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해효 조우진

권해효 조우진

니트 피케 스웨터와 팬츠 모두 맨온더분(Man on the BOON), 슈즈 자라(ZARA).

올해 ‘배우 프로젝트-60초 독백 페스티벌’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조우진 내가 먼저 선배에게 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처음 이 프로젝트에 대해 듣고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이렇게 말하기는 쑥스러운데, 좋은 어른이란 어떤 어른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선배님을 뵙게 됐고, 먼발치에서나마 따라가보자는 마음이 강했다. 그런 마음을 고백하기도 했고. 올해 너무나 감사하고 영광스럽게도 함께하게 됐다. 심사는 사실 명목이고 응원하고 격려하는 행사라는 취지에 동감했고,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참여하게 돼 무척 뜻깊다. 권해효 배우 프로젝트를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독백 페스티벌은 선배 영화인들이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호스트가 되는 방식이다. 올해는 조우진 씨와 함께하게 되었다. 조우진 배우와 함께한다는 건 여러 의미가 있다. 조우진 배우도 무명의 시간이 꽤 길지 않았나. 그 시간을 견뎌온 거지. 서울독립영화제 배우 프로젝트에서 조명하고 싶은 것도 그런 부분이다. 함께 버티는 것. 배우로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배우로 살겠노라는 일념으로 견뎌온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었고, 그들에게 좋은 경험의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또 한 가지는 방향성에 관한 것이다. 연기 생활을 하면서 가장 갈증을 느끼는 점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런 객관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의 방향성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예심에서 뽑힌 24명의 배우뿐 아니라 독백 영상을 보낸 모든 배우에게 ‘당신 지금 잘하고 있는 거야’라는 메시지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해 독백 페스티벌 이후 영화 현장에서 본선에 올라왔던 두 배우를 만났다. ‘고 어겐(Go Again)’ 한 배우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작업하는 걸 보면서 우리가 선택한 일이 잘못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우진 씨가 합류해 너무 좋다.(웃음) 조우진 이 페스티벌을 시발점 삼아 이런 기회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여전히 볕이 들지 않은 곳에서 자신의 꿈을 키우는 사람들이 격려받고 응원받을 수 있는 기회들. 서울독립영화제의 독백 페스티벌이 그런 기회의 출발선상에 있는 행사가 되길 기대한다.

1천2백27편의 독백 영상 중 본선에 오를 24편을 고르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조우진 영상을 탈락시킬 때 마치 당사자가 내 앞에 있는 것처럼 고개 숙여 ‘미안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영상을 보며 짠할 때가 많았다. 불과 수년 전 내 모습 같기도 했고, 배우들의 절실한 마음과 한이 느껴졌다. 그 힘듦에 덩달아 힘들어져 쉬어가며 봤다. 영상 속 대사의 느낌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배우의 길을 가며 각자 어렵게 어렵게 버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두 그렇게 정성 들여 촬영했을 테니 한 편도 대충 넘길 수 없었다. 수년 전 내 모습과 닮은 배우들의 영상을 보며 이렇게 흔들리지 않고 가다 보면 과거의 나와 그분들이 닮은 것처럼 시간이 지난 후에는 지금의 나와 선배님의 모습을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독백 영상을 보며 나 자신을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에 감사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이 직업에 대해 전방위적 요소를 하나씩 꺼내 스스로에게 따져 물었다. 물론 여전히 답은 찾지 못했고 찾는 과정에 있지만. 권해효 지난해도 그렇고 올해도 그렇고, 1분짜리 독백 영상을 찍는 환경은 그야말로 제각각 달랐다. 어떤 친구는 DSLR 카메라로 그럴듯하게 찍고, 어떤 친구는 아르바이트를 하는중인지 일하는 가게에서 유니폼을 입고 찍었다. 대한민국의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1천여 개의 독백 영상을 이틀 반에 걸쳐서 봤다. 그렇게 우선 1차로 체크한 영상을 여러 번 반복해 보며 걸러냈다. 여러 번 볼 수밖에 없다. 24편의 영상을 고른 후 모든 참가자에게 감사 영상을 보냈다. 안타까운 지점도 있었다. ‘좋은 연기란 뭘까’라는 질문에 답하기는 참 어렵다.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저 사람은 뭘 맡겨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좋은 배우’라는 것과 ‘좋은 연기’라는 것은 조금 차이가 있다. 가령 어떤 배우는 살아온 삶 때문인지 몰라도 어느 공간, 어느 위치에 있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연기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냥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런데 그 배우가 다른 연기도 잘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단정 지을 수 없다. 이번에 영상을 보내준 배우 중에도 안타깝게도 오래전 연기 학원에서 가르쳤을 법한 틀에 박히고 낡은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선발된 24명의 연기가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연기가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면 24편에 속하지 못한 다른 참가자들이 새로운 발견을 하며 좋은 연기의 방향을 잡아갔으면 좋겠다. 영상을 보다 보면 과연 내가 그들의 연기만 보고 있나 하는 의심도 하게 된다. 영상 속 사람이 궁금하면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매력은 배우에게 아주 큰 힘이다. 왠지 모르게 궁금한 배우. 어느 순간은 나도 모르게 내가 만약 감독이라면 이 사람에게 뭘 맡길 수 있을지 생각한다. 주제넘게.(웃음)

권해효 조우진

그레이 니트 스웨터와 그레이 슬랙스 모두 에스.티. 듀퐁(S.T. Dupont).

무엇이 이토록 많은 배우들로 하여금 포기하지 않게 하는 걸까? 오랜 시간 연기하며 무엇에서 이 길을 포기하지 않을 힘을 얻었나? 조우진 오랜 무명 생활을 보냈다, 그걸 견뎌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많이 부끄럽고 민망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배우로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꿈을 꾼다.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계속 꿈꾸는 것, 그때 나를 버티게 한 힘이다. 권해효 나를 포함한 모든 배우가 다음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나의 쓰임새는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늘 한다. 배우는 누구나 죽는 순간까지 이런 고민을 한다. 대중이 이름을 아는 배우가 됐다고 해서 해결되는 고민이 아니다.

독백 페스티벌을 통해 24명의 배우들을 만난다. 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권해효 아주 오래전에 수상 소감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때 생각한 것이 상을 받더라도 그 상이 내 연기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다. 본선에 올랐든, 그렇지 않든 연기 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좋은 경험을 했다는 정도지. 뭐든지 하루아침에 달라질 건 없다. 내일도 어제처럼. 그게 현실이다. 아무튼 이런 기회에 만나서 반갑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계가 먹고살기 참 복잡한 곳인데, 너희 인생도 힘들어졌어. 그래도 우리 한번 같이 개겨보자. 어서 와, 잘 왔어’ 하고 맞아주는 선배 역할 정도를 했으면 좋겠다. 독백 페스티벌도 마찬가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주 만나요. 조우진 업이 되기 위해서는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업으로 삼으면 그 전보다는 불안감이 사그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내일을 알 수 없고 기회가 내일 날아갈지, 앞으로 수년 동안 오지 않을지 가늠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일이 어려운 것 같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지금도 힘들겠지만 권해효 선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저 건투를 빈다. 권해효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쪽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오해가 한 가지 있다. 어떤 관계가 무엇을 만들어줄 거라는 오해. 많은 배우와 감독을 알고 지내며 인간관계를 만든다고 해서 도움 되는 것은 없다. 배우가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건 하나의 작품, 하나의 배역이면 충분하다. 인맥이 기회를 열어줄 거라는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직업은 묘하게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는다. 전 세계에 조우진은 한 명이고 권해효도 한 명이지 않은가. 누구의 것도 뺏지 않는다. 내 몸뚱어리를 움직이면서 살아가는 일이라는 데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지난해 열린 첫 번째 독백 페스티벌과 달라진 점이 있나? 권해효 첫째 조우진 배우가 조윤희 배우, 나와 함께 예심을 진행했다는 점. 그리고 지난해에는 본선 무대를 영화관에서 진행했다. 그런데 극장이라는 공간이 사람의 육성을 라이브로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독백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그래서 올해에는 작은 음악 공연장에서 본선 무대가 펼쳐진다. 또 하나는 배우를 직접 만나는 것과 영상으로 매력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 올해는 영상만 보고 특별상을 정하기로 했다. 본선 심사위원들에게 영상을 보내 특별상 수상자를 뽑을 예정이다.

올해 유독 독립영화계 감독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한국 영화계에서 독립 영화가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권해효 <82년생 김지영>의 김도영 감독을 비롯해 <벌새>의 김보라 감독 등 올해 여성 감독의 약진이 두드러지는데 사실 독립영화계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일어나고 있는 변화다. 올해만 하더라도 경쟁 부문에 초청된 작품의 46%가 여성 감독의 영화다. 독립영화를 보면 한국 영화의 내일을 볼 수 있고 현재 상황도 알 수 있다. 좋은 영화가 관객에게 다가갈 수 없는 상황들. 2009년에 개봉한 독립영화의 평균 일반 관객 수는 3만 명이었는데 올여름을 기점으로 1만 명으로 떨어졌다. 극장은 느는데 독립영화를 개봉하기는 점점 더 어렵다. 영화제에서 상영하고 끝나는 상황이 많다. 독립영화계의 상황이 과연 지금이 건강한 생태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매년 아주 좋은 영화가 많이 나온다. 디지털 시대의 축복인 것 같다. 서울독립영화제가 올해로 45년째인데 2003년까지는 단편영화제였다. 필름으로 장편 독립영화를 만들기는 예산이 여의치 않다 보니 독립영화는 곧 단편영화였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되며 보다 많은 장편 독립영화가 등장하고 있다. 조우진 나는 독립영화에 대한 바람을 말하고 싶다. 한국 영화라는 장이 있다면 독립영화가 그 아래에 있거나 뒤에 있지 않다. 독립영화가 늘 옆에 있기를 바란다.

많은 후배 배우들에게 어떤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 조우진 권해효 선배님처럼 행동하는 사람.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선배가 되고 싶다. 사실 이번 예심에 참여하면서 오히려 후배들을 보며 자극을 더 많이 받았다. 지금보다 더 치열해져야겠다는 자극.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는 후배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행동하는 선배가 되어 직업에 대해 책임지는 배우이고 싶다. 권해효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독백 페스티벌과 관련해 두 가지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오늘의 인터뷰에서 정리하고 싶다. 배우의 세계에 단계가 있는 것처럼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독립영화는 상업 영화로 가기 위한 단계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배우가 어떤 영화를 찍든 자신의 일을 잘하고 있으면 멋있고 존경받을 만하다. 우리는 그저 오래 버티고 배우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 말하고 싶을 뿐이다. 또 한 가지는 이번에 ‘심사’를 했다고 표현했지만 우리 모두 ‘개취(개인의 취향)’로 선택한 거다. 우리가 보고 싶은 사람이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촬영장에서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며, 누군가를 평가할 자격이 없고 그럴 위치도 있지도 않다. 다만 ‘우리 같이 갑시다’라고 응원하고 싶어 독백 페스티벌을 준비한 거다. 이제 질문으로 돌아와서, 나는 후배들에게 ‘같이 놀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요즘 후배들과 술 한잔 하고 집에 돌아오면 ‘놀아 줘서 고맙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낸다.(웃음) 그거 말고는 특별히 없다. 조우진 독백 페스티벌을 콘테스트가 아닌 페스티벌로 만드신 것도 그런 취지의 결과물이다. 이름도 심사위원이 아니라 응원위원이라고 하면 좋겠다. 권해효 어? 너무 좋다. 응원단. 위원 말고 응원단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