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 배우

드레스 와이씨에이치(YCH), 오른쪽 이어 커프 레끌라(L’éclat), 이어링 캘빈 클라인 주얼리(Calvin Klein Jewelry), 왼쪽 이어링 레끌라(L’éclat).

이주영 배우

에나멜 재킷 클루드클레어(Clue de Clare), 오른쪽 이어링과 반지 모두 레끌라(L’éclat), 왼쪽 이어링 모니카 비나더(Monica Vinader),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주영 배우

윤세(Yunse), 퍼 코트와 팬츠 모두 키미제이(Kimmy J), 슈즈 자라(ZARA), 오른쪽 이어링과 이어 커프 모두 레끌라(L’éclat), 왼쪽 이어링 모니카 비나더(Monica Vinader).

9월 26일 영화 <메기> 개봉을 앞두고 있다. 요즘 20, 30대 관객 사이에서 <‘ 우리집> <벌새> 뛰고 2차로 <메기>로 간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 흐름이 반갑고 좋을 것 같다. 신기하다. 여성 감독이 만들고 여성이 주연한 영화가 한 해에, 그것도 시기적으로 이어서 개봉한다는 사실이 우연인가 싶다가도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그 덕분에 관객과의 대화(GV) 등 영화 관련 행사에 초대받을 일이 생겨서 주변 배우들과 감독님들 볼 일도 많아지고, 또 서로 도우며 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즐겁고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 감독의 여성 주연 영화를 반가워하는 관객이 전보다 많아진 걸 느끼나? 영화 <벌새>는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처음 봤고 이번에 개봉하고 한 번 더 봤다. <밤의 문이 열린다> 역시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람하고 이번에 개봉했을 때 또 봤다. 막상 상영관에 가면 여성 관객도 많지만 남성 관객 역시 많이 찾아 주시더라. 많은 관객이 여성 캐릭터의 새로운 점을 흥미롭게 보고 궁금해한다는 건 배우로서도 물론 좋지만 그보다 관객의 수요가 이런 식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현상 자체만도 반갑다.

영화 <메기>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됐고, 이 영화를 통해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더불어 시민평론가상, CGV아트하우스상, KBS독립영화상을 수상하며 4관왕에 오른, 이미 검증된 기대작이다.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른 작품이라 작품상은 조금 기대했는데, 배우상을 받을 줄은 몰랐다. 내가 상을 받아도 되는 건가 싶어 얼떨떨했다. 무엇보다 이옥섭 감독님이 크게 주목을 받으며 입봉할 수 있게돼 함께 기뻐했다. 예산이 넉넉지 않은 영화라서 촬영하는 동안 고생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분이 궁금해하는 영화가 된 것 같아 나 역시 개봉이 기대된다.

이주영 배우

검정 터틀넥 코스(COS), 블랙 스커트 엠에스지엠(MSGM), 슈즈 엠포리오 아르마니(Emporio
Armani), 이어 커프 레끌라(L’éclat), 이어링 캘빈 클라인 주얼리(Calvin Klein Jewelry).

영화 <메기>의 장르는 ‘미스터리 펑키 코미디’다. 낯선 장르만큼이나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두고 ‘힙하다’고 표현하는데, 우리가 흔히 영화를 두고 힙하다는 평은 잘 하지 않는다. 영화의 어떤 점 때문에 이런 평을 받는다고 생각하나? 이옥섭 감독님이 그동안 연출한 단편을 보면 굉장히 독특하고, 우리가 익히 봐온 영화와는 그 문법과 결이 다르다. 이번에 첫 장편을 찍으면서 감독님이 공을 많이 들였고 이옥섭이라는 장르를, 자기 스타일을 잘 만들어내셨다. 아마 관객도 처음에는 ‘이게 무슨 영화일까’ 하고 궁금해할 것 같다. 나는 영화제나 개봉 전 상영회, 내부 시사 까지 포함해 다섯 번 정도 본 것 같은데, 작품에 참여한 배우인 나조차 서너번 봐야 아, 결국 이런 영화구나 하고 느낌이 오더라. 보시는 분들도 여러 번 보면(웃음) 감이 조금 잡히지 않을까 싶다.

N차 관람이 충분히 가능한 것이(웃음) 그 모‘ 르겠다’는 감상이 아‘ , 모르겠다’ 하고 끝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다’로 이어지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 이 영화를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없던 영화가 나왔다는 반증인 것 같기도 하다. 개봉 전 영화제에서 <메기>를 본 분들이 남긴 감상을 많이 찾아보는 편인데 이 영화가 어떤 영화다라고 해석하고 정의하는 평보다 독특하고 그간 보지 못한 장르라는 평을 볼 때 되게 재미있다.

큰 맥락에서 영화 <메기>는 믿음과 의심에 관한 이야기다. 지독하게 믿는 편인가, 철저하게 의심하는 편인가? 둘 다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너무 피곤하다고 해야 할까. 우리 영화에서도 지독한 믿음, 철저한 의심이 결국 파멸로 이어지지 않나. 나는 평소 모든 것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편이다. 오디션을 봐도 내가 저걸 꼭 해내야지 하고 지독하게 마음먹기보다 하게 되면 내 것이고, 안 되면 다른 사람 몫이구나 하고. 순리대로.

작품에 참여하며 실제 믿음과 의심을 오간 적도 있나? 작품을 하는 동안에도 스스로 ‘지금 옳게 연기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심을 끊임없이  했다. 나는 잘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감독님은 좋다고 하는 것 같고, 다르게 해봐야 할 것 같은데 (구)교환 오빠도 괜찮다고 하는 것 같고. 언제까지 연기를 하게 될진 모르지만, 배우로서 자신에 대한 의심은 연기를 하는 한 계속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연기는 의심만 가지고는 못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 합리적인 자신감은 있어야 한다. 의심과 자신감을 조절하며 연기하는 것 같다.

‘합리적인 자신감’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누가 잘한다 잘한다하면 잘하고, 못한다 못한다 하면 못한다.(웃음) 주변에서 잘한다고 하면 ‘내가 좀 괜찮나 오늘은?’ 하는 편이라 합리적인 자신감은 주변 사람을 통해 많이 얻는다. 주변에서 ‘너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면 그런가 보다 하며 쌓아가는 면이 있다.

의외의 대답이다. 그간 맡은 캐릭터가 그렇기도 하고, 배우 이주영 하면 어떤 역할을 해도 견고하게 보이는 면이 있다. 그리고 그게 딱 이주영 같은데, 본인의 실제 모습이 얼마큼 투영된 건가? 많은 분이 그렇게 봐주는 것 같다. 아주 친한 사람들조차 내가 견고한 사람인 줄 알거든. 나 스스로 되게 견고하고 단단해 보이고 싶어 한다.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아 애쓰는 것이 습관이 됐다고 할까. 이런 성격이 연기할 때 어느 정도 투영되지 않나 싶다. 나 역시 한없이 약해질 때가 있다. 그 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아무것도 못 할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배우로서 입지를 다진 후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던 중이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지치더라. 특별한 계기 없이. 조금씩 쌓여 있던 것들이 순간적으로 폭발한 것 같다.

언제였나? 1년 반 전? 그 시기를 견뎌내기 위해 그간 해보지 않은 걸 이것 저것 하며 노력해봤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괜찮아졌다. 신기한 것이 그런 힘든 순간이 내가 어떤 큰 타격을 받아서 오는 것이 아니고, 치유되는 것 역시 큰 노력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사람은 모든 게 자연스러운 리듬이 있구나.’ 이 점을 느낀 시기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 엄청 좋다가도 갑자기 한두 달 뒤에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체득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그 혼란 속에서도 배우 이주영은 비교적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맡아왔다. 영화에 주체적인 여성이 등장한다는 건 얼마나 중요한 일이라고 보는가? 이제는 좀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본다. 2011년부터 독립영화를 시작했고 다양한 작품에서 많은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나 역시 때때로 어떤 시나리오가 좋은 시나리오인지 모르고,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도 모른 채 그저 ‘재미있겠다’는 판단만으로 작품을 맡은 적이 있다. 배우가 좋은 작품, 좋은 시나리오를 보는 눈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작품을 만드는 분들 역시 밝은 눈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여성 배우들이 맡을 수 있는 다양한 캐릭터, 표현 가능한 스펙트럼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지금 시작된 변화가 앞으로 10년, 20년에 걸친 큰 흐름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이렇게 변화하고 있고, 좋은 기류를 만들어내고 있다면 나를 비롯한 또래 배우들이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많아지지 않을까.

영화라는 세계 안에서 이주영에게 영감을 주는 여성은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나? 드라마, 영화 할 것 없이 요즘 현장에 가면 확실히 여성 스태프의 수가 많이 늘었다. 소위 현장에서는 힘을 써야 하고 그래서 남자가 필요하다는 말에 나 역시 그‘ 런가?’ 하며 동의한 적도 있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하다 보면 우리가 못 드는 장비를 들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많은 사람이 현장에 남자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여자 스태프들 만나면 더없이 반갑고, 존경스럽고 감사하다. 힘들어 보이면 걱정되기도 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여자이기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남자든, 여자든 다 힘든 게 촬영 현장이니까. 촬영 팀이나 조명 팀의 여성 스태프도 몇 년 뒤에 조명감독, 촬영감독으로 만났으면 하고.

배우의 삶에서 여성이라는 한계를 처음 느낀 건 언제인가? 특정 사건이 있다기보다 시나리오나 대본을 볼 때 남자 캐릭터는 무척 흥미롭고, 작품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 같은데, 내게 제의가 들어온 여자 캐릭터는 부수적이고 장치적으로 활용된다는 걸 느낄 때 한계를 느꼈다. 표현할 수 있는 폭이 워낙 좁아서 누가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을 때, 이 이야기에서 성별만 바꾸면 참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쉽다.

배우에 대한 가치 평가가 매순간 뒤바뀌는 이곳에서 자신을 붙들고 서있기란 쉽지 않다. 자기 중심을 잡는 일, 그게 배우의 전부인 것 같다. 중심만 있으면 뭐든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중심이 흔들릴 때마다 힘들어지는 거고. 모든 일이 그럴 테지만 특히 배우라는 직업은 개인적인 성취나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객관적인 수치가 없다. ‘내가 이 정도 했으면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거지?’, 이‘ 렇게 하는 게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심도 자주 들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주변의 같은 일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계속 성취가 달라지고, 그게 달라진다고 해서 지금 누가 더 잘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내 중심을 잡고 있는 것, 그 자체가 이 일을 할 때 가장 필요한  일인 것 같다. 나는 질투가 없는 편인데 때때로 주변 배우 친구들을 보면 질투가 난다. 저 친구는 나보다 더 잘하고 있는 것 같고, 나는 뒤처지는 것 같고. 한데 그 친구는 오히려 나를 부러워하는 면이 있다.

중심을 잡으려면 매 순간 깨어 있고 각성해야 하는데 어디 그게 쉽나. 먼 미래를 보지 않으려고 한다. 5년, 10년 뒤에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힘들어지니까. 예상한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거고, 뭐가 될지도 모르고.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는 엄청 유명한 배우가 되면 행복할까? 돈이 아주 많으면 행복할까? 둘 다 내가 바라는 바는 아니다. 그러니 지금처럼 하루하루, 하나씩 해나가는 일에서 최대치의 행복을 느끼려고 한다.

온갖 무례와 간섭을 뒤로하고 인간 이주영으로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연기를 하고, 배우를 직업으로 삼는 이유나 계기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다만 나는 연기할 때 가장 즐겁고, 그러니 계속할 것 같다 하는 정도의 추측을 할 뿐이다. 확실한 것은 내 강아지와 아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다. 요즘은 일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강아지다. 내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내 강아지도 행복하다. 사랑만으로 강아지를 돌볼 수는 없으니까.(웃음) 내 강아지와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것, 맛있는 것 먹이고 싶은 마음. 이런 욕구가 들 때마다 열심히 일해야지 하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