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처럼, 예술처럼

파리 패션위크를 대표하는 레이블들이 패션과 예술을 감각적으로 조합하는 데 뜻을 같이했다. 디올은 이탈리아의 진보적인 페미니스트이자 콜라주 아티스트 루차 마르쿠치의 작품을 고딕풍 스테인드글라스에 프린트한 쇼 스페이스에서 컬렉션을 선보이며, 세퀜차 9.3의 성가에 맞춰 예술적인 무대를 구성해 호평받았다. 루이 비통은 또 어떤가? 젠더의 경계를 섬세하게 허물고 영민하게 조합하는 데 집중한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파리의 상징적인 장소인 라 사마리탱의 유리 지붕 아래에서 쇼를 선보였는데, 관객은 영화 세트장을 연상시키는 녹색 실크스크린에 둘러싸여 있었다. 알고 보니 이는 루이 비통이 온라인으로 쇼를 관람하는 전 세계 관객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선물! 라이브 방송을 보는 내내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장면을 차용한 인터랙티브 배경이 실크스크린에 펼쳐졌다. 샤넬 역시 컬렉션을 시작하기 전 네덜란드의 포토그래퍼 듀오 이네즈 반 램스위어드와 비누드 마타딘에게 의뢰해 제작한 흑백 티저 영상을 공개했다. 레드 카펫 포토콜에서 포즈를 취하는 배우들과 영화의 여러 장면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버지니 비아르의 컬렉션은 그 어느 때보다 드라마틱했다.

 

 

 

ON THE STREET

파리의 낭만적인 거리를 힙한 런웨이로 바꿔놓은 레이블이 눈에 띄었다. 발렌시아가와 끌로에가 그 주인공. 이처럼 컬렉션을 선보이는 방식은 비슷했으나 쇼의 주제부터 시점까지 정반대 관점에서 선보여 더욱 흥미로웠다. 우선,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는 ‘지구 종말 이후의 삶(Post-Apocalyptic)’이란 다소 자극적인 테마를 감각적으로 부각하기 위해 파리의 밤거리를 선택했다. 그 결과 낙낙한 스웨트셔츠부터 로브까지 일상적인 옷을 근사한 이브닝 웨어로 변주한 컬렉션이 탄생했는데, 패브릭의 90% 이상을 지속 가능한 소재를 활용해 업사이클링했다는 사실이 유의미했다. 반면, 끌로에는 대낮의 파리 거리에 새 컬렉션을 입은 모델들을 등장시킨 영상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희망을 품은 계절(A Season  in Hope)’이란 밝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나타샤 램지 레비는 일상에서 마주할 법한 실용적인 룩을 선보여 현실감을 부여했다.

 

 

 

SHOW ON THE WALL

“당장 내일을 알 수 없지만, 일단 즐기자고요!”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은 팬데믹에 빠진 현실을 즐기며 극복하기 위해 창의적인 시도를 감행했다. ‘Show-on-the-Wall’이란 테마로 전개한 새 컬렉션은 폭넓은 세대와 다양한 나라의 아티스트 16명이 예술적 실루엣의 로에베 의상을 입고 찍은 포스터 형태로 선보였다. 최초의 ‘페이퍼 컬렉션’으로 패션계에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 로에베의 도전에 박수를!

 

 

 

언택트 시대의 패션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본격적인 언택트 시대가 도래했다. 이를 쿨하게 인정하고 위트 있게 대응한 두 브랜드가 있어 소개한다. 우선, 미우미우는 쇼장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이를 통해 전 세계 셀러브리티들을 화상으로 초대했는데 우리나라에선 윤아가 초대되어 눈길을 끌었다. 이 덕분에 스포츠웨어와 하이패션을 감각적으로 조합해낸 새 컬렉션을 보는 유명(!) 관객들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장관이 펼쳐졌다. 크리스찬 루부탱의 장난기 어린 시도도 빛을 발했다. 우리나라에 기반을 둔 증강현실 아바타 서비스 ‘제페토(Zepeto)’의 디지털 이벤트로 2021S/S 컬렉션을 소개한 것. 디자이너는 실감 나는 루비 월드로 전 세계 프레스를 초청했다. 이곳에선 얼굴 인식을 통해 피부 톤부터 옷차림까지 전부 마음대로 선택해 자신만의 아바타를 만들 수 있으며, 크리스찬 루부탱의 2021S/S 컬렉션에서 원하는 신발과 액세서리를 고를 수 있다. 디자이너들의 재기 발랄한 시도 덕분에 보는 즐거움이 쏠쏠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