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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도 시작이 반이다
우리는 어딘가에 단 하루를 머물더라도 그 하루를 살 곳이 필요하다. 호텔이나 민박집에 갈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현지 사람의 집에 묵는 여행이 늘어나고 있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이 그곳의 맛과 문화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니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행의 흐름을 주도하는 건 온라인 숙소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에어비앤비(airbnb)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사업으로 온라인에서 집을 제공하고 싶은 사람과 제공받고 싶은 사람을 연결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 초, 한국에 에어비앤비가 상륙한 것은 꽤 반가운 일이다. 한국을 찾는 자유여행객의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여행자가 원하는 다양한 형태의 숙박 시설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면 제법 다양한 숙소를 살펴볼 수 있고 제대로 된 숙박 시설이 없는 지역도 여행할 수 있으니, 숙소뿐만 아니라 여행지 선택의 폭도 넓어진 셈이다. 무엇보다 요즘 여행은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커리어나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경험 소비로 새롭게 소비되고 있다. 소비할 만한 완벽한 여행을 정의할 수는 없지만 경험의 경계가 확장됐다면 성공적인 여행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현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건 꽤 현명한 출발이다.

정보 제공에 친절한 사람들

에어비앤비는 중개자 역할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제공한다. 제주도를 여행하는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한 <지금 가장 핫한 제주 99>라는 이름의 소책자는 에어비앤비가 만들어 무료로 배포한 여행 안내서다. 여기에는 제주 사람들만 찾을 법한 골목 상점, 걷기 좋은 길, 들러볼 만한 플리마켓 등 감각적인 정보가 잘 정리되어 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집을 빌려주는 지역 주민들의 귀띔이 이 책의 남다른 정보력에 힘을 보탰을 것이다. 또, 새로운 국내 여행지를 발굴하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주도, 영월, 울산, 전주 등지를 돌아다니며 소개할 거리를 찾고 있는 에어비앤비 직원들이 있다. 그 밖에 그 동네의 먹거리를 알리고 이벤트를 통해 여행권을 증정하는 왁자지껄한 하우스 파티도 종종 연다. 이렇듯 끊임없이 다양한 즐거움을 제안하기에 에어비앤비의 페이스북 페이지라도 한번 둘러보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엔 이들의 일터를 방문했다.

일과 여행 사이

에어비앤비코리아는 지난 2014년 3월 한국에 문을 열었다. 사무실은 좀처럼 회사라고 상상하기 힘들 것 같은 한남동의 한 주택이다. 서른 명 정도 되는 직원들은 ‘커미티(committee)’라는 팀을 만들어 이 공간을 가꾼다. 사진들로 채운 벽은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직원들이 모인 ‘포토 커미티’의 컬처 월이고, 또 다른 벽에 붙은 물 주기 당번표에 이름이 쓰인 사람들은 옥상과 테라스에 있는 텃밭을 가꾸는 ‘가드닝 커미티’ 소속이다. 그 밖에 목요일의 ‘북 클럽’, 도시락을 시켜 먹는 수요일과 목요일의 메뉴 선정을 책임지는 ‘푸드 커미티’ 등이 활동 중이다. 이렇게 취미와 관심사에 따라 조직된 ‘커미티’는 공간을 아름답게 할 뿐 아니라, 하는 일이 다른 서른 명 가까운 직원들이 친밀감을 갖고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도록 돕는다. 에어비앤비 역시 일반적인 회사처럼 마케팅, 고객 경험, 사업 개발 등 맡은 일에 따라 부서가 있다. 하지만 어느 팀이 어디에 모여 있는지는 알 수 없었는데 정해진 자리가 없이 그날그날 자기가 원하는 곳에 앉기 때문이다. 날씨를 즐기고 싶으면 테라스로 나갈 수 있고, 집중이 필요한 순간엔 안쪽 자리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 누울 수 있는 옥상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도 된다. 한편, 에어비앤비는 여행인지 일인지 모를 출장이 많은 회사다. 재미있는 것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다음 날이라도 팀을 꾸려 출발하기 때문이다. 당장 비우면 티 나는 자리가 없기에 가벼운 마음이 발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의 비결인가 싶기도 하다. 여행과 출장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즐기는 에어비앤비 사람들은 오늘도 원하는 자리로 떠나 여행하듯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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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을 설계하다


이준규 에어비앤비 코리아 대표

에어비앤비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전에는 구글 코리아에서 SMB(중견, 중소기업) 사업을 담당했다. 그때부터 중소 규모의 사업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런 분들에게 기술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제주도를 가게 됐다. 처음으로 제주도의 서쪽을 가봤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20년 동안 장사하며 서울 사람을 처음 봤다고 했다. 그때 에어비앤비를 통해 소상공인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에어비앤비에 지원하게 되었다. 그 무렵 에어비앤비 쪽에서도 연락이 와서 일하게 되었다.

에어비앤비를 이끄는 당신의 리더십은 무엇인가? 빠르게 변하는 다양한 환경에 맞춰가려면 직원들에게 업무에 관한 권한을 위임하고 그들의 역량을 믿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경험이 없어도 창의력과 노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환경이 되었기 때문에 경험보다는 열정, 시장을 한번 바꿔보겠다는 의지가 중요한 것 같다.

에어비앤비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방법이 궁금하다. 새로운 기획을 할 때 기업은 그 일이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투자 대비 큰 결과를 원한다. 하지만 에어비앤비는 그렇지 않아 보이는 일이 뜻밖에 잘되는 것을 즐긴다. 작년에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장외 전시인 서울디자인스팟 행사를 후원하면서 1백50곳이 넘는 장소를 선정하고 에어비앤비를 알리는 일을 했다. 직원들이 1백50곳을 일일이 직접 방문해 에어비앤비를 설명했다. 처음에는 수고스럽고 효율적이지 않아 보이는 일이었지만 에어비앤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과 반응을 직접적으로 느끼고 전할 수 있어 뜻밖의 큰 수확이 있었다.

에어비앤비에서 일하기 위해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얼마나 잘 공감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공감을 잘하면 시장의 상황에 공감하고 거기에 맞는 서비스를 론칭할 수도 있고, 특정 이슈에 공감하면 그 이슈를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낼 수도 있다. 다른 팀원들과 소통할 때도 공감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을 도울 수 있다.

업무 외의 시간에는 무엇을 하나? 얼마 전 회사에서 러닝 클럽에 가입했다. 사무실에서 남산까지 달리는 코스가 좋다. 딱 3km 뛰고 ‘목멱산방’이라는 비빔밥집에 간다. 동네 산책도 좋아한다. 가족들끼리 공유하는 취미인데, 슬슬 걸으며 여기저기 구경하다 보면 산 지 10년이 넘은 동네에서도 계속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에어비앤비 한국 지사의 올해 목표는 무엇인가? 국내여행 활성화다. 에어비앤비를 유럽 여행 갈 때만 이용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점이 아쉽다. 나도 전에는 국내여행을 잘 다니지 않았다. 예를 들면 담양은 정말 좋은 곳인데 호텔이나 콘도가 없으니 아이들과 묵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에어비앤비를 통해 담양에도 가고 남해로 떠나 노량해전이 벌어진 곳 앞에서 묵을 수도 있었다. 음식이 비슷하고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국내여행은 생각보다 훨씬 더 인사이트를 키워준다. 올해도 그렇지만 내년에도 국내여행 활성화에 에어비앤비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할 것이다.