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안은영 옴잡이 백혜민 송희준

옐로 러플 드레스 비뮈에트(BMUET(TE)).

보건교사 안은영 옴잡이 백혜민 송희준

보건교사 안은영 옴잡이 백혜민 송희준

시스루 오간자 드레스, 니트 브라톱 모두 프라다(Prada).

보건교사 안은영 옴잡이 백혜민 송희준

블랙 니트 톱, 니트 롱스커트 모두 질샌더(Jil Sander), 아이보리 롱부츠 레이첼 콕스(Rachel Cox).

보건교사 안은영 옴잡이 백혜민 송희준

주얼 장식 화이트 드레스와 워커 부츠 모두 미우미우(Miu Miu).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도 ‘옴잡이’는 매우 독특한 존재다. 재수에 ‘옴’ 붙지 않도록 잡아내야 하는 숙명을 지녔고 인간의 마음을 가졌지만 인간이 아니다. 옴잡이 ‘백혜민’이 사람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이야기가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먼저 생각했다. 혜민이는 특이한 사연을 가진 캐릭터라고 이해했고, 인간이 아닌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또 다른 규정을 만들지는 않았다.

오디션을 볼 때 기분이 아직 남아 있나? 오디션을 세 번 봤는데 아주 재미있었다. 떨리고 긴장되는 건 당연하고, 이번에는 두 가지 조금 희한한 경험을 했다. 하나는 오디션을 볼 때 교복이 필요해서 친한 친구의 막냇동생 교복을 빌려 입었다. 오디션이 끝나고 교복을 돌려줄 때 보니 명찰에 혜민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때만 해도 극 중 ‘래디’와 ‘아라’ 역할로도 오디션에 참여해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 결정되기 전이었다. 나중에 혜민 역할을 맡게 되었을 때 친구 동생의 이름이 떠올라서 신기했다. 또 하나는 상대방과 계속 함께 연기하는 페어링 오디션 때였다. 상대가 누군지에 따라 내가 연기하는 방식이나 톤이 바뀌는 느낌이 참 재미있었다. 그러다 얼굴 클로즈업 오디션을 보는데 이경미 감독님이 “눈앞에 엄청 간절하게 바랐지만 평생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어떤 것이 있을 때를 상상해보라”고 했다. 눈을 감고 감독님 말씀을 가만히 들으면서 눈을 뜨는데 어떤 마음이 먼저 와닿고 그다음에 ‘나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지 않은데 눈물이 났고 기쁘지만 슬픈, 복잡한 마음이었다. 귀한 경험이었고. 아마 그때의 감정이 혜민이가 자신의 활동 반경인 5.38킬로미터 밖으로 나갈 때였던 것 같다.

촬영이 대부분 학교에서 진행되었다. 또래 배우들이 함께해 즐거운 촬영 현장이었을 것 같다. 촬영장 가는 길이 즐거웠다. 쉬는 시간이면 학교에서 배드민턴도 치고 삶은 고구마도 나눠 먹으며 재미있게 보냈다.

이경미 감독이 단편영화 <히스테리아>를 보고 오디션을 제안했다고 들었다. <히스테리아>에서 어떤 인물을 연기했는지 궁금하다. <히스테리아>는 가족 이야기로 내용이 엄청 어둡다. 굉장히 예민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히스테리아>가 내 첫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지인이 필름 카메라로 찍어준 사진이 모여 포트폴리오가 되었다. 그 포트폴리오를 본 주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작업해보자고 제안해서 모델로 일하다 뮤직비디오와 광고도 촬영하게 됐다. <히스테리아>는 이를 본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학생이 졸업 작품에 참여해줄 수 있느냐고 제안해 출연했다. 내 첫 연기 경험인 셈이다. 이경미 감독님은 이 영화에서 내가 미처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고, 그걸 끌어내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다. 배우 일을 시작하고 가장 좋은 점은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이나 내면과 상반되는 부분을 많이 꺼낼 수 있다는 거다. 내 울타리나 벽을 깨고 나갈 수 있게 해준다.

첫 연기 경험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나 사진을 찍는 것과 연기는 닮은 지점이 많은 작업이다. 그래서 첫 촬영 현장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고 편안했다. 반면 계속 질문해야 한다는 건 힘들면서도 좋은 부분이다.

어떤 질문을 말하는 건가? 어떤 질문이든지 나라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림을 그릴 때도 그랬다. 왜 내가 이 색을 반복적으로 쓰지? 왜 계속 이 소재에 관심을 갖지? 이런 질문이 거듭되다 보면 결국 자신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감정이나 캐릭터, 연기에 대해 생각할 때 결국은 내가 어떤 사람이며 뭘 좋아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이를 어떻게 작업으로 끌어낼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런 질문의 과정이 즐겁다.

첫 단편영화를 마치고 연기를 계속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나? 우선 재미있다. 그 재미가 영어 ‘fun’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배우는 결국 다 만들어진 상황에서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지 않나. 근데 연기할 때는 진짜 같고. 많은 사람이 모여 뭔가를 만들게 하는 힘이 도대체 뭔지 알고 싶다. 어떤 작업을 해내면 그 결과물을 본 다른 사람들이 반응하고 무언가를 느끼는 것도 즐겁다.

<보건교사 안은영>에 대한 반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연기하며 느낀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혜민이라는 캐릭터가 숨 쉴 수 있도록 만든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고. 배우란 마음을 담아서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보건교사 안은영>이 공개되고 반응이 무척 궁금해서 리뷰를 꼼꼼히 찾아봤다. 혜민에 대한 이런저런 감상평을 읽다 보면 현장에서 만들어진 인물과 감정이 누군가에게 이런 식으로 다가가는구나 하고 느껴졌다. 그래서 연기하는 순간순간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작품을 만나면서 배우로 살기 위해서는 어떤 사명감이나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닫는 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사명감이나 소명 의식은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보는 사람이 푹 빠져서 즐기게 만드는 배우가 되고 싶다. 아직은 어떤 배우가 돼야 하는지 답을 잘 모르겠다. 어떤 배우가 될 수 있을지 확신도 없다. 다만 어떤 배우가 되느냐보다는 어떤 사람으로 삶을 살아가느냐가 되게 중요한 것 같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내 연기에 그대로 투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송희준은 어떤 사람인가? 생각이 많은 편이다. 가끔 그 생각에 너무 깊이 빠질 때도 있고. 때론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 나를 끌어내려 할 때도 있다. 이럴 때 자연이 큰 도움이 된다. 산책을 많이 하고 하늘을 보는 것이 내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 요즘처럼 하루가 다르게 단풍의 색이 달라지는 날씨를 놓치고 싶지 않다. 햇빛과 공기, 계절 안에 있을 수 있는 산책이 좋다. 걷다 보면 많은 것들이 정리되고. 나도 혜민이처럼 주변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 의미를 많이 두는 편이어서 내게 영향을 주는 존재나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같이 고민하며 재미있게 살고 싶다.

<마리끌레르> 12월호에 실릴 인터뷰다. 올해가 어떤 한 해로 기억되었으면 하는가? 선물 같은 한 해. 더없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선물을 열어보는 중이다. 이 한 해가 지나갈 것이고 선물처럼 다가온 배우라는 직업과 연기라는 일과 함께 다음 단계를 향해 가고 싶다. 내년에는 열심히 내가 하는 일을 보여드리고 싶다. 혜민이를 좋아해주신 분들에게 배우로서 다음 작업을 선보이는 것이 2021년의 가장 큰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