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EL

패션 컬렉션의 새로운 아티스틱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가 이끄는 샤넬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이 엄청난 기대 속에 막을 올렸다. 옷뿐 아니라 음악과 장소에 이르기까지 쇼를 통해 무한한 상상력을 보여주고자 하는 샤넬은 이번 시즌 커다란 원형 도서관처럼 꾸민 그랑 팔레로 관객들을 초대했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게 되는 길다란 벤치와 커피 테이블, 포근한 러그와 유리 천장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초여름의 햇빛이 어우러진 그랑 팔레는 더없이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샤넬이 이러한 요소를 통해 강조한 테마는 바로 책이다. 버지니 비아르에게서 칼 라거펠트로, 칼 라거펠트에게서 가브리엘 샤넬로 거슬러 올라가는 샤넬의 계보에는 마치 중요한 연결 고리처럼 언제나 책이 존재했다. 가브리엘 샤넬은 고아원에서 보낸 유년 시절 책에 의지해 살았고, 문학을 매개로 환상적인 패션 세계를 구현했다. “가브리엘 샤넬은 마치 기적처럼 화가, 음악가, 시인들 사이에서만 유효해 보이던 규칙들을 패션에 적용해나갔다. 그녀는 남들 눈에 띄지 않고 싶어 했고, 사교계의 소란 속에서도 고귀한 침묵을 지키고 싶어 했다”는 장 콕토의 회상과 “지금 문학사 책을 펼치면 새로운 고전 작가의 이름이 눈에 띌 것이다. 그는 바로 코코 샤넬이다. 샤넬은 종이와 잉크 대신 직물과 형태, 색깔을 이용해 글을 쓴다. 그녀는 고전 작가의 지위를 부여받기에 충분하다”라는 롤랑 바르트의 글이 이를 뒷받침한다. 칼 라거펠트 역시 가브리엘 샤넬 못지않은 책 애호가였다. 그의 공간에 남겨진 책이 무려 30만 권에 달하고, 스스로 병적인 수준의 독서광임을 인정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와 30년 이상 책과 패션에 관한 생각을 나누고, 책을 향한 가브리엘의 애정을 동경한 버지니 비아르의 새 시즌 컬렉션은 무척 특별하다. 책을 통해 칼 라거펠트의 유산을 담아내고, 가브리엘 샤넬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은 옷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레이어드 기법의 재킷 칼라로 약간 펼쳐진 형태의 책을, 우아한 플리츠로 책꽂이에 책이 빽빽하게 꽂힌 장면을 표현한 것. 이 외에도 화려한 쿠튀르 드레스와 대비되는 단정한 안경과 로퍼, 무심히 꺼내 입은 듯한 무늬 없는 드레스는 샤넬이 꿈꾼 문학소녀가 얼마나 고전적인 모습이었을지 상상하게 만들며 룩의 완성도를 높였다.

칼 라거펠트의 서거 이후 팽배했던 불안감이 말끔히 해소된 덕분일까? 풍성한 실루엣과 장식 없이 간결한 디자인의 대비, 턱시도나 남성 재킷에서 차용한 요소가 만들어내는 중성적인 무드는 런웨이에서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쇼가 끝나자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이번 쿠튀르 쇼는 브랜드의 새로운 수장이 된 버지니 비아르의 가능성과 함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샤넬의 무한하고 고유한 아름다움을 체감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깊었다.

DIOR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여성의 신체를 캔버스로 여긴 건축가 버나드 루도프스키의 철학에서 새 컬렉션을 이끌어냈다. 거의 모든 룩을 블랙으로 구성해 장식적인 요소보다는 모델들의 몸 자체와 디올 드레스의 구조적인 면모를 강조한 것. 마리아는 또한 불과 공기, 물이 지닌 연금술적 힘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다고 밝혔고, 이러한 모티프로 구성한 신비로운 패턴은 런웨이를 장식한 페니 슬링거의 흑백 작품과 만나 강렬한 인상을 만들어냈다. 화려한 색채 없이도 시선을 사로잡은 디올의 드레스들은 “블랙에 관해서라면 책을 한 권 쓸 수 있을 정도 입니다”라고 서술했던 크리스찬 디올의 정신을 이으며 블랙을 다루는 디올 하우스의 마법 같은 재능을 또 한 번 느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