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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막내다
신입사원보다 경력사원 충원을 선호하는 분위기 탓에 어느 회사든 막내 뽑는 일이 드물어졌다. 그래서 막내라고 하기에는 부르는 사람, 불리는 사람 둘 다 민망할 만큼 경력 꽉 찬 막내도 흔하다. 당연히 불만이 생긴다. 내가 지금 경력이 몇 년 차인데 아직도 나를 막내 취급하느냐는 불만이 차고 차서 입 밖으로 새나오려고 한다면, 안됐지만 구직 사이트를 뒤져보는 수밖에 없다. 경제 불황은 장기화될 전망이고, 당연하게도 막내였던 당신이 3년 차가 될 때, 당신 위의 모든 선배들 연차도 3년씩 늘어난다. 현실은 현실이고, 막내는 막내다. 일 잘한다고 소문나서 누구나 탐내는 막내가 되는 수밖에는 없다.

선배, 질문 있어요
궁금한 게 많은 후배는 귀찮지만, 배우려는 후배를 미워하는 선배는 없다. 질문을 하면 일에 대한 내 적극성을 어필하면서 동시에 실패의 확률을 낮추고 실패했을 때의 책임도 상당 부분 덜 수 있다. 아무 생각 없는 질문보다는 틀리더라도 나름대로 답을 생각해둔 질문이 되돌아오는 선배의 질문에 무너지지 않는 방법이다.

주말엔 좀 나가 놀든가
회사는 막내가 노련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필요한 건 타성에 젖기 쉬운 상사들의 생각에 자극을 주고 뜻밖의 돌파구를 마련해주는 참신한 아이디어다. 주말에 먹고 자고 <무한도전> 보는 거 말고는 한 일이 없는 막내와 새로운 곳에 가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흐름을 접하고 온 막내가 같을 수는 없다. 노련하지만 현장 감각은 떨어지기 쉬운 상사들에게 생생한 막내의 한마디는 활력이 된다. 그런 막내가 주목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좀 나대더라
매사에 적극적이고 막내답게 밝고 경쾌하면서 나대지도 않는 건 상당한 고급 기술이다. 조심스러워서 입 다물고 있으면 똘똘하게 할 말 다 하는 동기들한테 밀리고, 영민해 보이는 적정선을 한 발만 넘어도 나설 때 안 나설 때 못 가리는 애로 낙인찍힌다. 회사마다, 선배마다 기준도 제각각. 일단은 지나치게 나서지 않는 편이 낫다. 특히 선배들 대화에 무턱대고 불쑥 끼어드는 건 득보다 실이 크다. 소극적이라고 걱정했는데 기대 밖의 참신한 한 방을 날리는 후배는 반전의 매력이 있지만, 나대는 비호감 신입이라는 평가는 되돌리기 어렵다. 동기와 비교하며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 주의 깊게 팀의 분위기를 살피다 보면 어느새 상황별, 선배별로 적절한 힘 조절이 가능해지는 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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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출근 전이라고?
막내는 내보일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고, 큰 프로젝트를 주도할 수도 없고, CEO에게 직접 자신을 어필할 기회도 없다. 몇 안 되는 막내의 카드 중 하나가 성실함이다. 출장 간 상사가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나 사무실에 필요한 서류를 보내달라고 전화를 했는데, 아직 버스 안이라고 답하는 순간, 당신은 막내의 중요한 카드 한 장을 날린 것이다. 팀의 모든 선배가 지각을 해도 마찬가지다. 선배들의 출근 시간에 맞춰 슬금슬금 늦게 출근하다 마침내 지각을 일삼는 막내는 더 이상 상사가 뭔가 챙겨주고 싶고 가르쳐주고 싶은 막내가 아니다. 직원 중 하나, 그중에서도 꺼내 쓸 카드가 없는 말단 직원일 뿐이다. 늘 지각하는데도 사랑스러운 막내가 존재하긴 한다. 당신이 아이유가 될 확률만큼 드물긴 하다.

너는 집에 무슨 일 있니?
다 같이 수다 떨 때 무표정하게 입 다물고 있고, 잘 웃지도 않고, 점심시간에 이런저런 핑계 대며 밥도 잘 안 먹는 막내는 팀장도 눈치 보게 만든다. 썰렁한 상사의 농담에 박장대소하는 부하직원의 비애는 늘 얘깃거리가 되지만, 막상 선배 입장에서는 네가 무슨 얘기를 하든 말든 여긴 직장이니까 나는 일만 하겠다는 후배에게 애정을 갖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럴뿐더러 그렇게 일만 하겠다고 해놓고 실제로 일을 빈틈없이 해내는 막내는 별로 없다. 선배들과 불편해지면 나만 손해다. 팀워크를 이루는 데 정서적 교감은 필수적이고, 막내만큼 그 역할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자리도 없는 만큼 선배들은 분위기 메이커는 아니어도 최소한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지는 않는 막내를 기대한다.

난 걔가 팀장인 줄 알았어
20대 중반의 막내가 지나치게 점잔을 피우면 선배들은 부담스럽고 불편해진다. 자기를 낮추면서 예의 바른 것과 예의 바른 척 우아 떠는 건 누구나 척 보면 안다. 내가 대외 업무나 타 부서와의 업무 협조를 위해 통화하고 있을 때 다른 일 하는 선배들은 신기하게도 한쪽 귀로 내 통화 내용을 듣고 있다. 그들은 통화상의 업무 내용은 잊어도 내 말투는 기억한다. 특히 갑질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말투는 반드시 기억한다. 그리고 그 냉정하고 교만한 말투가 언제든 자신을 향할 수 있다는 걸 안다. 갑질왕 상사도 예외는 아니다.

적절하게 했더라, 적당히만 했더라
선배들은 당신의 보고서가 최선을 다한 건지, 요령껏 한 건지 척 보면 다 안다. 선배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적당히만 하려고 드는 막내다. 싹수 노랗다는 소리를 듣기 싫다면, 이만하면 됐지 싶은 수준이 아니라 더 이상은 못 하겠다는 수준까지 하는 것이 정답이다. 선배가 비합리적이고 괴팍한 인간이라서가 아니다. 선배와 당신의 눈높이가 다를 뿐이다.

가 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