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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는 꼭 근사한 브런치와 디너가 나오는 레스토랑에서 하고 싶은 여자와 종로 뒷골목 포장마차촌이 제일 낭만적인 장소라 생각하는 남자, 엄한 집안 분위기 탓에 주말에도 밤 11시엔 귀가해야 하는 여자와 새벽까지 이어지는 불금에 목숨 거는 남자, 일찍 취업해 대리님이 된 여자와 토익 9백 점을 못 넘겨서 취직이 안 되는 거라 불평하는 취업준비생 남자. 내가 도통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주변의 친구 커플들 이야기다. 이중 몇몇은 이미 깨졌고, 여전히 전쟁 중인 커플도 있으며 또 의외로 잘 만나는 커플도 있다.

남녀가 많이 달라서 조합이 안 맞는 경우는 흔하고, 그들의 연애가 삐걱대는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다. 내게 지금껏 만난 남자들 중에서 나와 궁합이 제일 안 맞은 남자를 꼽으라면, 2년 전쯤 헤어진 A와 그 직후에 만난 B가 동시에 떠오른다. A는 나와 성격이나 표현 방식이 완전히 다른 남자였다. 나는 무한긍정교 추종자로 아무리 싫은 상황이라도 어떻게든 둥글둥글 좋게 생각해서 나쁜 건 외면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반대로 A는 싫은 건 절대 싫고, 그걸 콕 집어 표현해야 직성이 풀리는, 좋게 말하면 솔직하고 호불호가 분명하고 나쁘게 말하면 좀 꼬인 스타일이었다. 하루는 동물원에서 데이트를 하는데, 내가 “와, 저 코끼리 귀엽다. 오늘 날씨도 화창하고 기분 좋다” 하니, 그는 “코끼리 씻긴 지 오래됐나봐. 지저분하네. 너랑 있어서 좋긴 한데 계속 걸으니까 덥다” 했다(그의 말이 맞았다. 코끼리 똥 냄새가 심했고, 그날의 기온은 30℃를 웃돌았다). 우린 늘 이런 식이었다. 2년 동안 만나면서 나는 내내 서운했고 그는 뭐든 좋다는 나를 답답해했다.

A와 헤어진 이후에 몇 달간 사귄 B와는 시차가 너무 컸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면서 시차라니? 그는 매일 밤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잠자리에 들었다. 기상 시간은 아침 6시. 꼭 아침 일찍 빈속에 조깅을 해야 하루를 건강하게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 얼리버드형 남자였다(심지어 둘이 여행을 떠났을 때조차 일찍 잠들었다. 이건 정말 다시 생각해도 열 받는다). 반면 나는 잠드는 시간이 불규칙한 올빼미형이다. 특히 밤 12시 무렵엔 급성 중2병 증상이 나타나 외롭고 서글퍼지기 일쑤다. 증상이 유독 심한 날엔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한다. 내가 한창 감상에 젖는 그 시간에 B는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술에 취해 전화해도 마찬가지였다. 유치하지만 내가 가장 그를 원하는 그 시간에 아무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는 그에게 많이 섭섭했고, 난 술에 취해 카톡으로 그만 만나자고 했다. 헤어지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그의 답장은 정확히 다음 날 아침 6시에 도착했다.

내가 나와 상극인 남자를 만나 힘들었던 경우라면 3년째 연애 중인 후배 L과 그녀의 애인이자 내 친구인 O는 좀 다른 케이스다. L과 O는 둘 다 안경을 썼고, 단정한 무채색 톤의 옷차림을 즐긴다. 또 조용한 카페에서 데이트하는 걸 좋아하고, 선선한 날 공원을 산책하는 걸 즐기며 심지어 둘이 음악이며 영화 취향도 꼭 맞는다. 겉보기엔 천생연분.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둘에게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다툰 적이 없다고 한다. 서로에게 소리친 적도 없고 잔인한 말을 뱉은 적도 없으며, 심지어 ‘내가 마음이 아프니까 앞으로 이런 건 좀 고쳐주면 안 될까?’ 하는 식으로 불만을 돌려 표현한 적조차 없단다. 며칠 전 L을 만나 술을 마셨는데, 그녀는 O와 헤어질 생각이라고 털어놨다. 서로 불편하고 힘든 부분을 솔직하게 말한 적이 없으니 이젠 뭐가 문제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왜 힘든지조차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 너무 답답해. 우린 분명 싸우지도 않고, 한쪽이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어려울까? O도 아마 끝을 생각하고 있을 거야. 나처럼 말을 못 꺼내고 있는 것뿐이지.” 많이 닮아서 좋았는데 결국 그 닮은 모습 때문에 헤어지려는 이 두 남녀의 조합. 어찌 보면 이유를 설명하기 쉬운 서로 전혀 다른 커플의 연애보다 고요하고 희미한 이들의 연애가 더 최악일지도 모르겠다.

S는 술을 좋아한다. 술자리와 그곳에 함께 있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최근 그녀를 떠난 S의 전 남친은 술을 한 잔도 못 마시는 체질이었다. 그는 S가 술자리에 가는 것도,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사람들도 싫어했다. Y는 연애 경력의 차이가 너무 커서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녀는 혼전 순결을 지키고 싶어 했고, Y를 만난 지 일주일 만에 주말에 여행을 가자며 조르던 그녀의 전 남친은 연애와 섹스는 떼어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남자였다. 남친과 함께 사법고시를 준비하다 ‘성적’ 차이로 헤어진 M도 있다. 처음엔 서로 의지가 된다 싶었는데 점점 모의고사 성적이 차이가 벌어지면서 급기야 서로를 미워하고 질투하다가 쫑났다.

최악의 콤비, 최악의 궁합을 정하는 기준은 없다. 만날 땐 몰랐는데 헤어지고 보니 진짜 아니었던 관계, 평화로웠지만 솔직하지는 않았던 연애,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과의 인연도 최악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둘 사이에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고 참아지지도 않는 무언가가 있다면, 오랜 시간 공을 들이며 애써봐도 해결되지 않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문제가 있다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앙금이 되어 쌓이기 전에 솔직하게 털어놓고 둘이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는 것이 최악으로 치닫지 않게 해줄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