나에게 큰 도전이라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변신>을 하면서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걸 제외하고는 처음이라 오히려 무서울 것 없다는 생각으로 한 것 같다.

그중 가장 익숙했던 처음이 있다면? 지금 찍고 있는 <싱크홀>의 ‘은주’ 역할. 은주가 신입 사원이라 주변 사람들 눈치도 많이 보고 주눅 들어 지내는데, 나도 평소에 낯을 많이 가리고 주변을 살피는 편이라 캐릭터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웹 드라마 <대세는 백합>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연기를 시작했을 때, 어떤 모습이었던 것 같나? 그때는 학교에서 단편 작업을 해서 나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다. 지금 보면 뭣도 모르고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무것도 몰라서 다 새로웠다.

어떻게 연기를 시작하게 됐나? 문득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 찾아왔다. 어떤 작품을 보고 연기를 하고 싶어진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문득 내 안에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외부의 자극으로 하기로 결심하게 됐다.

그럼 배우의 길을 계속 가도 되겠다는 확신을 가진 시기는 언제인가? 아직은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내가 연기로 사람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시기가 오면 확신을 갖게 될 것 같은데, 아마 내가 아는 나는 평생 만족하지 못할 거다. 자존감이 낮은 편인지 연기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편이다.

그럼에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는 반응이 있다. 전에는 무조건 아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흘려들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말들을 곱씹으면서 힘을 얻으려고 한다. 내 자존감을 높이는 데 보탬이 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자신이 연기한 작품을 볼 때 어떤 생각을 하나? 당연히 내가 못한 부분이 먼저 보인다. 그래서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 항상 작품을 몇 번씩 다시 본다. 처음에는 나만 보이다가 두 번째는 같이 연기한 사람들과의 앙상블이 보이고, 세 번째는 전체를 보면서 분석해간다. 현장의 상황을 떠올리며 내가 여기서 어떻게 했어야 하고, 그래서 다음 작품에서는 이렇게 대처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다. 작품을 계속 들여다보는 과정이 나에게는 일종의 오답 노트를 만드는 것과 같다.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상상하거나 꿈꿨던 일이 이뤄진 적이 있나? 감사하게도 조금씩 이뤄나가고 있어서 행복하다. 그중 하나가 멋있는 선배님들과 호흡을 맞추는 거다. 첫 작품이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였는데, 거기서 한석규 선배님과 호흡을 맞췄다. <최고의 이혼>의 배두나 선배님이나 <미성년>의 염정아, 김윤석 선배님 같은 분들을 만날 때마다 꿈이 이뤄진 기분이고, 마냥 신기하다.

<미성년>에서 배우 겸 감독 김윤석과 아빠와 딸로 호흡을 맞추는 동시에 감독과 배우로도 촬영했다. 연기를 잘하는 감독에게 디렉팅을 받는 것이 어려웠을 것 같은데. 촬영하는 동안에는 무척 어려웠다. 그런데 감독님이 늘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거짓으로 연기하고 있거나 감정이 충분히 쌓이지 않았는데 대사를 내뱉는 부분은 날카롭게 잡아내셨지만, 다시 어떻게 해볼지는 내 몫이었다. 또 잘했다거나 못했다는 평가를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그 점에 굉장히 감사한다. 못한다고 하면 주눅 들고, 잘한다고 하면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부담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건 배우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떤 작품에 욕심이 생기는 편인가? 오디션 대본을 읽다 보면 유독 내 말처럼 느껴지는 작품이 있다. 그런 작품은 늘 오디션을 재미있게 봤고, 욕심이 생기고, 결과도 좋은 편이었다. 드라마 <다시 만난 세계>가 그랬다.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에서 실제와 나이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역할을 맡았다. 그래서 항상 그때의 자신을 투영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사실 연기를 할 때마다 내 성격을 완전히 배
제하고 새로운 캐릭터를 구축하지 못한다. 일부러 투영하려는 건 아니지만, 모든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내 성격과 말투를 조금씩 투영한 것 같다.

지금 가장 자연스럽게 나오는 감정과 어렵게 표현되는 감정은 무엇인가? 자연스러운 건 멍때리는 것과 자는 것.(웃음) 그 외에는 다 어렵다. 생각보다 일상적인 평범한 대화도, 극단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어렵다.

연기하면서 언제 가장 큰 희열을 느끼나? 다 힘든데 그게 또 재미있다. 원래 힘들면 안 하는 스타일인데, 연기는 그런 생각이 안 들고 어떻게 하면 극복할지를 고민한다.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을 해결해나갈 때, 영화가 나왔을 때, 그에 대한 평을 볼 때 매번 짜릿함을 느낀다. 현장에서도 긍정 에너지를 많이 받는다.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다면? “내년은 너의 해야.” 하하. 3년째 이 말을 듣고 있다. 그리고 내 입으로 얘기하긴 민망하지만 이해가 빠르다는 얘기를 들어왔다.

자신의 얘기를 꺼내는 걸 조심스러워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부끄러워하는 성격이라고 들었다. 그럼에도 배우라는 직업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있을까? 진짜 신기하다. 어릴 때부터 수업 중에 발표하는 걸 제일 싫어했고, 지금도 발표하는 날에는 학교에 안 간다. 그런 내가 배우가 된 게 아직도 의문이다. 아마 부끄러움을 견뎌내고 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한 것 같다.

배우로서 어떤 식으로 다음을 만들어가고 싶나? 이렇게 된 이상 모든 장르를 섭렵해보고 싶다. 아직 해보지 않은 장르가 많다. 그런 기회가 생길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김혜준 BI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