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패션위크의 선택

내로라하는 톱 모델은 물론 전 세계의 핫한 셀러브리티, 프레스까지 전부 모여드는 패션위크에 기분 좋은 이변을 일으킨 곳은 어김없이 런던이었다. 런던 패션위크를 주관하는 영국패션협회(BFC)에서 2020 S/S 시즌을 시작으로 일반 대중에게 최초로 티켓을 배포한다는 소식! #긍정적인 패션(Positive Fashion)으로 명명된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분야의 관객에게 패션쇼를 보여줌으로써 문화 도시 런던의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 기획됐다. 온라인에서 총 6개 쇼를 관람할 수 있는 티켓을 구입한 관객은 9월 14일부터 15일까지 런던 패션위크의 공식 장소인 ‘The Store X’에서 알렉사 청, 하우스 오브 홀랜드, 셀프-포트레이트 쇼를 관람했다. 런던 패션위크에 속한 쇼를 전부 오픈한 건 아니지만, 이 선택이 보수적인 패션위크에 신선하고 진보적인 바람을 일으킬 건 확실하다.

 

여자 옷을 입은 남자들

성별에 관계없이 취향을 존중하는 젠더리스 룩의 반향이 거세다. 2019 F/W 시즌 구찌와 앤 드뮐미스터 컬렉션엔 속살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 소재와 리본, 러플 등 지극히 여성스러운 디테일을 필두로한 로맨틱한 룩이 쏟아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성 정체성까지 의심받는 해리 스타일스는 2019 멧 갈라에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함께 시스루 러플 블라우스를 멋들어지게 소화했고, 거리에선 핫핑크 컬러 셔츠를 입거나 어깨선을 요염하게 드러낸 남성들이 적잖이 포착되니까. 이들의 용기있는 패션이 꽤 쿨하게 느껴진다면, 당신도 젠더리스 룩의 유행에 동참한 셈이다.

 

트랜스젠더 모델의 공론화

글래머러스한 금발 모델을 선호하기로 유명한 빅토리아 시크릿이 트랜스젠더 모델을 앞세웠다면? 믿기 힘들지만 사실이다. 브라질 모델 발렌티나 삼파이우(Valentina Sampaio)가 이 동화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패션은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해요. 이것은 시작에 불과할 거예요.” 한 쇼의 백스테이지에서 삼파이우는 이렇게 자신감 있게 말했지만, 사실 빅토리아 시크릿 쇼에 선다는 사실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그녀를 빅토리아 시크릿 핑크 라인의 뮤즈로 발탁한 에드 라젝(Ed Razek)은 패션의 본질이 판타지란 사실을 인지한다면 트랜스젠더 모델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샤넬 뷰티 최초의 트랜스젠더 모델로 유명세를 치른 테디 퀸리반(Teddy Quinlivan)도 화제다. 2015년 루이 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니콜라 제스 키에르가 모델로 발탁한 이후 꾸준히 캣워크에 선 베테랑이지만 트랜스젠더 여성이 하이엔드 브랜드의 뷰티 모델이 된 것은 꽤 이례적이다.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린 그녀들을 응원한다.

 

사랑에 대한 자유

매 시즌 파격적인 광고를 선보이는 발렌시아가가 2019 F/W 시즌 또 한 번 뜨거운 화제를 몰고 왔다. 프랑스 파리의 현실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다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의 의도는 사진가 그레그 핀크(Greg Finck)와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에드 포니엘레스(Ed Fornieles)의 공동 작업을 통해 감각적으로 구현됐다. 관전 포인트는 멋진 남녀 모델의 커플 컷 대신 실제 커플을 캐스팅해 이들의 로맨틱한 찰나를 리얼하게 포착했다는 것. 이 과정에서 게이커플까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대상에 관계없이 진정한 사랑을 예술로 승화한 발렌시아가에 박수를!

 

뚱뚱해도 괜찮아 

패션계에서 사이즈와 관련한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돌체 앤 가바나가 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최근 인종차별 문제로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불매운동의 대상이 된 이 브랜드는 이미지 개선을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과감한 선택을 했다. 바로 XXL 사이즈를 출시한 것. “모든 여성의 아름다움에 바치는 헌사예요.” 디자이너 듀오는 모든 여성이 체형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감 있는 태도를 통해 특별한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