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튼 프린트 재킷, 블랙 셔츠 모두 프라다(Prada).

레더 트렌치코트, 코튼 점프수트, 블랙 슬립온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인간수업>이 곧 공개돼요. 흑백 포스터가 드라마의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아요. 범죄를 저지른 고등학생들이 그 때문에 혹독한 수업을 치르게 되는 내용이에요. 전 고등하교 일진 ‘기태’를 연기했어요. 다른 학생들을 악랄하게 괴롭히는, 누구보다 집요하고 냉정한 인물이죠. 어른을 상대할 때도 두려워하거나 움츠리지 않고 당당해요.

그간 여러 웹드라마에서 고등학생을 연기했어요. 지난 작품에서 모두 선한 캐릭터를 맡았으니 이번에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겠네요. 김진민 감독님이 기태라는 인물을 구상할때 순하게 생겨서 사람들이 전혀 짐작할 수 없지만 싸움을 하면 끝을 보는 잔인한 친구를 떠올렸다고 했어요. 윤리적으로는 올바르지 않은 인물이지만 배우로서는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아직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기태만의 순수한 면도 있어요. 나쁜 행동을 하지만 자신만의 선이 있어 그 선을 넘지 않아요. 지난해 촬영을 끝낸 <인간수업>은 제가 처음으로 긴 호흡으로 연기한 작품이에요. 그래서 한 장면 한 장면 더 연구하고 싶었어요.

감정적인 소모가 큰 인물이었을 것 같아요. 당시에는 무척 힘들었어요. 집중력도 많이 필요했고. 아쉬움도 많아요. 좀 더 고민하고 하나라도 더 해볼걸, 이런 생각도 들고. 그리고 선배들의 연기를 현장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김여진 선배가 경찰로 등장하는데 실제 경찰 같아서 넋을 잃고 지켜봤죠. 경찰 연기가 워낙 실감 나서 제가 정말 죄를 지은 기태처럼 느껴졌어요.

어떤 과정 끝에 기태를 준비했나요? 기태는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캐릭터여서 학생들이 나오는 영화를 많이 봤어요. 그중 한 편을 꼽으라면 <파수꾼>이 있어요. 영화에서 이제훈 선배가 연기한 인물도 ‘기태’예요. 두 인물 모두 언제 터져 버릴지 모를 감정을 품고 있죠.

배우는 수많은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직업이란 생각이 들어요. 다양한 감정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캐스팅된 작품이 아니어도 여러 대본을 구해 읽어봐요. 지금까지 퉁명스러운 듯하면서도 따듯한 일명 ‘츤데레’ 같은 인물을 많이 연기했거든요. 그래서 더 많은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다른 감정선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 대본을 구해 연기해봐요. 상상도 많이 하고요. 감정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인물도 해보고 싶어요. 폭력적인 기태를 연기할 때도 심리적으로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연기하는 순간이 너무 즐겁더라고요. 감정적으로 지치는 기분이 들면 연기할 때 도리어 힘이 돼요.

그런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겠죠. 전 마음을 다스릴 때 잠을 자요.(웃음) 커피 한 잔 마시고 혼자 쉬는 걸 좋아해서 조용히 보내는 시간도 많이 내고요. 집 근처에 저수지가 있어서 산책도 하고 밤하늘도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요. 친구들과 어울려 놀 때는 얘기도 잘하고 활기찬 편이지만 혼자 카페에 가서 책 읽는 것도 좋아해요. <언어의 온도: 우리의 열아홉>을 촬영하고 읽은 <말의 품격>과 <글의 품격> 같은 책도 좋고.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 한 마디에 상대방이 힘들 수 있다는 사실에 공감되고, 그런 의미를 담아낸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 깊이 와닿았어요.

블랙 나일론 재킷, 니트 톱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연기를 시작한 후 생긴 가장 큰 고민이 있다면? 많이 고민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색다른 캐릭터를 만났을 때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게 고민이라면 고민이죠.

<인간수업> 공개를 앞둔 지금은 어떤 고민이 있나요? 고민이라기보다 걱정인데, 아직 완성본을 보지 않아 제 연기가 어떨지 걱정돼요. 그래도 얼마 전에 후시녹음 때문에 해당 장면을 봤는데 그것만으로도 좋았어요. 촬영할 때 기억도 떠오르고.

반면 공개된 후 기대되는 점은요?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기억되길 바라요. ‘저 나쁜 놈’이란 소리를 듣고 싶어요.(웃음) 스스로에게 냉정한 편인가요? 아니요.(웃음)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 하려고 노력하지만 냉정하진 않아요. 제 연기에서 모자란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이에요.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아 연기하며 흔들릴 때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진 않아요. 스스로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주눅들기보다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다만 늘 하는 다짐은 있어요. 열정을 가지고 조금씩, 더욱더 성장해가야겠다는 다짐이요. 그리고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싶어요.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렇게 초심을 잃지 않고 연기했으면 좋겠어요.

오늘 문득 떠오른 촬영 현장의 기억이 있나요? 스튜디오에 오기 전에 <인간수업> 현장이 떠올랐어요. 배우와 스태프가 50명 가까이 모여 있는 현장에서 느낀 긴장감이 문득 기억나더라고요. 현장의 긴장감. 왜 그렇게까지 긴장했을까 하고 웃음이 났어요.

20대를 앞으로 어떻게 채우고 싶나요? 누구보다 바쁘게 살고 싶어요. 바빠서 힘든 나날이기를 기대해요. 지난해에 그렇게 지냈어요. 몸은 피곤한데 오히려 힘이 났어요.

이제 막 필모그래피가 시작되었으니 해보고 싶은 역할이 많을 테죠? 로맨스물의 나쁜 인물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온통 따듯한 사람들인데 저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나쁜 행동을 하는 건지 궁금할 때가 있어요. 언젠가 병에 걸린 인물도 만났으면 해요. 아프면 몸과 마음에 변화가 생기잖아요. 그런 변화를 겪는 일이 어떤 것인지 느끼고, 어떻게 표현하는지 배우고 싶어요.

올해 5월은 어떤 시간으로 남을까요? 나를 많이 알릴 수 있는 시간. 남윤수라는 배우에게 이런 얼굴도 있었구나, 기태를 연기한 배우가 남윤수구나 하고 알아채는 사람이 많은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