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하게 반짝이며 극도로 부드러운 질감이 인상적인 소재, 실크. 어쩐지 20대보다는 원숙한 30대 이상에게 어울릴 듯한 이 우아한 소재가 2019 F/W 런웨이를 섬세하게 장식했다. 실크를 중심으로 새틴, 태피터 등 광택을 머금은 여리고 예민한(?) 패브릭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 그 시작점엔 파자마, 슬립 드레스 같은 홈 웨어와 란제리가 자리 잡고 있다. 시작은 이토록 편안하고 사적인 스타일의 룩이지만 이번 시즌 그 변신이 눈부시다. 실크 옷의 몸을 타고 자연스럽게 흐르는 전형적인 실루엣을 벗어나 다양한 버전으로 구현된 것. 먼저 피비 파일로의 빈자리를 순식간에 메운 다니엘 리의 보테가 베네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의 첫 번째 보테가 베네타 컬렉션인 2019 프리폴 시즌부터 실크의 활약이 심상치 않다. 얇고 반짝이는 소재의 특성을 남다르게 재해석했는데, 마치 구겨 넣은 듯한 주름 장식 네크라인과 박음질을 하지 않고 둥글게 말아 올린 밑단으로 완성한 생경한 미니드레스로 범접할 수 없는 미감을 대변했다. 이뿐 아니라 2019 F/W 컬렉션에서 등장한 핀턱 셔츠에 퀼팅 스커트를 매치한 룩을 주목할 것. 새틴으로 자로 촘촘하게 그은 듯 자잘하게 굴곡을 이룬 핀턱과 마치 유리 타일 같은 퀼팅을 창조해 구조적인 형태를 더욱 극적으로 표현했으니! 풍성한 실루엣의 퍼퍼 재킷을 제안한 살바토레 페라가모와 발렌시아가, 각 잡힌 테일러드 재킷을 디자인한 오프화이트와 헬무트 랭, 로맨틱한 주름으로 사랑스러운 드레스를 완성한 크리스토퍼 케인과 프라다 역시 새틴과 실크의 무한한 매력을 어필하는 데 동참했다. 한편 더욱 극적인 룩을 찾고 있다면 태피터가 제격이다. 지방시, 록산다, 알렉산더 맥퀸, 와이 프로젝트의 드레스를 보면 알 수 있듯 태피터는 실크와 새틴에 비해 조금 더 힘이 있어 과감한 형태를 구현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이런 소재들은 매일매일 편하게 입기에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은은한 광택이 도는 보드라운 새틴과 실크, 태피터가 대체 불가한 우아함을 지녔다는 사실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