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지면에 키치(kitsch)라는 개념을 제대로 설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독일의 산업화와 19세기 예술계, 미학과 대중문화처럼 무거운 단어에서 시작해 움베르토 에코나 밀란 쿤데라 같은 천재들의 장황하고 철학적인 말까지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전은 이토록 복잡한 단어를 ‘키치: 질 낮은 예술품’이라는 문장으로 간단히 정의 내렸으며, 패션계는 조악하거나 값싸 보이는 것, 10대들이 입을 만하거나 유치하며 전형적인 고급스러움과는 반대 지점에 있는 것들을 폭넓게 이르는 데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재미있는 점은 장인정신과 전통, 오트 쿠튀르의 가치를 수호하는 하이패션계 역시 주기적으로 키치에 매료되어왔다는 사실이다. 스펀지밥 캐릭터와 맥도날드 로고를 재해석한 모스키노의 전설적인 2014년 컬렉션이나 키치 예술의 대가 앤디 워홀의 작품을 오마주한 1991년과 2018년의 베르사체 컬렉션이 대표적인데, 패션에 무지한 사람이 보아도 단숨에 고‘ 급스러운 취향이 아니라는 것’ 쯤은 느낄 정도로 정석이라 할 만한 키치 스타일을 표방했다.

반면 새 시즌의 키치는 앞서 언급한 예시와 다른 방향성을 보인다. 특정 캐릭터나 상업적인 모티프를 런웨이로 끌어들이기보다는 인형 옷이나 하이틴영화 주인공의 옷차림 같은 스타일을 내세운 것. 특히 모스키노와 구찌는 바비인형을 연상시키는 과장된 실루엣의 드레스를 대거 공개했으며, 발렌시아가는 유아용 잠옷 같은 드레스를, 아쉬시는 어린아이가 스티커를 붙여 완성한 듯한 플로럴 패턴의 셋업을 선보였다. 이러한 옷들은 손바닥만 한 카디건이나 하트를 촘촘히 그려 넣은 스타킹으로 순화(?)되며 현실 세계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트렌드로 거듭나는 중이다.
키치 스타일에 실용적이거나 기능적인 장점을 기대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게다가 몇몇 컬렉션은 성인 여성의 옷 같지 않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유아 퇴행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치를 유의미하게 다루고자 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한동안 미니멀리즘과 스트리트라는 두 가지 테마 안에서만 전전하던 패션계의 흐름에 잠시나마 신선한 파동을 일으켰다는 점, 그리고 흔히 고급스럽지 않은 취향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한데 모아 하이패션으로 승화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제 키치에서 등을 돌릴 것인지 혹은 패션의 한 장르로 인정할 것인지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예술로서 키치가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졌듯이 말이다. 이럴 때 보면 패션은 썩 재밌는 분야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쏟아져 나오는 옷들을 입맛에 맞게 평가하거나 취사선택하면 그뿐, 어떤 책임도 주어지지 않으니까. 키치한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팝콘각’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